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악해진 모기들

by 발렌콩

사온 맥주를 책상위에 올려두고 며칠 깜빡 잊고 있었다. 뒤늦게 찬 맥주를 먹기 위해 냉동실에 넣어둔다는 게 또 깜빡 잊고 말았다.

손톱을 짧게 깎으니, 노트북 자판의 열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손끝에 고인 따뜻함이 나쁘지만은 않다. 화장실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트려서 액정이 박살난 줄 알았는데, 다행히 전면에 붙인 강화유리필름에 금이 간 거 였다. 아직 약정이 1년이 남았기 때문에 식겁했다만, 사실 파손보험에 들어놔서 크게 걱정 할 필요는 없지만 역시 놀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설탕액정 아이폰이 깨어지지 않도록 1년 더 열심 간수 해야지.

이북리더기에 열린서재 마루어플을 다운받고, 만화책을 진탕 집어 넣었다. 요즘엔 얼마전에 개봉한 '아이 엠 어 히어로'라는 좀비만화를 열심 보고 있는데 그 여느 좀비보다도 더 하드코어하다. 좀비물에 푹 빠져서 근래, 좀비영화로 '부산행','월드워Z','나는 전설이다'를 보았는데 각 좀비들의 특징이나 연출이 제각기인 것 같다. 영상으로 표현하기에, 분장과 CG의 한계성 없이 만화 그대로 표현 될 수 있다면 '히어로'가 대박일 게 분명하다. 아직 개봉한 영화를 보지 못 했는데 조만간 관람하러 가야겠다. 좀비를 생각나니 방금 죽인 모기가 생각난다. 누군가의 피를 한가득 머금고 있느라 날갯짓이 둔해서 모기채에 불 타 죽은 녀석.

이번 폭염에 없었던 모기들이 갑자기 한번에 들이 닥치는 느낌이다. 영악해진 모기들은 불을 끄자마자 달려들며 불을 켰을 때는 위장술이라도 하는지 쉽게 찾을 수 없다. 전기 모기채를 열심 휘둘다가 철망에 걸린 모기 사체를 꺼낸다는게 그만 다른 손으로 작동 버튼을 누른 채였다. 손끝이 저릿저릿 따끔했다. 모기가 바로 즉사할 만 큼의 전기를 처음으로 느꼈다. 모기 입장에선 집채만한 전기채에 살갗이 닿아 일순 타들어간 것과 마찬가지겠지. 전기에 타 죽은 모기 사체는 적당한 수분을 머금고 있으며 통통하다. 전기모기채의 장점은 공중에 몇번 휘두름으로써 모기를 죽일 수 있다는 점과 벽에 더러운 액체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전기모기채가 없었다면, 놓친 모기를 잡지 못해 안타까움에 신음하며 부족한 순발력을 탓하겠지. 그리고 모기의 핏물이나 내장따위가 흰 벽에 점처럼 묻어 오래오래 머무르겠지. 모기를 하도 맨손으로 때려잡아 벽 구석구석 검은 점들이 가득하다. 불규칙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진 어색한 벽지무늬 같다.

작년 이맘 때 쯤에 전기모기채를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휘둘렀다. 무료한 시간과 마음을 달래고자 가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는 핑계로 전기모기채를 바깥에서 이리저리 휘두르니 마치 작은 폭죽이 공중에 터졌고, 팝콘 튀기는 소리가 났다. 어제도 오늘도 스무마리 이상은 죽인 것 같다. 이번 가을에도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마음으로 모기들을 살해해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물표범과 물두더지가 헤엄지는 푸른 수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