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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물기둥

잔물결이 새하얗게 미동치는 하늘빛 튜브

by 발렌콩

오늘 꿈에 나온 잔상은 기이한 자연재해였다. 내가 위치한 세상은 종아리 부근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했던 물의 행성처럼. (위 영화속에서 묘사된 물의 행성은 CG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고 한다. 수심은 얕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한 아이슬란드 브루나산두르 호수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출처 : http://www.newspim.com/news/view/20141107000358) 이미 영화에서도 한번 목격했던 곳이라서 무언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종아리 밑에서 찰랑이는 물살은 따사로운 햇빛을 머금느라 아주 기분 좋은 온도였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균일하게 공존하는 묘한 온도. (마치, 바닷물처럼, 사실 그 물들은 그저 수심이 얕은 바다일지도 몰랐다.) 높고 낮은 파도처럼 미동치는 잔물결들은 바람결처럼 부드러웠고, 무엇보다도 바닥이 다 비치는 민트색 하늘빛 물 안에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물고기는 단일 색상으로만 이루어진 한 종류였는데 사람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어린 아이들의 발밑에 가까이 다가와 서성이기까지 했다. 내 종아리 뒷편에 부딪히는 물고기들은 마치 털을 가진 애완동물처럼 꽤 사근사근한 구석이 있었다. 물고기의 뻐끔거리는 입술은 얇고 도톰했으며, 물결에 부딪는 그 행동들은 간지러웠고, 왠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와 함께 그렇게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성인 팔뚝만한 납작한 잉어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물고기, 그네들은 크기만 제각기 다를 뿐, 물빛 색상이라는 동일한 색상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우리가 발을 담그고 있는 그곳은 한국이 분명한 곳인데도 매우 이질적인 분위기였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는 분명 (해외의) 해변가의 어떤 것과 흡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누군가가 내 시선에 꽉 들어찼다. 어린 남자 아이였는데, 자신과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아이에게 유독 시선이 향했던 이유는 아이의 허리깨에 투명하게 들어찬 무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란물기둥, 잔물결이 새하얗게 미동치는 하늘빛 튜브를 끼고있는 아이는 뭔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기이한 튜브에 의지한 채 몸을 모로 향한 채 공중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결의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거리는 아이는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는 느낌이 없었기에 나는 단박에 그 아이가 귀신이라고 직감했고, 잠정적으로 결론 지어버렸다. 통상적으로 정의하는 귀신의 모습과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리어 동화적인 요소가 잔뜩 묻어나는 아름다운 환상과 일맥상통했다.)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내가 무서움, 공포를 느꼈던 건 그 평화로움이 와장창 깨지듯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그 기이한 자연재해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뒤의 맨 반대편에서 무언가를 강렬하게 빨아당기는 흡인력이 느껴졌다. 바람인듯 아닌 듯 비현실적인 현상이 느리지만 정확하게 움직였다. 더 명료하게 표현하자면, 마치 한쪽으로 기울어진 물잔처럼, 내 위치에 일정하게 고여있던 파란물들이 느린듯 빠르게 반대편으로 고여들었다. 마치 기울어진 시소처럼, 한쪽에 고인 물과 비정상적으로 불균형해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 곧 무언가 깨지고 부숴지는 소리들이 요동쳤으며, 내 쪽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편으로 휩쓸려서 웅덩이같은 물에 풍덩풍덩 빠졌다. 하늘빛 튜브를 끼고 있는 그 이름 모를 어린 아이와 나만 남아있었다. (지금 문득 생각해보자면 그 애처럼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형태였던 것 같다. 이미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그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세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태였으므로) 나는 그저 내 곁에서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다급한 몸짓들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곧, 그 반대편 까맣고 깊은 호수에 잠겨버린 집이 폭발해서 엄청난 굉음이 터졌고, 폭발과 흡사한 규모로 물 위에 번개가 일어났다. 새하얀 전깃불들은 마치 용접공이 섬세하게 다루어 이뤄낸 결과물처럼 굉장히 정교하고 또 반짝반짝 빛났다. 역설적이게도 잔물결이 새하얗게 미동치는 하늘빛 튜브처럼.


그 근처에 있던 잠겨있던 사람들은 전기에 감염된 채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죽었다. 그 곳에 고여있던 물고기들은 마치 수면 위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돌고래처럼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내 뒤에 있던 물빛 튜브의 아이는 매우 해맑은 웃음으로 그 모든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끔찍한 잔상과 재해를 일으킨 장본인이 그 애 란걸, 어렴풋이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꿈에서 깨어났다. 순수해 보이는 아이가 저지른 끔찍한 사고를 너무도 생생하게 목격한 나는 꿈에서 깬 뒤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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