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소비, 정체성을 찾아가는 잘못된 여정에 대하여”
좋은 와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십중팔구는 ‘가격’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비싼 와인은 좋다. 그런데, 최근 영국에서 16,000개의 와인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7,000원짜리 와인이 최고 중의 하나로 뽑혔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소믈리에 sommelier 조차 눈을 가리면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와인이니, 억울하지만 비싼 와인은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이런 논리가 우리의 소비생활을 넘어 삶 자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명품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을 지칭하며, 장인(정신)과 높은 수준의 품질, 그리고 독특한 창업자 등 오랜 시간 속에서 형성된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위한 예물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해진 230년의 역사의 주얼리 쇼메 Chaumet, 타이타닉호 침몰 시 나무 가방에 매달려 구출되었다는 전설로 여행 가방의 대명사가 된 루이뷔통 Louis Vuitton, 실용적인 여성의 겉옷을 디자인함으로써 거추장스러운 코르셋 corset 과 페티코트 petticoat(속치마)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20세기 패션의 혁명가 샤넬 Chanel이 그러하다.
이러한 명품은 ‘값어치’라는 교환가치와 ‘쓸모’라는 사용가치 외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보통 명품은 대량생산시스템이 아닌 장인이라는 특수한 노동력을 통해 생산되므로 그 생산량이 극히 한정되어 ‘희소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소성을 소유하는 것은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만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명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상류 계층의 신분과 경제력을 획득하는 것이며, *장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이것이 ‘기호로서의 상징 가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이미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이며,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Jean Baudrillard(1929~2007, 佛, 철학자) 대중 생산과 대중매체, 인터넷과 사이버 문화의 시대를 해석하는 독창적인 '시뮬라시옹 Simulation'이론으로 20세기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침
또한, 명품 소비는 커뮤니케이션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라스웰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누가 Sender/Source, 무엇을 Message, 어떤 채널을 통해 Channel, 누구에게 Receiver 전달해서 어떤 효과 Effect를 나타내는가’인데, 명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나는 명품을 살만큼 경제력이 있고, 그런 신분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세련된 사람이니 나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봐주세요’라는 의미로, 세상에 나를 ‘품위 있게 커뮤니케이션’해주는데 누가 명품을 싫어하겠는가?
Harold D. Lasswell(1902~1978, 美, 정치학자ㆍ심리학자) 1922년 시카고 대학 졸업 및 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국무성 고문 등 정치에도 관계를 맺음. 커뮤니케이션 모델(SMCRE Model)로 알려짐
명품 소비는 ‘쓸모’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겪게 된다. 명품 구매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 쾌감, 정복감, 해방감을 느끼는 자기도취 현상인 뷰캐넌 증후군 Buchanan syndrome을 느끼기 위해 명품 곗돈을 붓기도 하고, 남이 사니까 나도 따라 사는 밴드웨건 효과 band-wagon effect는 우리로 하여금 홍콩명품(소위 ‘짝퉁’)을 사게 만든다.
이 명품 소비 심리는 종종 ‘수요공급의 법칙’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무효화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데, 명품은 가격이 오르면 허영심이나 과시욕이 더욱 강해져 오히려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베블런 효과 Veblen effect 때문에 명품 브랜드들은 지속적으로 가격을 상향 조정한다.
또한, 나는 남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구매한 물건이나 유행하는 것을 구매하는 것을 꺼리는 속물근성인 스놉 효과 snob effect도 있다. 시쳇말로 ‘개나 소나 쓰는 것은 싫다’는 심리이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 위버 럭셔리 uber-luxury이다.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많아 봤자 소수이지만), 평범한 명품(명품은 특별하지만) 보다 수십 배 비싼 초고가 명품으로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에 한국사회의 특수성이 더해져 대한민국은 전 세계 최고의 명품 소비 국가가 되었다. 일상에서의 만족감이 떨어지니(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행복지수 꼴찌, 자살률 1위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그리고, 취약한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한 ‘신분상승 욕구’가 그 특수성이며, 여기에 체면과 눈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쯤 되면 ‘건강한 소비’는 온데간데 없고, 허영과 과시의 ‘망국병’을 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고급 시계나 수입차, 명품 슈트를 사는 것이 목표인 남자들이 많아져 카푸어 car poor와 같은 신조어가 나올 지경이지만, 논의의 중심에 여성이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Social Safety Nets. 모든 국민을 실업, 빈곤, 재해, 노령, 질병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명품 소비에 대한 여성의 열망은 페미니즘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근대 페미니즘은 여성의 법적, 정치적 권리의 획득으로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여성은 투표권을 획득할 수 있었고, 100년이 조금 넘는 투표 역사를 써가고 있다. 이후 현대 페미니즘은 남성 관점에서의 여성의 정의가 아닌 온전한 여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통한 여성해방을 이루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중심에 있는 여성을 기준으로 형성된 여성상은 그 밖에 있는 여성을 담을 수 없었다.
