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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May 02. 2017

모두가 "YES"인데, 나 혼자 "NO"? 말이 돼?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이성적 동물'의 '비이성적 행동'


1960년,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너무나 놀랐다.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일 것이라 상상했는데, 만행을 저지르기엔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이었다.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

이라고 말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관련하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아이히만 쇼(The Eichmann Show, 2015)')


부당한 명령이라도 해도, 무비판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희대의 사례

[영상출처: ebs_지식채널e_그가 유죄인 이유]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세 모자 사건'이 있었다. '두 아들이 전남편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데, 이 후로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은 계속된다. 


한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수사 결과, 엄마의 허위 자작극인 것으로 드러났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유는 단 하나. 

시킨 대로 하지 않으면 두 아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는 ‘무속인 권력’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하는데, 왜 이처럼 불합리한 명령에 ‘비이성적 행동’으로 반응하는가? 


특히, 전쟁 상황에서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곤 하는데, 2차 대전 전범재판을 보며 

“사람들은 왜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진 *스탠리 밀그램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실험을 시작한다.

*Stanley Milgram(1933.8.~1984.12. 美. 사회심리학자) 예일 대학교 부교수 재직 중 실시한 ‘복종 실험’이 《권위에 대한 복종 Obedience toAuthority》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큰 파문을 일으킴. 밀그램의 이론은 애쉬의 동조 실험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잔혹한 인간군집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 되었다.


그리고, 실험 역사상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밀그램의 실험은, 인간의 자발적 복종과 순응에 대해 우리에게 생각할 과제를 주고 있다.

(사실, 아이히만이나 세 모자 사건과 같은 사례가 놀라울 것도 없다. "나는 시킨 대로 했다"식의 변명?은 '청문회'에서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사실, 너무나 많이 본 것이 문제이다. 욕하는 것 말고 우리가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비인간적인 실험


1961년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위해 교사 역할을 해 줄 사람을 모집합니다"라는 신문 광고를 보고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평범한 사람들 40명이 참여한다. 실험 참가자는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흰색 가운을 입고 엄격해 보이는 연구자가 있고, 테이블에는 15V에서 450V까지 30단계의 전기 충격기가 있다. 


교사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는 옆 방 전기의자에 묶여있는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처벌로 전기 충격을 준다. 한 문제를 틀릴 때마다 충격의 세기는 강해진다. 그 대가로 4달러 남짓의 돈을 받게 된다. 


(당시 맥도널드의 치즈버거가 19센트였으니, 치즈버거를 20개 이상 사 먹을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사진출처: flickr_Adrien Cretin]


학생은 자꾸 답을 틀리고, 실험실에서 꺼내 달라는 학생의 비명이 나오기 시작한다. 


참가자는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자는 "절대 죽지 않으니 계속하라, 그리고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라고 한다. 


실험은 계속되었고, 300V에서 소란이 멈춘다. 교사 역할의 참가자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연구자는 "실험을 계속하세요"라며 방을 나간다. 


이 실험이 계속되면 반대편 학생은 위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참가자는 스스로 자신의 임무에 총력을 기울이며, 전기 충격을 최대치까지 올린다. 정적이 흐르고 교사는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선다. 학생은 죽었는가?


전기 충격기는 가짜였고, 전기의자에 묶여 있던 학생은 배우였다. 

그리고 실험의 진짜 목적은 '권위에 대한 복종 연구'였다. 


회사에서 부당한 지시를 했다. 당신은 따르겠는가? 내부고발자가 되겠는가?

[영상출처: Youtube채널_당신이모르는이야기_'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편]


"나는 알고 싶었다. 왜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지, 왜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며 이 실험을 진행한 밀그램은 기껏해야 0.1% 정도의 사람만이 450V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가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일대 학생 92%는 “그럴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65%. 게다가 실험 참가자들은 말한다. 


"내가 왜 그런 무자비한 일을 했을까요? 제 자신이 이해가 안 갑니다. 시켜서 한 것뿐이에요"라고...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 충격적이다.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다루기 때문이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라! 귀신이 무서운지, 사람이 무서운지... 

공포 영화 대신, 밀그램의 실험을 다룬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밀그램 프로젝트(Experimenter, 2015)', '[EIDF2016] 쇼크룸: 밀그램의 실험 (Shock Room)')




사람의 인격이 원숭이의 것보다 나은가?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그저 맡겨진 일을 할 뿐 어떤 악의도 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끔찍하리만치 파괴적인 범죄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스스로 행한 일이 초래할 파괴적 결과가 극명히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그리고 기본적인 도덕 기준에 반하는 행동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조차, 권위에 저항할 대처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생 보고 겪는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보인 초등학생 아이들 간의 권력의 형성과 붕괴, 그리고 복종은 어른이 되어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지속된다. (이 책은 꼭 봐야 한다.)


회사는 권한에 기반한 위계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권한은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으로('결정권 Power to make decision'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나의 상사는 나의 보상과 처벌에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는 복종과 순응을 생활화한다.


회사에서의 '알아서 기기'와 윗사람에 대한 '과도한 영접'은 중요한 매너이며, 직장인의 90도 인사는 그 중요한 표현이다.

