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줄거리, 사랑은 결국 타이밍일까

뻔하디뻔한 로맨스 영화 한가운데서, 이상하게도 정곡을 찌르는 말 하나가

by 발렌콩

애매한 평일 화요일이었는데도 생각보다 관객이 많았다. 큰 상영관이 앞뒤로 거의 꽉 찰 정도였고, 상영 시작 후에도 지각 관람객들이 샤샤샥 들어왔다. 아바타 같은 블록버스터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입소문의 힘인가 싶었다. 제목은 아직도 헷갈린다. ‘아마도 우린’이었는지, ‘만약에 우리’였는지. 영화는 이국적인 호치민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요란한 빗소리 위에 흑백 화면. 첫 인상은 로맨스 영화라기보다 로맨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둘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정확히는, 다시 만나게 된다. 예전에 사랑했던 사이. 하지만 지금은 이미 끝난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같은 방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그때, 뭐가 달랐을까.” 둘의 대화는 현재에서 시작해서 계속 과거로 미끄러진다. 처음 만났던 순간, 좋아하게 됐던 계기, 서로에게 가장 뜨거웠던 시기, 그리고 망가지기 시작했던 지점까지. 그 모든 걸 하나씩 꺼내놓는다. 마치, 이미 끝난 연애를 다시 해부하듯이. 그 과정에서 계속 반복되는 가정이 있다.


“만약에 우리.” 그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혹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지하철 이야기였다.


그때, 그 지하철을 따라 탔더라면 우리는 다시 만났을 거라는 말.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더 아팠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이 있으니까.


인생은 그렇게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선택 하나, 별것 아닌 타이밍 하나가 이어져서 결국 하나의 시간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작고 사소한 것 하나가, 때로는 모든 걸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한 번 지나가버린 순간은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것까지.

구교환은 작은 얼굴과 목소리 때문에 볼수록 김준수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 청량한 매력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무너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버린다. 감정이 아니라 태도가 문제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실제로 연애도 그렇다. 좋아서 만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 없이 힘들어지는 것. 문가영은 거의 ‘사랑의 이해’ 속 안수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감정의 결이 익숙하고,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말을 아끼고, 감정을 눌러 담고, 결국 혼자 감당하는 쪽. 그래서 이 관계는 처음부터 어딘가 불균형하다. 둘은 결국 헤어진다. 그리고 나서야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게임도 만들어지고, 학교도 붙는다. 이 영화에서의 성취는 항상 이별 이후에 온다. 헤어져야만 돌아가는 타이밍들. 그래서 더 씁쓸하다. 다시 현재. 호치민의 방 안. 둘은 그때의 이야기들을 다 꺼내놓은 상태다. 이제 남은 건 결론뿐이다.


구교환은 말한다.


“그때 우리가 다시 만났으면, 잘 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말이 너무 애절해서 거의 설득될 뻔한다. 진짜로. 그랬을 것 같아서. 그런데 문가영이 조용히 정정한다. “그래도 결국 헤어졌을 거야.” 단정적인데도, 확신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말처럼 들려서. 그래서 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위로인지, 정답인지, 아니면 그냥 받아들이는 방식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다.


정말 그랬을까. 우리는 다시 만나도 결국 같은 이유로 끝났을까. 아니면 단 한 번쯤은, 조금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까.


결국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못하면 결국 어긋난다는 것. 그리고 그 어긋남은 나중에 아무리 다시 꺼내봐도 수정되지 않는다는 것.


여기서 더 생각하게 되는 건, 사랑이란 감정보다 오히려 그 감정이 놓인 ‘순서’와 ‘시점’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어떤 시기에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관계가 된다.


누군가는 너무 이른 시기에 만나서 감당하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너무 늦게 만나 이미 다른 선택을 해버린 뒤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아이러니하다. 분명 사랑은 진짜였는데, 그 사랑이 놓인 타이밍이 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결과까지 달라진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놓친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친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가영이 마지막 노을 장면에서 처음 소원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은 묘하게 남는다. 소원은 진작에 잊어버렸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건 ‘너와 나’였다는 그 대사. 노을처럼 번지듯 또렷했다. 뻔하디뻔한 로맨스 영화 한가운데서, 이상하게도 정곡을 찌르는 말 하나가 오래 남듯이....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줄거리는 금방 잊히는데 어떤 장면, 어떤 말, 어떤 순간이 이상하게 계속 잔상처럼 남는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끝끝내 내려놓지 못하듯.

어쩌면 사랑이라는 잔인한 타이밍 때문에,

우리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 더 집착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