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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Oct 24. 2018

연민과 역사의 사유, 다큐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남한과 북한의 전쟁 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비밀 실화

 배우 추상미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미 두편의 단편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추상미가 이번엔, 다큐를 기반으로 만든 감동실화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다큐의 흐름대로 인터뷰형식과 인서트 화면으로 현실의 느낌을 생생하게 반영했다.


  1951년도 6.25전쟁 이후 발생한 남한과 북한의 전쟁 고아들 1천 500여명이 동유럽 폴란드로 강제 이송되었다. 그것도 비밀리에. 

  아이들이 폴란드에 적응 할 무렵,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빌미로 아이들을 강제로 송환했다. 그것도 신속하게.
  8년만에 북한으로 송환된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자신들을, 다시 행복했던 폴란드 그곳으로 보내달라던 절박함이 담긴 내용을. 폴란드의 선생님들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고, 부득불 답장을 중단했다. 70년이 흐른 지금, 폴란드 선생님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그때의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https://youtu.be/9_X8yElokjQ


폴란드로 간 아이들 

The Children Gone Poland, 2018


폴란드로 간 아이들              

감독 추상미

출연 추상미, 이송


개봉 2018.10.31.






연민과 역사의 사유
치유와 상처의 연대기

  나는 전쟁 영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상황과 내용을 다룬 영화나 컨텐츠를 선호하는 편이다. 바로 위 영화처럼. 전쟁의 참극이 벌어진 뒤, 무너지다 못해 참혹한 현장과 사회, 관계, 모든 것들을 복구하는 연대기는 꽤 흥미로운 편이다. 이데올로기나 사상적인 면모를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잔상과 현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느껴진다. 그 참상을 직접 겪은 이들에겐 기억하기 싫은 기억일지라도, 현실과 진실의 일부분인 그 조각들을 잘 기억하고 잘 기록해야 한다. 

  대책과 대비, 그리고 진상 규명. 이런 딱딱하고 객관적인 단어들을 배제하고서라도 잊혀져가거나 왜곡될 수 있는 역사를 바로 잡고 배워야 하는 이유다. 그게 바로 잊혀지고 싶은 우리의 '굴욕'과 '부끄러움'일지라도. 아프고 힘든 역사는 절대로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과거의 역사를 더욱 조명하고 밝혀내야 한다. 이번 추상미 감독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제작 계기도 필시 그래서였을 것이다.  







  폴란드인이 적어 내려간 단 한권의 소설(천사의 날개 <2013, Skrzydla aniola>)과 인터넷에 만연 했던 꽃제비의 영상을 접하고 모티프가 되어 '그루터기들' 장편 영화를 만들면서도 가장 먼저 이 다큐를 개봉했다. 

  추상미 감독은 위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2년 간 폴란드 현지를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지금은 90세가 넘은 교사 7명을 인터뷰 했고,그 내용을 기반으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만들어졌다.  








“북한 고아들은 전쟁에서 첫 번째 부모를
 잃었고, 이날 두 번째 부모를 잃었습니다.”


  영화 속 실존 인물이었던 한국 고아 소녀 "김귀덕"의 이름은 폴란드인이 지은 소설과 공영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모티브였다. 김귀덕은 1955년 폴란드에서 희귀병으로 사망한 전쟁고아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8년의 긴 시간동안 폴란드에서 지내다가 북한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희귀병의 동양 소녀에게도 거리낌없이 피를 나눠주었던 폴라드 사람들. 

  영화 속 등장하는 실제 기차 플랫폼은 이미 잡초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자연의 산물에 묻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곳 기차에 올랐던 한국의 전쟁 고아들,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엄마를 뜻하는 '마마', 아빠를 뜻하는 '파파'로 불리며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던 고아들, 특히 폴란드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성격과 특징을 묘사하며 짧은 한국어를 직접 구사했다.

  한숨을 뜻하는 "아이고"를 따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영화의 소재 상 무겁고 씁쓸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순화되는 느낌이었다. 







  천 오백여명의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남한의 고아들이 반절 섞여 있음에도 모두 북한으로 이송되다니.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이 추진하던 천리마 운동 때문이었다.

  천리마란 하루에 1,000리(4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말을 뜻한다. 천리마 운동은 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한 북한의 사회 운동으로 즉, 천리마를 탄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일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뜻으로 실상은 죽음과 흡사한 중노동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폴란드와 대조되던 그 삶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이들이 직접 적어내려간 한글과 폴란드어, 고통을 호소하며 자신들을 다시 폴란드로 보내달라는 절박한 심정들. 그리고 그 심정을 무시할 수 밖에 없었던 폴란드 선생님의 마음은 어땠을 지 예상도 할 수 없다. 







  북한에서 폴란드까지 걸어오겠다던 아이가 중국의 어딘가 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선생님은 분명히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위 폴란드인들은 왜 이렇게 아이들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며 눈물 흘리는 것일까. 추감독이 궁금했던 내용처럼, 그저 몇년만 머물었던 동양의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사랑을 쏟았는지도 궁금했다.

  폴란드도 6년 동안 전쟁을 겪었던 국가였다. 독일군에 의해 운영되었던 잔인한 수용소 아우슈비츠, 폴란드에 도착한 한국의 전쟁 고아들의 나이때 겪었던 그 전쟁의 슬픔과 상처에 대해서도 공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마마와 파파가 되어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돌보고 인종을 넘는 사랑으로 보살 폈다. 그런 아이들과 헤어져야하는 그들도, 아이들도 모두에게 전쟁만큼 힘든 생이별이었을 것이다.  






  비밀 실화 다큐라는 내용이기에 단 한 명일지라도 전쟁고아의 생존이력이나 증언에 대한 내용이 나올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폴란드에 머물었던 아이들의 생존 여부는 알 수 조차 없다. 모두들 북한으로 이송되었으니. 

  대신, 영화 속 '송이'라는 실제 탈북 소녀가 등장하여 폴란드로 향했던 전쟁고아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이데올로기와 사상, 눈동자의 색상과 상관없이 인간대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연민과 사랑, 그리고 역사의 사유. 

  폴란드인들이 베풀었던 사랑과 그 잔적은 우리네 분단 국가의 설움과 점점 잊혀지고 있던 '역사의 흔적'이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송이를 안아주던 추감독의 눈빛이 생생하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속한 나라와 사상과 이념, 이데올로기를 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 다큐는 어쩌면 우리의 선명한 자화상과 같다. 



역사의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비밀 실화, 상처를 사랑으로 탈바꿈한 폴란드인들, 그리고 그 폴란드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는 눈빛과 목소리 마저도.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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