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생각한다.

by 발렌콩

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생각한다.


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출생 신고서 같은 그 까만 선들의 유효성에 대해서. 한줄기 붉은빛을 뿜어내는 바코드기에 찍힌 물건들은 처음처럼 침묵한다. 기계가 훑은 그 몸은 전후 변함없다. 바코드는 겨우 빨간 빛과 어우러져 짧은 탄식인 단음 하나로 곧 수명을 다한다. 나는 물건의 귀퉁이에 새겨진 그 검은 문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곤, 그 묵묵한 검은 창살의 유보성을 조심스레 떠올린다. 허물처럼 벗겨져 쓰레기통에 직행한 수없이 많은 창살의 아우성이 나긋하게 울려 퍼진다.

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알고 나는 나를 모른다. 내 바코드에 반응하는 당신은 바코드의 붉은 빛과 그 짧은 단음으로 느릿하게 섞인다. 당신이란 물건을 수없이 찍어 대자 바코드기에 살해당했던 수많은 물건의 유효성이 내 무딘 감각 위에 시끄러운 소나기처럼 머무른다. 뒤늦게 내 귀퉁이를 살피어본다. 우연처럼 잇몸이 간지러워 거울 앞에 붉은 아가리를 벌려보니 내 바코드는 입 구멍 속 혀뿌리에 박혀 있다.

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생각한다. 주인의 바코드조차 찍지 못했던 바코드기는 빛과 단음이 무색하다. 말은 더는 없다. 제시간에 뱉어내지 못한 말이란 것들이 찰나, 와르르 쏟아진다. 소프라노 같은 음표들이 바코드의 쇠창살에서 전력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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