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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Nov 11. 2017

행복한 북유럽식 환상, 휘게 라이프

겨울이다. 한적한 자연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잔잔한 조명과 음악을 뒤로, 가까운 사람과 벽난로 주위에 앉아 온기를 나눈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에 과하지 않은 음식과 따뜻한 차 한잔, 그리고 기분 좋은 담소가 있다.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낀다. 매일매일을 이렇게, ‘휘게 라이프 스타일’로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휘게 라이프는 행복의 방정식?

부탄 라이프는 어때?


콜린스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 탑10에 휘게Hygge를 선정했다. 휘게는 ‘웰빙을 촉진하는 아늑하고 유쾌한 분위기 조성의 습관’이라는 개념의 덴마크어로, 통상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소박한 여유를 즐기는 덴마크식 라이프 스타일을 함축한다. 휘게에 이어 ‘적당한’, ‘균형이 맞는’다는 의미의 스웨덴어 라곰Lagom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패션, 리빙, 인테리어 등에서는 ‘노르딕’,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혹은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말만 붙어도 ‘핫’아이템이 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지구 반대편 8,000km 너머의 삶에 주목하는가? 북유럽 스타일에는 ‘안락한 환경과 여유로움이 주는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철학뿐만 아니라, 실용적 가치와 심미적 만족감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휘게 라이프가 이렇게 주목 받기엔 그 스타일이 너무 단출하지 않은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균형 있는 경쟁을 하는 반면, 욕심에 기반한 사람 사이의 경쟁은 평화와 조화를 무너트리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현대인은 불행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21세기는 행복을 위한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웰빙wellbeing,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중심의 소비를 전개하는 로하스LOHAS, 사람들과 함께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함을 누리는 킨포크kinfolk,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혹은 단샤리斷捨離까지. 이는 모두 '자연', '소박함', '함께'의 가치를 실현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으로, 경쟁에 따른 의미 없는 삶의 속도를 줄이고 '여유'있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소비사회는 ‘여유’를 위한 ‘여유상품’을 낳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자에게는 ‘행복’을, 소비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상실감’을 주었다. 훈련과 명상을 통해 심신 단련을 하는 요가도 플라잉요가, 누드요가, 맥주요가 등 다양하게 발전하는데, 이러한 여유를 소비하는 여력은 SNS를 통해 럭셔리로 둔갑되며 과시의 대상이 된다. 즉, 우리는 ‘행복’ 자체보다 멋들어진 ‘행복상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북유럽이 아니라, 행복의 나라 부탄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가? 부탄도 북유럽과 마찬가지로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데 말이다. 과연 당신은 부탄 라이프를 소비하겠는가?



행복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행복은 아니다.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면서 환경에 적응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방식은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타문화 수용에는 자기 몸에 맞게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북유럽 라이프를 쫓아 이민을 갔던 이들의 역이민은 문화의 수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휘게 라이프 소비에 앞서 한 박자 쉬고 잠시 생각을 해보자.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란 개인의 심리적•신체적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다. 전쟁과 같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통제가 가능한 것에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기도 한다. 즉, 심리적으로 통제감이 커질수록 스트레스는 적어지고 행복은 커진다는 것이다.


통제감 관점에서, 본다면 휘게 라이프는 자연에 적응하며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다. 북유럽은 겨울이 길고 춥다. 일조량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백야도 있다. 척박하고 우중충한 날씨에 계절성 우울증이라도 걸리지 않으려면 가까운 이웃과 진심으로 소통해야 하며, ‘집구석’에 오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가구와 조명과 같은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세련되어 질리지 않아야 한다. 자연을 통제할 수는 없기에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덴마크가 행복한 것은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휘게’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 한국사회는 집에서 ‘휘게’ 할 수 있어도, 집 밖에서는 ‘휘게’하기 어렵다. 자칫 휘게 라이프를 통해 괴리감이나 상실감을 경험하며 더 불행해 질 수도 있다.


북유럽 커뮤니티 노르딕후스의 이종한 대표는, 휘게의 핵심은 '인간중심’인데 “사람들과 공감하여 ‘동료의식’을 형성한 것이 ‘덴마크식 복지’이며, 소통하고 나눔으로써 심신이 정화되어 행복해지는 것이 휘게”라며, “휘게는 갑자기 나온 트렌드가 아니라 북유럽인의 역사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휘게의 본질이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물고기들을 나무 타기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덴마크식 행복도, 부탄식 행복도 좋다. 하지만, 남의 기준으로 내 인생을 살면 행복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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