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3):멘토와의 만남 - 마법사가 되다.

나를 재창조하는 알아차림의 마법.

by Valerie Lee

영화 규칙 #5 : 모험을 떠난 주인공은 언젠가 "스승" 또는 "멘토"를 만난다.

스타워즈에는 요다가 있었고, 해리포터에서는 해그리드나 덤블도어가 있다. 드라마 주인공에게도 늘 "친구" 나 "조언자"가 있다.


마치 마법을 부린 것 같구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구나, 그 짧은 찰나에.


무대에서 준비한 독백을 마친 후 그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듣던 순간 내 몸에 온 전율을 잊지 못한다.

이후 그 선생님에게 연기를 정말 잘했다는 칭찬을 들은 것보다, 저 위의 말이 나에게는 더욱 큰 칭찬이었다.


독백을 하기 10 분 전, 나와 씬(장면) 을 함께 준비한 씬 파트너가 울면서 뛰쳐나갔다.


파트너는 계속 자기 대사를 까먹었고, 우리는 세 번 정도 다시 처음부터 신을 시작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부터 그 파트너가 짜증 났다. 모델일을 병행하느라 너무 바쁘다며, 만나서 연습하자고 해도 시간 잡는 것을 계속 미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씬 발표를 하기 몇 분 전에 처음으로 대사를 맞추고 무대에 올라갔다.


"너 대사 ( ------그녀의 대사 ------) 이거잖아."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게"는 거짓말이다.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나와 파트너,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과 학생들도 다 알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것도 못 외우냐 이 바보야" 라며 그 상대를 무시했던 것이다.

평소에 좀 짜증 났더라도 배려있게 대해줬어야 했는데... 그깟 학교에서 하는 씬 발표가 뭐라고 사람을 그렇게 무안을 줬나 싶지만... 한 번 뱉은 말은 결국 되삼 킬 수는 없었다.


파트너가 울면서 뛰쳐나가자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저기 멀리서 어떤 아이들이 나를 힐끗 보더니 수군수군거렸다. 나의 mean(못돼 처먹은)한 태도에 수군거리는 게 분명했다.


힐끗거리는 눈빛. 그리고는 옆사람에게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모습... 그 모습은 내가 학창 시절 내내 견뎌왔던 왕따 당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야, 밸러리 쟤가 영어회화 1등급 맞았다며? 왜 쟤가?" 수근수근.

"쟤가 왕따 당하다 빡쳐서 교실 뒤짚어 엎었다는 걔야?" 수근수근.


그 모든 "수근수근"의 기억들이 그날 연기 수업에서 날 보던 학생들의 얼굴과 오버랩되었다.


"지금 너네 나보고 그러는 거야? 걔가 대사 못 외워 온걸 그럼 뭐 어쩌라고!"


어수선했던 교실 분위기는 갑자기 싸 해졌다.

선생님은 나를 질타했다.


"네가 잘 준비해 온건 알겠지만, 파트너에 대해 배려가 없었어. 좋은 배우의 태도는 아니다."


가뜩이나 모두가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서러웠는데, 그 말은 쐐기를 박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그 선생님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쿨하고 어른스럽게 "네, 맞아요 제가 잘 못 했네요"라고 했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내 머릿속은 "또 사람들은 나만 싫어해." "또 나만 나쁜 년이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늘 소외받고, 억울하게 오해받는 사람"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판단. 그리고 거기에서 기인한 마음속 종기들. 그 종기들이 우두두 바늘에 찔려 터져 나갔던 것이다.


화가나면 우는 나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런 나를 보고도 선생님의 냉정한 표정에는 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너 파트너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데, 네가 준비해 온 독백이나 하고 내려와라. 뭐... 지금 네 상태로 그걸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나의 스승, Eckhart Tolle(에카르트 톨레)가 한 말을 기억해 냈다.

그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야 더 나은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느 날 무심코 "내면의 상처 치유하는 법"을 검색하다가 나온 유튜브 비디오를 통해 알게 된 명상 및 영적 지도자이다.


과거는 지나갔다. 이제 없다. 실제는 오로지 현재, 지금 이 순간 (NOW) 뿐이다.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

나는 숨을 들이쉬고,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는 시작하겠다는 말도 없이, 내가 준비해왔던 독백 대사를 했다.

내 독백 대사는 이미 헤어진 연인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붙잡는 대사였다.


나는 방금 전까지 나를 휘감았던 나의 왕따 기억에서 벗어났다.

현재 내 눈앞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전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에게 나는 준비한 대사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백을 마치고 나니, 박수갈채가 나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몰입을 했어. 마치 마법을 부린 것 같구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구나 그 짧은 찰나에. 넌 너의 태도만 좀 고치면 정말 좋은 연기자가 될 거야. 훌륭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았던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밸러리는 지난주 선생님 안 계실 때 극찬을 받았어요. 액터스 스튜디오 (Actor's studio)에서 오신 분에게 서요."


방금 전까지 날 두고 수군수군거렸던 그 두 학생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리고 우린 너에 대해서 얘기하던 게 아니었어. 그렇게 보였을 수는 있지만."


다른 학생이 덧붙였다.


내 눈에 씌었던 뭔가가 벗겨진 기분.

그렇게 밖에 표현 못하겠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생긴 세상에 대한 내 편견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편견이다.


"나는 쉽게 오해받아. 억울해."
" 사람들은 늘 나만 싫어해."
"늘 나만 나쁜 사람이 되어버려"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내 내면의 목소리.

그 목소리들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 덕분에 그 목소리들을 교정할 수 있었다.


"나도 오해를 받지만, 나도 남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억울해할 필요 없다."
"나도 남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나라고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단 법 없다."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하지 말자. 실수했다면 사과를 하면 될 일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다면, 남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당당히 나 자신을 사랑해 주면 된다"


이렇게.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것은 명상을 통해 가능했다.

숨 쉬는 것에 집중하고 가만히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휴... 내가 이렇게 큰 꿈을 이룰 수나 있을까?'

(아, 방금 또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구나.)

'나쁜 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갑자기 5년 전에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말을 내가 지금 떠올렸구나.)


이렇게 말이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규정하는 나의 모습과 내 인물의 그것들 사이의 간극을 알아차리면 된다.

내 안에서 그 사람을 연기하는 데에 닮은 것은 증폭시키고, 다른 것은 빼내고 그 사람의 것으로 새로 창조해서 집어넣는 작업이 곧 연기 메서드의 핵심이다.


"나"라는 인물을 이루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와 편견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내려버린 결정들을 바꾸면 새로운 인물로 태어날 수 있다. 마치 배우가 새로운 인물로 태어난 것처럼 연기를 하듯이!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만약 내가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 목소리가 딱히 나쁘지 않고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수용해준다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니 그것대로 훌륭한 선택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도 해주고, 마음에 들지 않고 나를 계속 갉아먹는 내면의 목소리를 알아차려 가며 나 자신을 새로 창조하는 작업을 해나갔다.


나를 재 탄생시키는 일.

그것은 곧 내 운명을 바꾸는 일이고 ([1막(1): 주인공] 글 참조!)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꾸는 일이기에 실로 마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말: 현재 두가지 버전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 중심의 글은 [EP.#]로, 에세이 형식은 [X막X장] 이렇게 연재 중인데, 어떤 버전을 더 선호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글 쓰는데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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