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추억

by 발렌콩

차라리 먼저 할퀴고 싶었다만 당신이, 선두

차고 예리한 태도에 긁힌

생채기는 아픔 0.1스푼, 얼떨떨 2000스푼

일종의 기습공격

당신, 힌트조차 없다


일순 멀쩡한 바보가 되었나

강파른 당신, 우습게도

마지막처럼 자상했고 처음처럼 간악하다


기쁨은 0.1mm 슬픔은 200m

천국과 지옥의 여로엔

내 존재마저 희미하게 번진다


가장자리엔 상실이란 뱀이 똬리를 틀고

빈껍데기인 나를 노려보며

그리움과 한끗 차이인 애증은

곤충의 딱딱한 외피처럼 메워져

상실이란 틈 속에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가둔다


침묵이 공상처럼 길어질 쯤

빳빳이 고개를 쳐드는 당신,

무참히 방목하고 싶었나


상실이 짙어질수록 당신, 범람하는

강물처럼 깊이 깊이 깊이 차오른다


강인한 낚싯줄의 기억들이

얇은 머리카락마저 친친 동여매면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천 번쯤 체한다


매순간 마조히스트와 새디스트를 선택하지 못했나

상실엔 추억조차 사치란 걸 깨달을 때

당신, 이미 정교하게 깎인 판화가 되어

내 빈곤한 세계에 화석처럼 박힌다


바보처럼 추억이라 우기고

들썩이는 당신, 아니 상실, 깊숙이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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