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큰 마음먹고 고급차를 샀는데 차에 결함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은 후회와 불안한 마음으로 자동차 회사를 비난하겠지만, 일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구매한 차의 좋은 점과 긍정적인 정보만 수집한 후, '자신이 구매한 차는 여전히 최고'라며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거나 합리화, 혹은 정당화한다.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구매한 차가 좋은 차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이해가 가는가?
최근, *디젤 게이트라 불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었다.
*Diesel Gate(2015. 9.) 폭스바겐의 디젤 엔진 배기가스가 기준치보다 수십 배 넘게 발생하지만, 환경기준을 충족하도록 엔진 제어 장치를 조작한 스캔들.
부가티 Bugatti, 람보르기니 Lamborghini, 벤틀리 Bentley, 포르셰 Porsche, 아우디 Audi, 폭스바겐 Volkswagen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자동차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파는 자동차 그룹, 폭스바겐 그룹이 디젤 엔진 배출가스량을 조작해 판매한 정황이 포착돼 미 정부가 나서게 되었고,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배출가스 조작은 '환경이슈'라는 전 세계의 공통 관심사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MADE IN GERMANY' 품질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전 세계인에게 경악할 만한 사고였다.
[사진출처: THE SUNDAY TIMES]
마침, 독일차에 주도권을 빼앗긴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는 낭보였으리라. 독일차를 넘어 독일의 시스템까지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사들이 넘쳐 났으며 SNS에는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폭스바겐 오우너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현기차(현대기아차)보다는 좋다", "나는 만족하며 타고 있다", "리콜을 해도 연비와 성능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는 등의 폭스바겐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응원의 목소리였다. 소비자 권리를 내세우며 리콜에 대한 집단행동을 할 만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태도에 대하여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Leon Festinger(1919.5.~1989.2. 美. 사회심리학자) 아이오와 대학원에서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 Kurt Lewin 의 지도를 받음. 대표 저작《예언이 빗나갈 때 When Prophecy Fails(1956)》, 《인지 부조화 이론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1957)》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적절한 조건 하에서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하는 동인을 형성한다.
1957년 11월 밤, 미국 미니애폴리스 주의 레이크 시티에 살고 있는 의대 교수 매리언 키치와 그녀의 UFO 동호회 친구들에게 '사난다'라는 이름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1957년 12월 21일 자정에 대홍수가 날 것이며, '사난다'라는 이름의 신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교敎를 만들어 종말을 준비한다.
소문은 금세 퍼져, 가까운 미네소타 대학에서 심리학자로 활동하던 서른한 살의 페스팅거에게 까지 온다.
그는 예언의 날에 대홍수가 나지 않고, 우주선이 구원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과연 그들은 믿음을 저버릴 것인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 것인가?
예언이 실패할 경우 벌어질 일들이 궁금했던 페스팅거는 신자를 가장하고 교단에 몰래 잠입한다. 신자들은 직장과 가족을 버리고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사진출처: THE UNIVERSITY OF SYDNEY]
대홍수가 찾아오기 전날 밤, 신분을 숨긴 연구자들과 신자들은 계시를 받기 위해 매리언 키치의 거실에 모였다. 조용한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으며, 흥밋거리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방송국 차량의 조명만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그렇게 자정은 지나갔다. 예언이 실현되지 않음에 충격받은 신자들은 울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인터뷰하기 위해 방송국은 혈안이 되었고,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던 신자들은 갑자기 인터뷰를 하기 시작한다.
"밤새도록 앉아 있던 신자들의 기도에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
신자들은 이렇게 몇 날 며칠에 걸쳐, 수십 건의 인터뷰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행동과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페스팅거는 이교도 집단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그 유명한 '인지 부조화 이론'을 세우고 인간 정신의 '합리화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다.
