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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Sep 19. 2022

3년간 심리 상담에서 얻은 것들

심리 상담을 망설이는 당신께

나는 지난 3년간 심리 상담을 받아왔다.

첫 두세 달은 굉장히 자주 방문했다. 일주일에 세 번도 갔었다. 그러다가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한 달간 가지 않았다가, 또 너무 힘들어지면 방문했다가. 그 이후에는 꾸준히 일주일에 한 번 방문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나머지 일 년은 두 달에 한 번이나 세 달에 한 번, 만약 중요한 결정이나 특히 힘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몰아서 방문하곤 했다.


상담을 한창 받았을 때는 좋았을 때도 있고, 괜히 받고 있나 싶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느정도 상담을 덜 받는 시기에서 뒤돌아보니,  심리상담을 받길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든다. 누군가는 그냥 3년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저절로 철이 들고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상담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1. 관찰자&일기 효과


정말 아주 친한 친구(그런데 이제 심리학을 잘 알고, 나의 치유를 위해 전적으로 힘써주는)가 생겼다고 표현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그게 맞다.


일단 상담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고, 자신의 근황 및 일상, 그리고 최선을 다해 (개인마다 최선의 차이가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처음엔 자신의 문제를 부정하기도 하고, 까먹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너무 힘들어서 외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상담사는 "이번에도 이런 문제를 겪고 계시는군요"라는 코멘트를 해주면서 내가 겪고 있는 여러 추상적인 "힘듦"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세밀한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예를 들면 나 같은 경우 언제나 결정을 앞두고 과하게 계산하고 고민하다 못해 불안증에 시달리고 그 불안이 우울과 비관과 공황으로 빠지곤 했다.

또 뭔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신감을 얻고 무언가를 향해 정진할 때 스스로에게 큰 기대를 하다가 그 기대가 조금만 꺾이면 바로 심하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남과 다툼이 있을 때는 분명히 타인의 잘못이어도 뭔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 일이 일어났다고 과하게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우울의 늪으로 빠지곤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비슷한 문제로 선생님에게 내 힘듬을 호소하다 보면 스스로 깨닫는다. "아, 또 이거네? 나 또 이러네?"


2.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


물론 "아 또 이러네?"라는 깨달음 정도로 뭔가가 바뀌진 않는다. 그렇지만 또 한 번 비슷한 문제가 닥칠 때 적어도 나의 불안한 마음, 우울한 마음, 분노하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


예전에 한 친구가 나에게 "스스로에게 친절한 친구가 되어줘."라는 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친구에게 섭섭했다. 그 친구가 나에게 그 친절한 친구가 되어줬으면 했기 때문에.

그때는 노력해도 할 수 없었다.


나 같은 경우 스스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을 상담을 받고 3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이 늘 해주시는, 상담사의 목소리가 나 자신의 습관적 목소리를 대체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나와 가까운 가족이 갑작스럽게 나에게 막말을 하거나 화를 낸다거나 하면 상처를 받다 못해 굉장히 극단적인 생각이 들곤 했다. 한마디로 겨우 겨우 내가 이룩해 놓은 평안이라는 모래성을 짓밟고 나를 불안과 우울, 자신감 없는 상태로 돌려놓곤 했다.


내 가족으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하는 것이 내 상담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상담 선생님이 내 가족 탓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가족이 나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가족은 나를 정말 사랑해주었고, 나는 우리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처음에 상담 선생님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내 입으로 욕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상담 선생님을 못 믿는 시기도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잘 넘기고 내 주위 가까운 이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들의 장단점과 내게 미쳐온 부정적인 영향을 분명히 밝혀가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의 분노 분출, 불안함,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화로부터 나 자신의 평안과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비교적 능숙해졌다.


얼마 전 나의 평안을 위협하는 상황이 찾아왔고, 나는 우울한 감정이 들었다. 그때 극단적으로 "죽고 싶다" "살아서 뭐하나" 등등의 생각으로 가지 않고, 내 내면에서 친절한 친구의 목소리를 소환했다. 그 친구는 당연히 나였다.


"그래, 또 이런 일이 생겼구나. 그런데 알잖아. 이런 일로 인해서 너 삶이 멈추지 않을 거고 멈출 이유도 없다는 것. 이 일은 또 지나갈 거라는 거."


"오늘은 좀 슬프지 뭐, 어때. 내일은 다시 일어나서 힘 내보자."

"만약 내일도 힘들면?"

"만약 내일도 힘이 안 나면 내일도 쉬면 되지 뭐."


너무나 개인적인 일이라 친절한 친구의 다독임을 더 상세하게 쓸 수 없지만 예전에 나에게 불충분했던 능력이다.


3. 현명하게 갈등하는 법


지인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오해와 갈등에서 오는 불안도 스스로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피한 갈등 상황에서는 최대한 내 마음이 편한 방식으로, 나에게 피해가 가장 덜 한 방식으로, 또한 피해가 생긴다면 그 피해를 책임질 각오를 하면서 갈등에 임하는 법도 배운 것 같다.


4. 타인과 나의 감정을 허락하기.


나는 상담 선생님에게 늘 "선생님, 제가 이런 일로 너무 (감정 아무거나) 했어요. 이거 정상인가요?" 라면서 내 감정의 정당성을 의심했다.  한마디로 나는 혹시 내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이 과했다.