하여, 페미니즘은 정체성과 동질성을 해체하고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차이와 이질성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조우하여,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공을 해서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하며 자기 생각이 뚜렷한, 권력과 경제력이 있는 여성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들은 명품을 향유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新여성상’을 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된다. 페미니즘 담론은 서양의 선진국 여성 중심의 논의인데,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충분한 고민 없이 그대로 한국사회에 스며든 것이다.
여성들의 성생활과 싱글 라이프, 쇼핑홀릭, 스타벅스, 브런치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적인 패션잡지 편집장의 촌뜨기 조수가 명품과 함께 성장하는 영화《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성공의 상징이 명품의 소유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그들의 삶의 철학이나 생활방식 대신 소비방식에 대한 갈망만을 취했다.
결과, 자신의 사치와 허영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일부 젊은 여성(혹은 명품에 중독된)인 ‘된장녀’가 등장했고,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경쟁심과 피해의식, 가부장적 교육의 영향으로 여성의 자기표현에 열등감과 분노를 느낀 일부 남성의 여성 혐오는 ‘김치녀’에 이르게 된다. 세상이 많이 변하고 사는 게 팍팍하니 어쩔 수 없이 갈등이 불만이 양극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통사회가 해체되면서 남성 스스로 갈등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성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탓이다.
최근, 패션 브랜드 크리스천 디올이 한국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여자’를 주제로 작품 전시가 있었는데, 디올 백을 든 여성이 유흥가 앞에 있는 모습을 합성한 사진이 문제였다. 문제가 된 사진에는 신체가 드러나는 원피스에 하이힐 한국 여성이 ‘소주방’,‘룸비 무료’ 등의 배경에 합성된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한국 여성을 ‘성을 팔아 명품백을 구입하는 여성’으로 비하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에 전시는 취소되었다. 그런데, 기사에 대한 댓글은 달랐다. 대체로 그 사진의 의미에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왜 이런 엇갈린 반응이 나오게 되었을까? 다시 드라마와 영화로 와서 《섹스 앤 더 시티》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자. 아, 그녀들은 명품에 열광할지 언정 스스로 독립하고 노력해서 경제력과 권력을 획득한 여성이구나! 그렇다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마는 악마처럼 악착같이 일해서 성공한 여성의 상징이란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개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산다’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게 현실에서는 거꾸로 되고 있지 않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아니라, ‘프라다를 입는 것이 악마’인 것이다로 통하는 것이 아닌가? 즉, 명품을 입어야,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이상한 논리가 한국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떳떳하게 (명품)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명품 소비의 허상만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사회는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개성'으로 치환되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소비를 통해서 더 나은, 더 차별화된 개성을 표현하라고 강요받는, 그런 사회이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미디어에서 부풀려진 일상이 자극하는 판타지와 실제의 삶은 불균형을 넘어 불행을 주는데 말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당신이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봐요.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겠습니다!"라고 했듯이, 소비사회에서 (명품) 소비를 통해 나를 정의하는 것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적 결핍은 물질적 보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나’인 자아 정체성 self-identity을 찾고 제대로 확립하는 유일한 방법은 명품 소비가 아니라 자아 존중감 self-esteem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자아존중감은 자기 자신을 가치 있고 긍정적인 존재로 평가하고, 자기 확신과 격려, 그리고 용서로 향상할 수 있다.
더불어, 소비사회 안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철학을 전공한 금세기 최고의 액션 스타이자 무도인(절권도 창시자)인 이소룡 Bruce Lee의 충고를 전한다.
“성공한 사람을 찾아 따라 하려 하지 마라. 항상 자신을 믿고, 온전히 너 자신이 되고, 그것을 표현하라. Always be yourself, express yourself, have faith in yourself, do not go out and look for a successful personality and duplicate it.”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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