인지 부조화 이론이란, 개인이 가진 신념, 생각, 태도와 행동 사이의 부조화가 유발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태도나 행동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우리는 태도와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어서,
인지적 부조화를 경험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 심리적 불편감을 해결하고 자신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태도와 행동 간 부조화를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부조화를 증폭시키는 정보(신념이나 태도와 반대되는 아이디어, 정보 및 의견)를 회피(선별적 노출)하거나, 행동을 결정한 후 자신의 선택의 타당성을 확신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통해 정신적 부조화나 불쾌함, 불안함을 해소(결정 후의 부조화)하기도 한다.
가령, 평소에 다이어트에 목을 매던 여성이 새로운 맛집에서 '맛있게 먹으면 제로 칼로리'라며 맛깔 난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는 행위,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조언에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약이다' 혹은 '맥주는 술이 아니라 음료다'라는 괴변을 늘여 놓는 행위는 내 안의 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노력들이다.
심지어 바람둥이들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조화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부정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자기합리화•정당화를 통해 죄책감을 줄인다고 한다.
금연의 어려움은 '담배 끊는 사람과는 상종을 말라'는 말로 표현되곤 하며, 그 어려움만큼 다양한 시도가 있다. 흡연이 건강에 얼마나 나쁜지 말해 주는 캠페인에 흡연자들은 '스트레스 관리는 담배, 건강 관리는 운동'이라는 말로 흡연을 합리화하며, 흡연으로 인한 질병의 끔찍한 사진을 보여주면 회피하기도 한다. 흡연을 지속하기 위해 흡연자들은 온갖 변명거리를 늘여 놓는데, 웬만하여서는 흡연자의 인지 부조화 감소 노력을 극복할 수 없다. 이럴 때는 흡연으로 인한 '가족의 슬픔'이나 '주위 사람에의 피해'와 같이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협박'하는 것이 더효과적일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순간순간의 인지 부조화 속에 살고 있는데, 인간의 뇌는 (생리학적으로) 일관성을 원하며 이것이 무너졌을 때 자동으로 회복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지 부조화를 "알고도 속고, 몰라도 속는다."
특히, 정치인, 언론사, 광고쟁이, 홍보맨, 영업사원 등 남을 설득하는 것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통틀어, '선전가'라고 하자!)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흔히, 선전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합리화의 올가미 rationalization trap’를 유리하게 이용하곤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부조화를 느끼게 만들어,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이나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참고: http://blog.naver.com/adflashblog/220345620529)
즉, 선전가들은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식의 자극을 통해, 죄책감을 느끼게 하던지, 창피하거나 부적절한 느낌을 갖게 하던지, 혹은 상대방을 위선자처럼 보이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만들어 버리는 방법 등을 이용한다.
그다음, 부조화를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선전가가 처음부터 복안으로 갖고 있는 '요구 사항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선전가의 의도대로' 죄책감을 감소시키거나, 수치스러운 기분을 없애고, 헌신에 대하여 존경을 받으며, 불편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선금을 기부하고, 고급 자동차를 구입하며, 적을 증오하거나 그 지도자에게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기업은 소비자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소비자의 심리적 균형 상태를 일부러 깨뜨리든지 혹은 구매 후 발생할 불균형에 대하여 미리 안심시키는 방법을 쓴다. '상위 1%의 선택'이라며 고급차를 팔고 인지 부조화를 느끼지 않게 지속적으로 VIP 마케팅과 광고를 하거나, 구매 후의 제품에 대한 불만을 사전에 잠재우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해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한다.
(사실, '상위 1%'라는 카피의 속마음은, "대한민국 1% 여러분들, 여러분들 격에 맞는 고급차가 나왔습니다"라기보다는 "'대한민국 1%'처럼 보이고 싶은 여러분들~, 사람들이 당신을 그렇게 알아볼 수 있도록 '이 차는, 대한민국 1%'라고 광고를 많이 했으니 걱정 말고 구입하세요~"라는 노림수일 것이다.)