또는 타인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타인도 나도 감정이란 건 생길만해서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타인이 분노조절 장애로 진단을 받은 환자라 나에게 과도한 분노를 느꼈다고 100명이 판단할 지라도, 그 당사자는 그만큼 분노를 느낄 만했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일단 인정해야 발전이 있고, "그다음" 이 있다는 걸 아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5. 나 자신을 아끼는 법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


대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사실 최근까지도 나는 헷갈렸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성숙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이 바람직할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첫 2년간은 자기 사랑이 너무 안돼서 아침에 일어날 때, 밤에 잠을 잘 때 혼잣말로 "나는 나를 사랑한다!"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세뇌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잘 되지 않자, 나는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이 "포기한다"라는 것은 "내려놓음"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었다. 사실 포기한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나의 여러 단점들까지 그냥 다 수용해버렸던 것이다. 예전에는 계속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세뇌하면서 내가 더 완벽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는 의도를 가졌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자시고 하는 그 짓거리"를 포기했더니, 그 의도 "더 완벽한 사람이 될래" 도 포기해버렸고, 그 결과 나는 드디어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속 연인의 옷 스타일, 몸매, 사고방식을 지적하는 연인과 데이트해 본 적 있는가? 사랑한다면서 계속 연인을 때리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연인을 사랑한 게 아니다. 그저 자기 멋대로 조종하고 정복하고 싶어 한 것뿐.


나도 나 스스로에게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일단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있는 그대로 숨쉴 수 있게 해주어야 성장이 가능하다.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것은 사랑의 첫번째 단계다. 일단 수용 하고 나서 천천히 다독이며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게 맞는 순서다.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탈 때 처럼,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무서워서 울면 우는대로 내버려 둬 주면서도 응원해주고, 일으켜 세워주고 하는 것처럼.


6. 상담도 힘을 뺄 필요가 있다.


3년간 상담의 효과는 상담을 어느정도 포기했을 때 극대화된 것 같다. 한마디로 이제 상담을 하도 오래 받다보니 "에효 이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싶을때가 왔을 때다. 다른 말로, 이제 내 자신의 문제도 훤히 보이고 선생님도 무슨 말을 해줄지 너무 잘 알게 되었을 때라는 뜻 도 된다.

 

 며칠 전 오랜만에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요즘 내가 예전처럼 막 발전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될 대로 돼라 하면서 사는 것이 고민이었다. 난 3년간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에 총력을 다해왔는데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너무 이상했다.


선생님과 나는 내가 더 이상 애써 변화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신병원에 와야 할 사람은 오지 않고, 늘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찾는 곳이 정신병원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사실 대다수 정상인으로 태어났다. 다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상처받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의심하며 파괴하는 지경까지 오게 된 것뿐.


그렇게 나는 지금 서서히 상담을 졸업하고 있다.

그리고 2022가 되어서 상담을 아직 10번도 안 갔는데, 이번 2022년도에 나는 2019,2020,2021 동안 상담실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내가 대단한 성취를 이뤘고 대단히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은 전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치유의 여정을 걷고 있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상담사가 되어줄 정도는 된 것 같다.


치유란 어떤 종착역이 아니라, 그냥 다이어트 처럼 평생 해나가야 하는 그런 것이란 것을 받아들인것도 상담의 큰 성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7. 꾸준한 노력은 배신 안 한다.


비록 내가 상담을 어느정도 포기했을때 (힘을 뺏을 때) 효과가 극대화 되었다고 말은 했으나 지난 3년 간의 꾸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당연히 극대화 될 효과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상담 선생님도, 그리고 나도 힘들었던 때가 있다.

상담 선생님도 가끔은 자신의 상담이 정말 내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을 때도 있다. 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찾은 선생님이 최고의 선생님이란 보장은 없었다. 다만 선생님은 내 가까이에 계셨고, 예약하기가 수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은 인간적으로 나를 대해주셨다. 상담사 중에서 자신의 모습은 전혀 내비치지 않은 채 오로지 상담사로만 존재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경험해봤지만 나는 그들을 신뢰하고 마음을 터놓지 못했다. 내가 찾은 선생님은 다른 분들에 비해서 본인의 이야기도 적절히 해주시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오픈도 해주셔서 나는 그 점이 숨통이 트였다.


선생님은 정말 진정으로 나를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해 주셨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을 의심하는 위기를 넘어 꾸준히 선생님을 찾아갔던 것 같다.


어디에도 완벽한 상담사는 없다. 그나마 나랑 잘 맞는 상담 선생님을 꾸준히 찾아 그 날 그 날의 상담에 임하면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한 시간, 또는 50분이라는 시간에 8만원 이상 하는 상담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초반에는 기를쓰고 상담에 임했었다. 그렇지만 그냥 일단 상담실에서 기운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내키지 않으면 내키지 않는대로 본인의 감정 상태를 최선을 다해 전달만 해도 된다. 아예 상담을 포기하는 것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8. 상담은 얼마나 힘든 사람이 받아야 할까?


심리 상담은 싸지 않다. 그렇기에 꾸준히 받는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중간에 포기하고 그 돈으로 쇼핑이나 하는게 낫겠다 싶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란것 자체가 수치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나는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저는 상담을 받아요" 라고 말했다가 편견어린 시선을 받았던 적도 있다. 대놓고 "상담사는 애초에 나약한 사람들이 택하는 직업" 이라는 꽤나 내 기준에서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봤다.


중요한것은 수치심이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힘듦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내킬때 술을 먹는다. 내킬때 밥을 먹는다. 내킬때 옷을 산다. 심리상담도 그냥 가볍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대체 지금 얼마만큼 힘들지? 상담 받을 만큼 힘든걸까? 궁금하다면 일단 해보면 된다. 상담이 내키는 마음이 들 때. 그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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