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한 치유와 화합
※ 일본 음식의 향연을 상상한다면, 과감히 '패스'해야할 영화. 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미친 '먹방' 대신 살면서 음식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단 1분이라도 하고 싶다면 볼 만한 영화! 다소 엉성하지만 돈코츠 라멘 국물처럼, 가족과 음식에 대한 찐!한! 여운을 주는 영화!
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시사회에 초대되었다.
<우리가족: 라멘샵> ( Ramen Shop, Ramen Teh, 2018 )
드라마 | 싱가폴, 일본, 프랑스 | 2019.01.31 개봉 | 90분,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에릭 쿠
(주연) 사이토 타쿠미, 이하라 츠요시, 마츠다 세이코
(평가) "화려하지 않지만 포근하고 담백한 맛" - 씨네21 | 김성훈 기자
우리가족: 라멘샵?
'뭐, 라멘 가게를 운영하는 가족의 에피소드가 메인 스토리로, 화려한 라멘 비쥬얼이 그럴싸하게 보여지는 먹방 영화인가?' 싶었다. 이런 1차원적인 상상이 가능한 것은, '음식=먹방'이라는 공식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상상이 깨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싱가포르, 일본 수교 50주년 기념 합작영화라...
라멘과 수교가 무슨 상관이지? 영화는 등장인물의 설정과 갈등구조로 담담히 이것을 설명해 주었다.
마사토(사이토 타쿠미)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아, 통속적인 싸구려 표현 같으니라고...), 실의에 빠진 무뚝뚝한 아빠와 함께 라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 빨리 죽어 부인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 듯 보이는 아빠... 어느날 아빠는 정말 죽어 버렸다.
이제, 혼자가 되어버린 마사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중국어로 쓰여진 엄마의 일기장. 싱가포르인이었던 엄마. 엄마의 이야기를 따라, 엄마와 아빠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마사토는 싱가포르로 간다.
마사토는 싱가포르 현지 친구의 도움으로 엄마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 간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았던 엄마의 슬픔을 알게 된다.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는 마사토의 할머니는 일본인인 마사토의 아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마사토는 역사가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가 무슨 잘못을 했냐며 할머니에게 따지지만, 할머니는 냉랭하다. 아픈 역사는 언제까지나 남아 현재를 살아가는 이에게도 갈등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사토는 정성스런 음식으로 할머니를 감동시킨다. 이것은 과거의 갈등을 해소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으리라.
마사토는 결국, 아빠의 요리 라멘과 엄마의 요리 바쿠테를 퓨전하여 완성한 가족 레시피-라멘테 Ramen Teh로 또 다른 가족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동안 보아왔던, 본능으로써의 '식욕' 충족 도구로서의 음식이 아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매개체로서의 음식, 그리고 노스탤지어 nostalgia를 채워주고 관계를 이어주는 음식과 식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다.
정말 정성스런 음식을 먹으며, 그 소중함에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이라면 200% 이해할 수 있는 진한 감동이 있다.
여기서 잠깐, 라멘테는 정말 있을까?
영화 제목인 '라멘테'가 아닌, '바쿠테 라멘 Bak Kut Teh Ramen'이라는 메뉴로 $13.80에 팔았다고 한다.
나와 같은 1차원적인 상상, 혹은 '라멘 먹고싶다', '일본은 나쁜놈'식의 영화평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라멘 대신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와 싱가포르의 공통점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일제의 식민지 였다는 것이고, 그로인한 반일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13세기 수마트라 지역 스리위자야 왕국의 트리부아나왕이 표류, 상륙한 후 목격한 사자를 보고 싱가푸라(Singapura : 사자의 도시)라고 명명된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 시대(1919~41)를 거쳐 일본 점령시대(1942~45)를 거쳤다.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싱가포르 전투(Battle of Sinagpore)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1942년 중국 국민당을 지원하는 싱가포르의 중국계 주민들을 反일본 성향으로 간주하고, 대규모(약 5만-10만 명) 학살을 자행(숙칭 대학살)한다. 마사토 엄마의 가족도 이 때 학살 당했고 그에 대한 반일 감정때문에 마사토의 아빠를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와 연을 끊었을 것이다.
그러면, 음식을 통해 치유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에릭 쿠 감독.
그는 왜 하필 매개체로 음식을 선택했을까?
바로 음식을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 때문이 아닐까. 오찬 효과Luncheon effect라는 것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섭취하는 포도당, 단백질 등 영양소의 자극으로 상대에 대한 호감이 생기고 긍정적인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는 효과다. 같은 음식을 먹고 그 음식에 같은 감정을 나누다 보면, 상대와 일체감을 갖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양국간의 감정을 치유하는데 자연스러운 매개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역사를 가진 싱가포르의 이러한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본은 과거를 인정하고 한국과 중국도 일본에 거듭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하자는 싱가포르 총리의 발언도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다. 순수한 의도와 변화를 모색하는 노력이 보기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청산해야할 것은 청산해야겠지...
"아야, 형이 하나 묻자. 식구가 머여? 식구가 먼 뜻이여? 식구란 건 말이여. 같이 밥 먹는 입구녁이여. 입구녁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써 여써 나까지 일곱. 이것이 다 한 입구녁이여. 알겄냐? 그면 저 혼자 따로 밥 먹겠다는 놈은 머여. 그건 식구가 아니고 호로새끼여. 그냐 안 그냐?"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혼밥'과 '먹방'에 식구와 정성스런 한 끼 식사가 가진 의미를 잊고 지낸 지금의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작은 울림을 주고 있다.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식사를 차려 놓고, 더 자주 가족과 함께 해야겠다는 자아성찰로 마무리를 대신 해본다.
※ 본 영화평은 브런치 무비패스 제공으로 시사회에 참여한 후 작성했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 #영화 #영화평 #영화리뷰 #리뷰 #드라마 #에릭쿠감독 #우리가족 #라멘샵 #Ramen Shop #RamenTeh #사이토타쿠미 #음식#라멘 #바쿠테 #오찬효과 #소통 #작가 #정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