[영상출처: 쌍용자동차 공식 유튜브]
1996년 '비상식량' 콘셉트로 출시되었던 CJ제일제당의 '햇반'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그러나, "2분 만에, 손쉽게 밥이 된다"는 편리성을 강조하며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였음에도 출시 초기에는 판매가 부진했었다.
[영상출처: CJ 공식 유튜브]
'비상식량=편하나 정성이 부족한 밥'이라는 엄마들의 인식, 즉 엄마들의 '죄책감'이 인지 부조화를 유발하여, 구매를 망성이게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2분이면 밥이 된다"는 편리성이, '집밥', '엄마가 해준 밥'이라는 가치와 규범, 그 의미를 극복할 수는 없었는가 보다.
이후, 엄마들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은 지속되었으며, 결국 "미안해하지 마세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만들었어요"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로 소비자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광고를 보면 알겠지만, 엄마들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엄마들~ 욕먹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으니, 죄책감 내려놓으시고, 제발 좀 잡숴봐~"라는 말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거지...)
[영상출처: 광고정보센터]
이제, 죄책감이 더 이상 판매를 발목 잡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아침밥 자리에 빵과 시리얼이 들어왔다. 외식 때문에 밥 소비량은 더 줄었다. 게다가 '즉석밥' 시장에 경쟁자도 많아졌다. 이젠 밥맛과 상품 다양화가 답이다. '밥보다 더 맛있는 밥'으로 콘셉트를 바꿔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고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소비를 자극해야 한다.
[영상출처: CJ제일제당 공식 유튜브]
남성과 달리 여성은 판매 후 마케팅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구매 후에도 잘 샀는지 고민을 하고 이유 없이 마음이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이러한 여성의 인지 부조화를 해소에 주력한다. 11번가의 광고에서 2NE1 멤버들은 주문한 물건을 받고, '색깔이 맘에 안 든다', '사이즈가 안 맞는다', '반품 한 번에 전화를 몇 번이나 하게 하냐'며 불평을 하다. 티몬의 광고에서 '옷은 맘에 드는데 옷이 너무 잘 맞아 이뻐져서 남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을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두 광고의 끝에는 모두 무료 반품 교환을 해줄 테니 걱정 말고 구매를 하라고 말한다.
이처럼 인지 부조화 이론은 다른 사람의 태도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설득 전략이 될 수 있으며, 마케팅에서도 인지 부조화를 줄여 구매촉진을 위한 전략으로 자주 사용한다.
혹시, "이젠 속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계신가? 그렇다면, 이 말을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는 과정을 "알고도 속고, 몰라도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풀이하기에 달려있다며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자주 쓴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끊임없이 부딪히는 마음과 생각, 그리고 태도와 행동의 부조화에 대하여 100만 가지의 합리화를 시도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태도와 행동에 대해 ‘의지가 약하다’며 걱정하거나, ‘자기 편한대로만 생각한다’며 남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부조화의 간극을 그렇게라도 꿰매버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신경학자 V.S.라마찬드란 박사는 뇌의 좌반구에 '결점을 지적하는' 신경 장치가 있으며, 이 장치는 우리의 굳건한 믿음 체계에 일격을 가하는 어떤 것을 발견할 때 작은 신경 전달 물질로 신호를 보내어 우리로 하여금 부조화를 겪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반구에는 시냅스와 세포로 구성된 강력하고 탁월한 이야기꾼이 있어 이 뿔난 적군을 때때로 물리친다며 인간의 인지부조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소도 기댈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하지 않던가!
험한 세상에 나를 사랑하고 안아 줄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이어야 한다.
아픔과 절망의 상황을 뚫고 나오는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긍정의 힘'이나 '자기 최면’, 혹은 악의 없는 거짓말인 화이트 라이 white lie, 무엇이든 좋다. 내 마음의 평화와 정신건강을 위해 엄격한 잣대를 내려놓고 가끔은 거짓말을 하자!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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