[사진출처: 대웅제약_우루사_2006_TVCF_평소에 관리 편] 


그러나, 권력의 무자비한 사용은 자발적 복종을 초래한다. 최근 '인분 교수'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협회에 제자를 취업시킨 후,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인분을 먹이는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이는데, 이 기막힌 상황에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제자들도 함께 가세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사람이 매일 그렇게 맞게 되면 머릿속이 바보가 된다"며 되뇌었다. 그럼에도 탈출하지 못한 이유는, 교수에 대한 꿈과 1억 3천만 원의 공증각서, 그리고 가해자들의 절대적인 권위에 굴복당해, 급기야 '내가 잘못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자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세뇌 때문이었다.


여기 버튼 앞에 붉은털원숭이 한 마리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대신 상대방 원숭이는 고통스러운 자극을 받게 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붉은털원숭이는 15일 동안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15일 동안 먹이를 얻지 못했다. (마크 하우저 MARC D. HAUSER 의 '붉은털원숭이 실험')


붉은털원숭이는 (암묵적으로) 시킨 대로 하지도 않았고, 상대방의 고통을 외면하지도 않았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직장에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동료가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외면하지 않았는가? 붉은 털 원숭이의 이타적인 행동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쇼핑의 또 다른 이름, ‘메시지에의 복종’


밀그램의 실험에서 권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기재들이 있었다. 흰색 가운과 엄격한 목소리, 대학교의 명성 등이 그것이다. 권위와 권력에 복종하는 인간 심리는 마케팅에 흔히 사용된다.


화장품이나 제약광고를 떠올려보라. 많은 경우 흰색 가운을 입은 전문가가 제품의 효능에 대하여 증언 testimonial을 하곤 한다. 사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흰색 가운은 의사, 연구원 그리고 요리사 등 그 자체가 권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와 불안을 느끼고, 결국 구매한다.

 

화장품은 'BEAUTY'를 판다. 어떤 브랜드는 'FANTASY'를 이용하고, 어떤 브랜드는 'CARE'를 이용하여 판다. 


TV홈쇼핑 쇼핑호스트는 제품의 수량 부족, 시간의 제한 등 긴박한 상황을 만들면서, 평형이 유지되는 소비자의 상태를 깬다. 기회는 지금뿐이라며 "방아쇠를 당겨라 Trigger effect"는 안내를 하고 우리는 구매를 한다. 이렇게 쇼핑의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쇼핑호스트의 멘트(쇼핑호스트가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에) 자체가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특성을 지닌 집단의 결정도 권력이 된다. 광고 문구를 기억해 보라. 종종 광고에서는 '직장인이 가장 많이 쓰는', '앞선 여성의 선택', 'S대 연구진이 개발한'이라는 등의 메시지로 *준거집단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 한다.  

*Reference Group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집단에 속하는데, 특정 집단은 개인의 사고방식, 태도, 행동의 형성에 영향을 주며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현재 속해 있는 집단을 의식하며, 어떤 집단에 속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의지와 상관없이 그 집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준거집단의 양식을 따르는 것이다. 마치 놀이동산에 있는 놀이기구를 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행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인을 의식하고 동조하려는 심리적 압박이 권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은 고의적으로 오답을 말할 수 있는가?


밀그램의 실험 이전에 사회심리학의 대가이자 밀그램의 스승인 *솔로몬 애쉬의 실험이 있었다. 

*Solomon Asch(1907.9.~1996.2. 美. 사회심리학자) 사회심리학의 개척자. 프린스턴 대학 교수 시절 실시한 집단 압력에 대한 연구 '순응 실험 Conformity Experiment'은 밀그램의 실험과 더불어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으로 평가된다.


실험은 개별적인 사고가 집단사고에 쉽게 지배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는 왼쪽의 막대그래프와 서로 다른 세 개의 막대그래프가 있는 오른쪽을 비교하여 크기가 같은 막대그래프를 하나 선택하는 간단한 실험을 했다. 1명의 피험자와 7명의 바람잡이가 이 문제를 함께 풀도록 했는데, 바람잡이들이 모두 엉뚱한 답을 제시하자 피험자 역시 이들과 같은 엉뚱한 답을 제시했던 것이다. (참고: 카카오TV_순응(혹은 동조) 실험)


이러한 심리를 반영한 광고가 있었다. 광고에서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YES'도 'NO' 도 소신 있게"라고 말해 한 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유행이 된 이유는, 시쳇말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이다'였기 때문일 것이다.


2001년, '소신있는 친구'라는 광고캠페인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한 증권사 광고 

[영상출처: 광고정보센터]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나 정교 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이 마비되어 다양한 형태의 권력에 대하여 반사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는 나이, 차, 아파트, 학벌, 회사, 직위, 연봉, 빽, 연줄, 등 다른 사회보다 더 많은 권력이 있고, 우리는 거기에 복종하거나 복종당하고 있다. 그리고,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의 논리로 복종당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복종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권위와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던 권력은 있고 복종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시대이던 권력과 복종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되었다. 권력에의 저항은 혁명으로 나타났고, 그 혁명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온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혁명은 사회나 국가 단위의 큰 것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몸은 하루하루 도그마 Dogma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나라고 하지 않는가?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로 자신을 체념하거나,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자. 그 어떤 복종과 순응이라도, 거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므로...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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