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표범과 물두더지가 헤엄지는 푸른 수족관
오늘 꾼 꿈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은 바로 수족관이었다. 우리집 부엌에 설치된 횟집용 푸른 수족관. 네모로 각진 낡은 수족관 안에는 엄마가 잡아놓은 생선들로 가득했다. 양파망과 흡사한 붉은색 그물에 모여있는 물고기들은 죄다 사람팔뚝처럼 두꺼웠는데 어느틈엔가 그 물고기들이 물표범과 물두더지로 변모하였다. 상어처럼 위험한 동물로 바뀌었는데도 꿈속에선 전혀 이질감도 없었고 일말의 의심조차 없었다. 새끼돌고래처럼 작은 물표범과 물두더지는 육지 동물의 그 표범과 두더지와 똑같은 생김새였다. 노란색과 갈색의 요란한 호피무늬와 둥그런 귀, 그리고 귀가 없는 둥그런 두더지.
모두 육지에서 존재했지만, 내 꿈에서 설계된 그 동물들은 물 속에서 살 수 있는 '반 물고기'의 형태였다. 때문에 특유의 무늬와 색상을 제외하고 모두 물속에서도 수월하게 유영할 수 있게끔 맨들맨들한 가죽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거대한 아쿠아리움에서 보았던 돌고래의 미끄러운 피부처럼, 그래서 젖은 극세사를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꿈 속에서 그 동물들을 살짝 만져본 것 같기도 하다. 귀여운 얼굴을 빼꼼 내미는 흑색 두더지를. 생선 비늘과 비슷한 매끄러움, 그리고 그 위에 미세하게 돋아난 짧은 털들. 붓털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워서 물두더지를 오래오래 만졌다. 유순한 물두더지가 여러 마리가 있었고, 다소 사나운 성격을 지닌 물표범은 단 한마리였다. 가림막이 쳐진 수조 안에서 물표범과 물두더지가 빨간 그물망에 뒤엉켜 있었다.
꿈 속에서 우리집은 바닷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홀로 바닷가에 나가 소라, 꽃게, 해마, 조개,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다가 세숫대야에 담아두었다. 대야 폭이 낮아서인지 꽃게와 해마들이 자꾸 대야를 벗어나려했다. 하루만 키웠다가 다음날 바닷가에 다시 돌려 놓을 요량으로 대야에서 떨어지는 아이들을 손수 다시 담았다. 아무래도 불투명한 세숫대야보다는 투명한 유리어항이 좋을 것 같아서 창고를 뒤져 어항을 찾아냈다. 그 사이에 대야에 담긴 아이들이 반절이나 사라졌다. 그물에 걸려있던 물표범과 물두더지는 어느틈엔가 그물을 벗어나서 좁은 수족관을 헤엄치고 있었다. 의아했지만 둘 중 누군가가 대야에 담긴 아이들을 잡아 먹은 것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또 어느틈엔가 물표범이 물두더지를 헤쳤다. 물비린내가 훅 끼치는 수면위로 두더지의 매끄러운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이미 죽은 흑색 물두더지가 가여웠고 이를 헤진 물표범을 바라보니, 이빨을 번뜩이며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른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119에 구조요청 전화를 마친 뒤에 꿈에서 깨어났다. 죽은 물두더지가 가엾다. 표독스러운 물표범은 아직도 무섭다. 여전히 이상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