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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Oct 10. 2018

드라마 미스티 소설화/제 1화 균열(龜裂)

  18년도 2월~3월 정말 재미났게 봤던 드라마, 미스티. 미스테리 멜로물로 열연을 펼쳤던 배우 김남주와 지진희, 전혜진, 임태경 , 고준 등등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범인이 누군지에 대한 여부에서도 꽤 이슈를 몰았다. 드라마 미스티 여주인공 "고혜란"을 맡은 김남주는 드라마 미스티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미스티 플롯과 대사를 연구하기 위해 대본집을 구매하기도 했다. 드라마의 OST와 수록된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읽었던 대본집, 문득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써봤다. '드라마 미스티 소설화' 드라마와 소설의 플롯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극중 고혜란의 시점으로 작성했다. 대사는 최대한 훼손하지 않았으며, 드라마의 플롯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저작권에 대한 2차 가공이 가능한지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한번 올려봅니다.



 드라마 미스티

제 1화 균열 (龜裂


 죽음을 앗아간 그 곳은 설원(雪原)의 모습이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 사이로 고적하게 깔린 어둠 사이, 가로등을 받고 처참하게 일그러진 검은 세단이 외따로이 세워져 있었다. 엄청난 사고를 뒤로, 의문의 죽음을 남긴 그 공간의 분위기는 꽤 고요했다. 하얀 에어백 사이에서 얼굴을 받고 있는 이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남자였다. US오픈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고 PGA투어에서 우승의 신화를 아로새긴, 골프 세계 반열에 오른 케빈리 선수. 그의 이마 아래로 흐른 한줄기 검붉은 피는 이미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한 때는 혜란의 곁에 머물었던 사람이었다. 기꺼이 서로의 죽음을 내어줄 수 있는 긴밀한 사이, 뜨겁게 사랑했던 둘이었다. 성공을 좆았던 젊은 혜란에게서 처절하게 버림 받았던 그.
  사랑보다도 자신의 명예와 욕망에 모든걸 바칠 수 밖에 없었던 혜란. 한때 누구보다도 다정했던 그녀에게서 칼날처럼 잔인하고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 받았던 케빈리, 그 두 사람이 엇갈린 운명에서 끔찍한 악연이 되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이미 풀릴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얽히고 설킨 뒤였다. 특히나 그의 죽음 앞에서, 혜란은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케빈리가 죽기 수 시간 전, 만남을 가졌다는 이유로.


  혜란은 그날 자신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들을 감당하느라 밤잠을 설친 뒤였다. 그날도 습관처럼 이른 시간에 선잠에서 깼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송국에 출근했다. 정신이 복잡할 때 업무에 몰두하는 건 혜란의 오랜 버릇 이자 습관이었다.

“이연정이 갑자기 복통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갔대. 방송국에서 가깝고 연락된 사람이 고혜란 씨 밖에 없어서.”
 
  뉴스 스텝, 웅팀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혜란에게 원고를 내밀었다. 이연정은 아침 뉴스를 맡고 있는 오랜 선배였다. 혜란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원고를 받았다.
 
“괜찮아요, 원고 주세요.”
 
  아침 뉴스를 진행하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므로 능숙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혜란은 원고를 쭉 훑어 내리며 빠르게 뉴스룸으로 향했다.
 혜란은 마무리 메이크업을 받으며 미처 못 읽었던 원고를 쭈욱 읽었다. 아침 뉴스의 특성 상, 메이크업은 옅은 컨셉으로 부탁했다. 한창 이슈였던 계란 파동에 대한 기사를 훑고 있을 때쯤, 남자 스텝이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와 혜란에게 새로운 원고를 넘겼다.  
 
“선배님, 방금 들어온 속보라고 합니다.”
“속보?”
 
  혜란은 급하게 원고를 받고 낱장을 넘겼다. 속보 진행은 드문 일이었고, 이렇게 급작스러운 속보는 대부분 불행한 일들이 다반사였다. 혜란은 살짝 긴장 한 채, 원고를 읽었다. 혜란은 그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얀 종이 위에 적혀진 검은 활자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내용이었다. 혜란은 떨리는 눈길로 원고의 마지막 장을 빠르게 훑었지만, 내용이 바뀔 리는 만무했다. 그 긴급 속보는 어제 불편한 만남을 함께 했던 케빈리의 급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절대로 믿을 수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긴 고뇌와 결심 끝에 만났던 그가 하룻밤 사이에 교통사고로 시체로 발견되다니.
 
“1분 전입니다!
“하이 큐! 시그널 들어갑니다. 이것 봐요 고혜란 씨! 고혜란 씨?”
 
혜란은 자신이 뉴스룸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깜짝 잊은 채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아침 뉴스의 특성 모를 일이 없었다. 그런 기본적인 사안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넋이 나간 채로 제 앞에 펼쳐진 원고 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곯리기 위한 거짓말 같았다.
 
“왜 또 저래? 이봐, 고혜란!!”
 
웅팀장의 긴박한 목소리를 뒤로, 혜란은 일순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드니, 이미 방송 시작을 알리는 붉은 빛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답지 않은 실수를 인지하며, 혜란은 겨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준비한 멘트를 조심스레 내뱉었다.
 
“안녕하십니까, JBC 모닝 뉴스… 고혜란입니다. 먼저, 밤 사이 들어온 속봅니다.”
 
혜란은 말을 마치고, 다시 제 손에 쥔, 하얀 원고를 바라봤다.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본 종이에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잔혹하리만큼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린 혜란은 애써 침착한 채 원고를 읽었다.
 
“오늘 새벽, 프로골퍼 케빈 리 씨가 교통사고로….사망했습니다.”
“오케이, 자료 화면, 하이 큐!”
 







