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레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SNS의 기막힌 모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촘촘히 연결된 사회, 그럴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개인."
《영화 디스커넥트 Disconnect. 2012》
'카톡'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메신저는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미디어인데, 그 안에는 소통과 정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폭력도 있다. 다수의 시선은 폭력적인 시선으로, 다수의 의견과 취향은 따돌림이라는 모습으로 소수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통과 관계를 위한 메신저가 어떻게 폭력을 조장하고 우리는 왜 방관자가 되어가는가?
폭언, 스토킹, 성폭력, 신상 털기 등 사이버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력은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확장되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는데, 특히 대한민국 국민의 80%에 육박하는 사용자를 보유한 카카오톡의 단체 채팅방-단톡방에서 발생되는 ‘단톡 스트레스’는 과히 질병 수준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다. 단톡방을 나가기라도 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 나간 사람은 뒷말이 나올까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SNS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인 사이버불링 cyber bullying은 일반적으로 ‘카따(카카오톡 왕따)’의 형태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사이버 왕따’는 단순히 상대방이 싫거나 재미로 시작하는 것이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시공간의 제약 없이 행해지며 ‘현실의 왕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 특성과 상황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데, 상황적 요인은 때때로 우리를 폭력의 가해자로 만든다.
내가 폭력의 가해자라고? “그렇다” 사이버 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 피해자를 괴롭히는 집단 내부의 다수 의견(괴롭힌다)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방관자가 있다. 방관자 중에는 반대 의견(괴롭혀서는 안 된다)을 지닌 이도 있지만, 소수 의견에 해당하는 자신의 의견을 공개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의 말을 빌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왕따가 되는 건 한순간이라, 내가 왕따가 되기 싫으면 그러한 분위기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동의를 통해 우리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동조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이버 폭력에서는 말이 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에 동조하는 과정은 모든 단톡방에서 나타나는데, 주로 그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즉, 단톡방 내에서 특정 관점이나 취향을 중심으로 유사한 의견을 공유하는 집단이 형성되면, 동일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는 소수 집단에 대한 강한 배타성을 의미하며, 이로서 단톡방에서 자연스럽게 사이버 왕따가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된다. 노이만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우세하고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 있게 겉으로 표명하고 소수 의견에 속하면 침묵한다”라며, 이를 ‘침묵의 나선’이라고 정의했다. 다수 의견은 나선의 바깥쪽으로 돌면서 점점 세가 커지는 반면 소수 의견은 나선 안쪽으로 돌면서 세를 잃게 되는데, 이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람은 실수보다는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수의 정서에 공감하는 척한다”는 토크빌의 말을 빌어,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로부터 거부, 배척, 소외 등 고립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였다.
*ElisabethNoelle-Neumann(1916.12.~2010.3. 獨.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 여론 형성 이론인 '침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을 주창하여, 정치와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전분야에 큰 영향을 미침.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여론조사기관인 알렌스바흐 Allensbach를 설립했으며 세계여론조사협회 회장을 지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분리되어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동조를 통해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고립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는데 ‘*동조실험’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진실은 필요 없다. 단지 사람들과 달리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울 뿐 stigma이다. 이처럼 동조는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침묵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Conformity Experiment. 사회심리학의 대가, 솔로몬 애쉬의 연구. 그는 왼쪽의 막대그래프와 서로 다른 세 개의 막대그래프가 있는 오른쪽을 비교하여 크기가 같은 막대그래프를 하나 선택하는 간단한 실험을 함. 1명의 피험자와 7명의 바람잡이가 이 문제를 함께 풀도록 했는데, 바람잡이들이 모두 엉뚱한 답을 제시하자 피험자 역시 이들과 같은 엉뚱한 답을 제시함. 이를 통해 집단의 영향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밝힘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새벽 3시. 28살의 제노비스는 일을 마치고 아파트 옆 주차장에 차를 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파트로 걸어가는데,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불길한 기분은 잠깐, 순식간에 그녀의 등 깊숙이 칼이 들어온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녀의 비명에 주민들은 잠에서 깼고, 불빛에 괴한은 도망간다. 잠잠해지자 주민들은 불을 끄고 창문을 닫고 조용한 틈을 타 괴한이 다시 온다. 그녀는 또 난도질을 당하게 되며 구경은 또 이어진다. 이 과정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약 35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도움을 청하는 비명이 있었지만 38명의 사람들은 불을 켜고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돕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방관하였는가?
이 희한한 범죄를 보고 뉴욕대학의 존 달리 John Darley와 컬럼비아 대학의 빕 라타네 Bibb Latané 는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며 소리를 지를 때, 사람들은 어떤 조건 하에서 요청을 무시하고, 또 동정을 베푸는가를 연구하게 된다. 대학생의 도시 생활 적응도를 연구하는 것으로 가장하여, 학생들을 모집한 후 각자 방에 들어가 뉴욕에서의 대학생활을 차례로 이야기하게 했다. 각 방은 격리되어 있었지만, 각 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제노비스 사건과 유사한 환경에서 한 학생이 간질 발작을 연기한다. 사건과 같이, 대다수 학생들은 돕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의 숫자가 적어질수록 간질 발작을 연기한 학생을 돕고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상하지 않은가?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두려움이 적어져 위험을 무릅쓸 것이라 생각되는데, 집단의 크기만큼 방관하는 집단의 크기도 커져 이로 인해 도움을 주려는 행위가 억제된 것이다. 즉, 군중들 사이에서 책임감이 공평하게 나누어져 책임감이 분산되기 때문에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적어진 것이다. 마치 단톡방에서 공격을 당하는 친구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1965년 서독 총선에서 선거 전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노이만은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의 작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국 그녀는 실제와 다른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은 개인이 느끼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침묵의 나선’ 현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밝혀낸다.
더불어, 사람들이 대세에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동조하는 것 또한 밝혀낸다. 가령, 선거 후 실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승자에 투표했다고 응답하는 결과가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자신이 어떤 이슈로부터 벗어나 있음으로써 받게 되는 사회적 오명을 피하고 다수에 포함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노이만은 “선거 운동을 포함한 정치적 캠페인의 목표는 엄밀히 말해 유권자가 마음을 결정하는 그 순간까지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흥분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여론을 일으키고자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선거라는 것은 정책보다 여론몰이에 집중되고, 다시 사람들은 여론에 의해 비이성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여론에 의해 비이성적 결정을 내린 후에 우리는 많은 후회를 하는데,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몇 해 전,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외·고립감 공포증을 뜻하는 단어 ‘FOMO(Fear Of Missing Out)’가 올라왔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 David Riesman이 이미 반백년 이전에 고독한 군중 Lonely Crowd, 군중 속의 고독을 이야기하며, 대중사회 속에서 인간은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한다고 했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사이버 환경에서는 그 고립감이 폭력으로 변화되어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주고, 더불어 침묵하는 다수는 방관자가 되어 폭력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랜트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대학교의 조지 베일런트 George E. Vaillant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의 조건》에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다"라고 했고, 일찍이 19세기 사회학자 뒤르켐 Émile Durkheim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잘 어울려 지내야 한다”라고 하였다.
GrantStudy. 1938년, 백화점 재벌 윌리엄 T. 그랜트의 후원으로, 하버드대학교 2학년생 268명의 삶을 72년 동안 추적하면서 행복한 삶의 공식에 대하여 연구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과 바둑을 두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폭력이 미리 예측되어 범죄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만약, 그러한 미래가 싫다면, 사이버 공간에서 나와 가족과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수다를 떨어보자.‘단톡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삶보다는 조금 더 낫지 않겠는가?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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