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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Oct 19. 2017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진짜 세상인가

“진실은 저 너머에 The truth is out there”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들을 돕는 정치깡패 그리고, 언론의 관계를 그린 영화 ‘내부자들’(2015). 영화 중, 언론사 논설주간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저널리즘과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스 E.Bernays 와 월터 리프만 W. Lippmann 은 “여론은 조작되며, 사람들은‘실제 세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대중은 여론의 흐름에 따라 흔들거리는 갈대인가?


여론, 그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 세상을 움직이는 힘


여론이란 개개인 의견의 총합 혹은 어떤 담론의 형태를 의미하기도 하고, 이익단체 등의 집합적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여론이란 많은 사람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목소리를 내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비슷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그렇다면 그것은 곧 힘이 된다. 우리는 그 힘을 커뮤니케이션 효과라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 효과라는 것은 대개 미디어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인데 일반적으로 흐름이 있다. 미디어는 수많은 뉴스 중 보도 가치와 같은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취사선택-게이트 키핑 gatekeeping 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특정 주제에 대해 주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슈를 중요한 것으로 평가하도록-의제 설정 agenda setting 한다. 그러면, 그것은 여론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프레이밍(틀 짓기) framing.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특정한 혹은 다른 틀 과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현상을 보게 만드는 것으로, 카메라 렌즈와 초점, 그리고 구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이 되는 효과와 같다. 이렇듯, 의제 설정을 통해 미디어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를 말해주며, 프레이밍을 통해 그것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 과장하면)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실제 세상’이 아니라 미디어가 알려준 세상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버네이스는"대중심리의 원리와 동기를 이해하면 대중이 눈치채지 못하게 마음대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단어 한두 개로도 이것이 가능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단어 하나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단어 하나로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고 움직일 수 있다? 여기 프레이밍을 통해 그 마술 같은 일을 실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현상을 주제 episodic frame에 맞추느냐, 일화 thematic frame에 맞추느냐이다. 가령, 실업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관점 차이가 있는데, 보수는 실업자에 대한 휴먼 스토리와 같은 일화에 초점을 맞춰 실업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진보는 실업 통계와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춰 실업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확보한다.


둘째, 은유 metaphors를 이용한다. 보통, 국가는 가족, 정부는 아버지, 국민은 아이들로 은유된다. 그래서,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으로 자식이 경쟁을 스스로 헤쳐나가도록 감정 절제와 보상, 처벌을 강조하며, 진보는 반대로 ‘자상한 어머니 프레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복지정책에 대하여 보수는 빈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을, 진보는 정부의 책임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셋째, 단어 naming와 연상 association이다. 여기 일본군 위안부 comfort women 혹은 성노예 sexual slaves 할머니 문제가 있다. 위안부와 성노예가 주는 느낌의 차이를 알겠는가?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쓰는 단어는 이렇게 달라지며, 이것은 여론의 크기와 향방에 영향을 준다.


마지막은 결과에 대한 책임 Attribution of Responsibility을 누구에게 돌리는가 이다. 여기 대형 사고가 있다. 그 사고가 천재天災라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정부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해주면 된다. 그러나, 인재人災라면 정부나 기업에 대한 책임공방이 펼쳐진다. 그래서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인 언론의 경우 사고를 인재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가? 보통 우리가 심리전 혹은 여론전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이런 프레임 싸움인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조작할 수 있다


미디어는 프레이밍과 같은 방식으로 뉴스를 재단하여,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기도 하며, 그 안에 드라마, 브랜드, 마케팅, 광고, 홍보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삶을 소비해야 하는지 결정하기도 한다. 즉, 미디어는 나의 인식과 태도를 조작하여 *자유의지대로 세상을 살 수 없도록 조장한다.

*Free will. 자신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일찍이 버네이스는 사회를 조작하는 기술을 기업에도 적용하여 발전시켰는데, 대량 생산되는 제품을 팔아치우기 위해 사람들의 무의식적 욕구와 연결시켰고, 사람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충동구매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람들은 ‘브랜드 이미지’라는 허상에 휘둘려 구매를 하기도 하고, 어떤 브랜드가 브랜드 만족도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하면 신뢰하기도 한다. 토론 프로그램에서 카메라 앵글, 음향 크기, 밝기, 화면 내 노출되는 크기와 빈도에 따라 토론자가 말하는 말의 중요도를 파악하기도 한다. 예능에서 악마의 편집으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 주면 울기도 웃기도 한다. 기업이 위기관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평판을 결정하기도 한다(사람들은 기업의 부정적 문제에도 기업이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따라 기업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외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흙수저’와 같은 담론을 이슈화 하면, ‘아,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고, 나는 하층 계급이니 군소리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사람들을 조작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가? 이것은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음모론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실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Conspiracy theory.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 단체의 음모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




조작의 놀이공원에서 놀고 있는 착한 아이들


“전 세계의 정보를 조직하고, 어디서나 누구나 그것에 접속하고 사용하게 한다(To organize the world’s information and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 and useful)” 구글 Google의 미션이다. 그것을 하나씩 실현하여, 이제 구글에 로그인을 하면 50개 이상의 시그널을 통해 구글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단박에 알아낸다. 월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Journal의 조사에 의하면, CNN, 야후, MSN을 비롯한 상위 50곳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평균 64개의 쿠키와 개인 정보 추적용 유도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말인즉슨, 당신의 이용 패턴과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여 당신을 분석하고 예측하여 추천해주는 개인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당신에게 ‘딱 맞는’ 정보만 준다는 것이다. 그 외의 정보는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을 당신은 볼 수 없다. 검색 *알고리즘이 당신을 지배하고, 정보 접촉 기회 가능성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Algorithm.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히 정의된(well-defined) 일련의 규칙과 절차의 모임


이 끔찍한 감시와 조작은 마치,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의 소설 *'1984'속에 나오는 1인 독재자'빅브라더'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혹은, 중국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고 진秦나라를 세운 뒤,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생매장시킨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현대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에서 ‘인간’들이 이세돌을 응원했던 것이 앞으로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 것이라는 순진한 두려움이었다면, 이미 알고리즘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까지 바꿔놓고 있으며, 그 조작이 여론을 만들고 다시 그 여론이 미디어에서는 뉴스화 되어 결국,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볼 기회는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1984. 빅브라더라는 거대한 지배 체제 하에 놓인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디스토피아 소설




한정식으로 먹을래? 뷔페로 먹을래?


한정식은 철마다 다른 재료로 여러 음식을 골고루 내어 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세상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뷔페에서 잘 먹는 것들을 분석해서 그것만 준다고 해보자. 다양한 음식의 맛은 고사하고, 우리는 편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디어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1인 미디어 시대에 이제는 누구나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술이 세상에 대한 인식을 ‘자동적으로’ 왜곡한다.


         편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기형적인 몸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용기를 내어 행동해야 한다. 물론, 미 국가안보국 NSA이 전 세계에서 인터넷·이메일·전화통화를 감청해 온 실태를 고발한, 전직 미 중앙정보국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처럼, SNS를 통해 민주시위를 전 세계에 알려 ‘아랍의 봄’을 가져온 시위대처럼 급진적일 필요는 없다.


그저, 미디어에서 주는 정보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주는 검색 결과가 ‘실제 세계’가 아닐 수 있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책을 보고, 관심을 넓히고, 스스로 사고하며,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대화를 멈추고,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시작하라! 그것이면 족하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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