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해서 중독에 빠지고, 중독에 빠져서 불행해진다
니코틴 중독을 두고 보건 당국과 담배 회사의 소송은 끝이 보이지 않고, 담뱃갑 경고 그림에 대한 갑론을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임중독을 공식적으로 ‘질병화’하려는 정부의 움직임도 난항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중독’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덕이니 십덕이니 문화적 현상에서 지름신과 같은 쇼핑중독, 그리고 먹방과 다이어트의 유행까지,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중독을 강요하는 사회인 것이다.
*1970년대 일본에 나타난 서브컬처의 팬들을 말하는 ‘오타쿠’(おたく)의 한국식 표현 ‘오덕후’의 줄임말로, 십덕후는 오타쿠보다 심한 오타쿠를 일컬음. 폐인, 꾼, 광(狂)과 유사한 의미임
지난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담배회사와의 소송은 2년을 맞이했다. 소송의 핵심은 ‘니코틴의 중독성’과 ‘개인의 선택’이다. 국민보건 향상과 질병 예방이 공단의 책무이므로, 과거의 흡연 피해 보상과 미래의 흡연 피해 예방을 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담배회사들은 흡연과 마찬가지로 금연도 개인의 자유 의지이며, 금연에 실패하는 ‘의지박약자’가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이 싸움은 담배 보급 초기인 1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흡연자는 입이나 손이 심심할 때 달랠 수 있다거나, 초면에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옹호를 했고, 비흡연자는 냄새, 건강 등 각종 피해를 이유로 반대했는데 지금의 싸움과 많이 닮아 있다.
총기 난사사건, 묻지마 살인 등 각종 범죄의 모방이 되고 있는 게임은 그 영향력 때문에 담배보다 더 복잡한 갈등을 만들고 있다. 관련하여 게임과 폭력성에 대한 연관성 연구는 TV나 영화와 같은 미디어 폭력의 모방 효과 연구를 시초로 끊임없는 상반된 결과를 통해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게임은 산업과 공중 보건, 그리고 범죄에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상이하며, 게임을 통한 교육이나 사회화와 같은 긍정적 측면도 많아 논의가 좁혀지지 않고 있지만, 청소년의 게임중독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단순히 재미로, 혹은 게임을 모르면 왕따가 될까 봐 게임을 하기도 하지만, 공부해도 성적도 안 오르고 친구들도 무시하는 현실과 달리, 게임에서는 레벨 업을 하며 성취감도 느끼며 자존감도 느끼는 청소년이 많은데, 스트레스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이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중독이란 ‘어떠한 물질이나 행동에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의존되어 스스로 조절이 어려운 상태’를 말하며, 흔히 처음에는 쾌락을 주거나 고통을 완화하는 긍정적 보상 경험에서 시작한다. 큰 만족을 주었던 행동은 반복되고 강한 애착으로 발달되며 하는 동안의 쾌감 때문에 통제력은 발휘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라는 반응에 침을 흘리는 개에게, 음식을 줄 때마다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면 나중에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의 개와 (생리학적으로) 다름 아니다.
*Pavlov, Ivan Petrovich(1849~1936, 露, 생리학자) 개가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침을 분비한다는 조건반사를 발견하여 실험적인 대뇌 생리학의 길을 열었으며, 유물론적 심리학의 초석을 다짐
그러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중독인가? 담배나 게임과 같은 중독 문제는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첨예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만, 중독의 개념으로 우리 사회를 본다면 우리 삶에 중독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도그마를 각자 가지고 있는데, 우연한(혹은 의도된) 행동으로 인한 긍정적 보상의 경험이 습관, 신념, 취향 등 삶의 중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Dogma. 이성의 비판이 허용되지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믿어야만 하는 절대적 권위의 철학적 명제나 종교상의 진리
사람들은 사랑, 일, 운동, 여행 등에 몰입을 할 때에도 중독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중독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질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좋은 결과’이지, 중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나의 인생에 좋은 결과란, 바로 ‘행복’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며(희망고문),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중독을 강요하고 있으니, 그 결과는 OECD 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우리의 중독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기도 한다. 보통,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강한 자극 요소들이 중독을 유발해 지속적으로 보게 만드는데, 이때 우리는 ‘중독성’이라는 말 대신 ‘작품성이 좋다’는 말로 표현을 한다. 요즘은 ‘더 작품성이 좋은’ 프로그램이 TV를 가득 채우고 있다. 쿡방(요리cook 방송)과 먹방(먹는 방송)이 그것이다.
