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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Aug 07. 2019

분명한 실수, 명백한 고의


  떡은 신기한 음식이다. 쫀득하고 말랑거리는 떡이 입안 가득 퍼질 때, 달달한 콩고물이 침안에 부드럽게 스미면서 풍미 깊다. 영양소의 대표인 탄수화물로 점철된 떡은 그 말랑거리면서도 입안 가득 붙는 쫄깃함과 탄력감이 남다르다. 다른 음식에 비해 꽤 신기한 식감이다. 된 밥과 비슷하면서도 어쩐지 더 찰진 느낌이다. 


  유년 시절 떡의 원료가 무엇이냐는 내 말에 엄마는 "쌀"이라고 답했다. 쌀? 매일 먹는 그 흰쌀밥의 밥? 좋아하는 떡의 원료가 쌀인 것을 알고서 나는 맨밥을 먹을 때 마다 떡을 떠올리곤 했다. 되직한 밥을 발견하면 손톱만큼 맨밥을 모아 짓이겨서 떡처럼 둥글둥글 빚어보곤 했다. 그렇게 직접 만들어 먹는 떡은 이상하게 짠 맛이 났다. 떡의 고소함과 찰기, 단맛은 온데간데 없었다. 밥의 원료인 쌀로 떡을 만들겠지만 내가 모르는 절차와 과정이 있는 것이라고,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생각하며 더 이상 밥으로 떡을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엄마가 떡집에서 사오는 떡을 먹었다. 특히 갓 지은 떡은 입안에 착착 감기는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눈까지 절로 감길 지경이다. 


  이렇게 부드러운 떡을 씹을 때면, 떡집에서 밟았던 떡의 감촉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가려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부슬비가 내렸다. 그리하여 버스 정류장 바로 뒷편에 위치 해 있던 떡집의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다. 그러던 중, 내 운동화 발 밑에서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 느껴졌다. 너무도 말랑해서 마치 아기의 피부를 밟은듯한 그 느낌은 찰나임에도 선명했고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투박하고 두터운 운동화 천을 지나 발 전체에 느껴지는 그 느낌이 이상해서 살펴보니 떡집에서 부지런히 꺼내놓은 쑥떡이었다. 얇은 쟁반위에 고이 올려진 얇게 펴진 쑥떡은 얇은 비닐을 한겹만 두른 채였다. 뜨겁게 쪄낸 떡을 외부에 꺼내놓고 온기를 빼고 차게 식히고 있던 중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온기를 빼내고 있던 그 갓지은 떡을 밟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짙은 녹색의 새 떡 위에 내 족적인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쑥떡 얇은 비닐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회색이었고, 부드럽던 떡은 내가 밟은 압력만큼 찌그러져 있었다. 그때 버스가 막 도착했고, 교복을 입은 비양심 소녀는 모른 척 재빨리 버스에 올랐다. 만원 버스라 교복 인파로 꽉꽉 채워져 창문이 막혔음에도 내 시선은 방금 전 그 떡집을 쫒았다. 두 자리 숫자가 훨씬 지날만큼 오래 된 기억임에도 떡을 밟은 촉감만은 선명하다. 


  더러운 운동화로 무심코 밟아버린 떡의 감촉을 느껴볼 일은 드물 것이다. 떡집 주인이 나중에 떡을 발견했을 때 짓게 될 표정을 떠올려보곤했다. 떡을 밟은 것은 분명한 '실수'였지만, 무시하고 버스에 오른 것은 명백한 '고의'였다. 미성년의 고의는 이토록 비양심적이며 이토록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그 대신 떡을 먹을 때 죄스러운 맘을 품어본다. 괜스레 '떡'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속담, '미운놈 떡 하나 더준다.'를 읊조리며.


  새벽 아침부터 부지런히 쪄낸 떡을 망친 그 심정이 어땠을 지 가늠할 수는 없다. 그 작고 못된 발자국에게 한껏 욕이라도 퍼부어주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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