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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Apr 21. 2017

미니멀리즘, 가성비 갑의 인생철학인가?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꼭꼭 닫았던 문을 열고 먼지를 턴다. 정리도 하고 새로운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할 생각을 하니 ‘물건’ 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내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 쓸모 있는 것만 남기자”

그렇게 사람들은 이제, 군더더기 없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삶의 본질을 추구하다


Less is more 


‘적을수록 풍요롭다’ , 혹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모토로 대변되는 미니멀리즘 minimalism 은 작가의 주관이나 표현을 철저히 배제하고 작품의 본질이나 재료의 특성에 집중하는 것을 추구하는데, 1960년대 처음 출현한 당시에는 단순함과 간결함이 '차가움'으로 느껴져 대중의 환영을 받지는 못하였다.


당최, 무엇을 표현했는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사람이 만들었는지 기계가 만들었는지...

[사진출처: 구글에서 'Donald Judd' 검색 이미지]


그러나, 풍요로움의 상징인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경제난을 겪고 나서, '과한 소유는 곧 경제적 위기와 직결'된다는 깨닫게 되었고,


수집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크고 작은 지진 속에서 자신의 수집품이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물건이 없을수록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절약과 검소함을 중요시하던 한국은, 급성장에 따른 무분별한 소비로 넘쳐나는 물건이 사람을 지배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급기야 명품백을 "우리 애기" 라며 부르며 물건에 집착하는 ‘물신숭배’의 모습이 사회에 만연하자 사람들은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소비하는 것이 곧 나' 인 소비사회에서 '물신숭배' 는 당연시되지만, 한국에서 특히 '과시적 소비' 가 성행하는 것은 그 빌어먹을 '체면 중시' 와 '남의 눈' 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허례허식보다는 실용을, 의미 없는 소비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심플함' 그것은, 경제난에 돈도 없고 자신의 SNS에 자랑할 만한 이렇다 할 '소비 활동' 도 못하기 때문에, ‘단출'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멋스럽게 보여주려는 적절한 핑곗거리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미니멀리즘은 미니멀라이프 minimal life 로 우리 삶에 들어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니멀라이프는 마치 1970년대 도요타 Toyota 의 전사적 생산관리 Total Productive Management 방법론과 닮았다는 것이다. 이는 정품(정확한 물품)을 정량(정확한 양)만큼 정위치(정확한 위치)에 사용하여 제조상의 낭비를 줄이고 시간을 단축하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정리 seiri, 필요한 것을 잘 보관하는 정돈 seiton, 깨끗하고 합리적인 상태를 만드는 청소 seiso, 정리· 정돈 · 청소의 상태를 유지하는 청결 seiketsu, 그리고 이것들을 지켜나가는 습관화 shitsuke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효율성’이 삶의 ‘가성비’와 연결이 되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미니멀리즘 하게 받아들이자


사실, 이러한 생산 효율을 위한 공장관리 방법론은 소비자에게 가성비라는 훌륭한 소비 가이드를 주지만, 생산 과정에서 인간성은 배제되고 인간의 흔적은 지워져 제품은 차가워지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은 심플함에서 미적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세련되다 (혹은 모던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서적 교감과 같은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추억이 깃든 삶의 흔적들을 너저분하다며 정리하면서도 응답하라류의 소위 ‘추억팔이’ 드라마에 목을 매고, 극단적인 명확성과 단순성을 제공하는 아이폰을 통해 공방에서 만든 수제품을 쇼핑하고 있지 않은가? 인생을 '효율' 과 '효과' 로 재단하는 자기계발서나 인간관계론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 ‘미움받을 용기’ 라는 키워드에 매료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미니멀리즘’이 모던한 디자인쯤으로 회자되며 또 다른 소비를 강요하고, 사람들은 또 다른 철학과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 우리 모두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성’이며, 인간성은 삶의 온갖 경험들과 너저분한 감정들, 그리고 시행착오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비움의 자리를 인간성으로 가득 채우려는 노력이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의 말처럼,
미니멀리즘을 미니멀리즘 하게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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