 혜란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뒤, 화면을 바라봤다. 넓은 화면에 비치는 건, 설원처럼 하얗게 번진 어제의 그 곳에서 처참하게 부서진 차체와 흰 천이 덮인 사체의 모습이었다. 언뜻 비친 그 화면 사이로 들것에 실려가는 그의 까만 손이 축 늘어진 채였다.

  사망 이라니, 정말로 믿을 수 없었다.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혜란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지만, 현재 뉴스 룸에 앉은 이상, 침착하고 냉정하게 뉴스를 진행 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혜란은 제 앞에 놓인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한 채 그 옆에 띄어진 원고를 읽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새벽 3시쯤 강변북로에서 구리 방면 아치울삼거리 인근에서 가로등을 들이받는 충돌사고가 일어났으며, 이 사고로 운전 중이던 프로골퍼 케빈 리 씨가 현장에서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음주 운전 여부는 현재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혜란은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다. 그 안엔 자신의 뒤 모니터에 드러난 케빈리의 모습이 작게, 그러나 선명하게 비쳐졌다.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고 있던 환하게 웃고 있는 재영의 모습이었다. 불과 며칠 전, 이 뉴스 룸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날 활용했던 자료 화면 이기도 했다. 혜란에겐 아직도 그날의 모습이 생생하기만 했다.
 
  혜란은 자신에게 벌어진 이 비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편, 어젯밤 자신의 차 안 조수석에 앉아 나지막하게 내뱉던 재영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러 펴졌다. 수 시간 전에 자신의 마음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죄책감의 그 목소리가.
 
‘니 남편, 사랑해?’
 
  재영의 그 말에 자신이 내뱉었던 대답도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하기만 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바로 코앞에서 벌어졌지만, 혜란의 머릿속은 질서정연하고 재바르게 움직였다. 그가 죽기 몇 시간 전, 혜란은 그와 함께 였다. 비록 몇 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은밀한 만남은 명백히 의심을 받을 만한 요지가 충분했다.
 
  한 편, 자신이 속보를 읊어야 하는 이 명확한 보도를 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재영이 죽은 건가? 죽었다면 왜? 정말로 교통사고로? 지금 꾸고 있는 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혜란은 이 모든 것이 음모 같았다. 자신을 얽매이고 옥죄이는 끔찍한 악몽 같은 음모. 혜란이 보도하는 속보 위로 재영의 환한 미소가 클로즈업 되었다. 혜란은 재영의 사진 속 미소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빛이 떨렸다. 이 모습이 공중파로 생방송되고 있었다. 혜란은 그 사실만으로 겨우 무너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급하게 찾은 평정심으로, 혜란은 케빈리 사망 속보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


 혜란이 들어선 곳은 어두컴컴한 조사실 이었다. 가해자를 지목하고 조사하는, 난생 처음 들어선 그 공간은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자신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형사의 시선도, 무거운 그 공기도 모든 것들이 불편한 꿈 같았다.

  혜란은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이 진행했던 아침 뉴스를 떠올렸다. 난생 처음 다다른 이 낯선 공간에서 자신을 날카롭게 관찰하는 강기준 형사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치 살인범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시선이 못내 불편했지만, 혜란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고혜란 씨,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먼저 출석요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바쁘실 텐데….”
“늦어도 30분 안에 끝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뉴스 시간에 맞출 수가 있거든요.”
 
  혜란은 당당했다. 케빈리가 사망한 몇 시간 전, 그를 만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선 일절 아는 바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혜란 에게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사실이었다.
  자신을 이런 곳에 내몰게 된 원흉, 끔찍한 악의 인연, 혜란은 문득, 죽어서도 끝까지 자신을 옭아매는 재영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한편, 다시금 냉정을 되찾았다. 이 끈질기고 집요한 인연에서, 재영을 자신의 범주로 끌어온 건, 혜란 자신 이었으므로. 혜란을 바라보는 강기준 형사의 날카로운 취조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매사에 정확하게 사십니까?”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럼 기억력도 좋으시겠군요?”
“그러길 바랍니다.”
 
  둘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제각기 냉정한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어느 누구 하나 물러 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에 충실한 그 둘의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요?”


 혜란은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조소를 뿜을 뻔 했다. 혜란은 강기준 형사의 냉정한 그 말에도 움찔하지 않았다. 혜란은 결백했다. 자신이 죽이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자세를 낮출 필요가 전혀 없었다. 강기준은 그런 혜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없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혜란이 눈짓으로 사진을 바라봤다. 재영의 얼굴이었다.

 
“이 남자, 누군지 아십니까?”
 
  혜란은 말 없이 사진을 바라봤다. 혜란은 한편, 제발 누군지 몰랐으면 싶었다. 사진 속 재영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익숙한 그 미소를 내려다보니,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일순 혜란의 머릿속에 몇몇 잔상들이 반사적으로 스쳤다.


  아득해지는 시선 그 사이로 잊을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장면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반짝이는 윤슬 사이로 자신의 피부를 부드럽게 매만지던 그 집요하고 야릇한 손길, 파도 치는 물결처럼 수영복 사이를 서스럼 없이 부딪치던 재영의 까만 손, 그 부드러운 손길 사이로 무너지듯 풀어지던 자신의 젖은 머리칼마저도.


  비록 수 년 전 기억이지만, 혜란에게 모든 것이 생생한, 지울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었다.
 

“아십니까?”

 
혜란이 모를 수 없었다. 사진 속 재영은, 자신이 오늘 아침 긴급 보도 했던 케빈리였고, 한 때는 목숨 바쳐 사랑했던 애인이었다.그리고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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