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하게 작동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기계가 만든 이 느린 걸음에 대해서
어디 진지하게 생각 해 본적이 있던가
자동적인 걸음에 선택적인 수고
그 수동적인 걸음을 더하면
하반신만 멀쩡한 로봇이 된 것만 같다
걸음은 더없이 가벼워지고
공기의 흐름은 더욱더 빨리질 때
부드럽게 작동하던 계단이 뚝 멈췄다
계단에 오르기 전 계단이 되려다 멈춰버린
그 낮은 각을 힘주어 밟으면
문득 스치던 낯섦은 어느덧 생생해진다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걷는 발가락에
설움이 한데 뭉쳤다가 익숙함의
반대말에 녹아든다
신발의 고무 밑창에 닿는 쇠의 홈들은
잠식되어가듯 깊어지며 까만 선들은
단단하게 합쳐된 로봇의 외피처럼 변모한다
정지된 계단의 모양새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김없는
그 쇠띠를 오래오래 밟아볼 때
멈춘것들의 각을 줄곧 생각하니
익숙함은 낯섦의 유의어였다
곧 멈춘것들은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