쿡방은 고품격 냉장고와 다양한 식자재 그리고, 화려한 레시피와 함께,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품위 있게 그려진다. 마치 매 끼니가 파티처럼 그려지는데,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넉넉한 삶을 누리는 듯한 착각을 주며, 현실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비여력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에게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는 원초적 소비문화에의 중독을 강요한다.
먹방은 몸짱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에서 밥 한 끼 맘 놓고 먹는 것이 스트레스인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대리만족을 준다. 대리만족을 통한 절제된 식생활은 음식에 대한 쾌감 회로를 강화시키며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런 쾌감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음식에 더욱더 중독되는데, 이것은 결국 체중이 늘까 봐 미친 듯이 운동을 하는 등의 부정적 중독 행위와 연결된다.
인터넷 방송 BJ Broadcasting Jockey는 이것을 극대화한다. 먹는다는 원초적 행위를 극화함으로써 식욕은 최고로 자극되고 시청자들은 반복된 쾌감을 통해 푸드 포르노 food porno에 중독되어 간다. 특히, 경제적으로 불안 심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 마련인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박탈감을 해소해 주는 데 이것보다 좋은 쾌감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쿡방과 먹방에 중독된 ‘파블로프의 개’들은 미디어가 중독시킨 ‘먹는 문화’를열심히 소비하며 SNS를 통해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이러한 연쇄 반응이 우리 사회를 ‘원초적 욕망의 해소’에 중독 되게 만든다.
우리가 의도했던지 혹은 의식하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중독 상태일 수 있다. 그러면, 학습된 보상과 쾌락에 중독된 사람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와 다르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답은 성숙한 *방어기제와 삶에의 통제감 강화, 그리고 소통을 통한 행복에 있다.
*Defense Mechanism. 사람들이 불쾌한 일을 당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 하거나 변명하는 것과 같이,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불만에 직면했을 때 (마치 상처가 나면 피가 응고되는 것과 같이) 자신을 방어하려는 자동적인 적응 방법
방어기제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방어 수단으로,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현실을 부정한다든지 자신의 실수를 남의 탓으로 돌리며, 성숙한 방어기제는 불쾌하거나 기분 나쁜 상황이라도 위트 있게 감정을 조절한다든지, 목표를 위해 금욕을 하는 방식으로 ‘어른스럽게’ 상황에 대처한다. 방어기제가 잘 작동되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이 되어 중독에서 멀어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푸념을 하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고를 수 없는 것은 부모와 직장상사’라며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하는데, 스트레스를 이기는 두 가지 키워드는 ‘조절 가능성’과 ‘예측가능성’, 결국 내가 상황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통제감은 내 삶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힘’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통제감이 낮으면 반대로 상실감을 크게 느끼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쾌락을 얻으려 하는데, 이것이 중독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남 신경 덜 쓰고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중독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중독은 약물이나 나약한 정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에서 온다는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 안에 쥐를 넣고 그냥 물과 마약을 탄 물을 주면 쥐는 마약에 중독되는데, 쥐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쥐공원 rat park을 만들고 똑같이 두 종류의 물을 주자, 쥐공원의 쥐들은 중독현상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20%의 미군들이 대량의 마약을 사용했는데, 전쟁 후 정상 생활로 돌아온 군인들의 대부분은 금단현상이나 재활치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약과 독은 하나로 본다. 용량의 차이에 따라 약도 독이 될 수 있고, 독도 약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사 모든 일들이 다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 Lessis More)하여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담배나 술이나 게임이‘국가의 개입’이 불필요한 ‘개인의 영역’이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개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중독 문제도 구조적인 차원에서 풀 필요가 있으며, 중독은 예방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 건강'차원을 넘어, '공중보건'차원의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 있지만, 물을 먹일 순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814명에 이르는 성인 남녀의 삶을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의 총책임자로서 42년간을 역임한 정신과 전문의 베일런트 George E. Vaillant 는 행복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라는 것이라고 한다. 즉, 행복하려면 ‘컵에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부정적 태도보다는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긍정적 태도를 가지라는 것인데, 이 단순한 노력이 우리를 중독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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