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해리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는 대 목표가 있었고,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잔잔한 영화도 주인공이 행복과 낭만을 쫓는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의 목표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설정된다. 해리포터 같은 경우 고아로 자랐던 해리는 그것에 대한 극심한 결핍을 가지고 있었기에 볼드모트와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은 가장 낭만적이고 행복해야 할 결혼을 앞두고 공허함과 불안감을 느끼던 와중 시간 여행을 시작하여 낭만을 쫓는다.
바로 이거야!
배우로 타인을 연기하고, 작가가 원하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감독까지 한다?
그 세계 속에서 만이라도 나는 지긋지긋한 한계로 둘러싸인 "나"라는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의 성격이 만들어놓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나라는 인간을 영화 주인공을 분석하듯 해채 시켜 놓으면, 배우/작가/감독이 되겠다는 목표는 원하는 만큼의 사랑과 수용을 받지 못한 경험의 결핍으로부터, 그리고 그런 운명을 만들어낸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틀림없다.
어쨌든 덕분에 꿈이란 것이 생겼다.
미국에서는 배우/작가/감독/프로듀서 같은 형태의 아티스트가 다수 존재한다. HBO의 "걸스"라는 쇼의 레나 던햄이 대표적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여태 내가 경험한 여러 아픔들과 오해가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이해받길 원했다. 비록 나는 가난한 환경에서 캔디처럼 자라며 착해 빠지기만 한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 같은 캐릭터는 아니더라도, 조금 냉정한 구석이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하며 사회적으로 어색한 측면이 있는 (당시 내가 생각했던 나 같은) 여자라도 나름의 해피 엔딩을 찾아가고 멋지고 재밌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증명해 내고 싶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영원히 아이코닉한 인물로 살아가고 싶었다. 이 목표가 명확히 언제 생긴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 시트콤을 몰아서 보며 어느 날 그런 꿈이 생긴 것은 확실하다. 나는 워싱턴 스퀘어 근처의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서 치폴레라는 멕시칸 음식점에서 부리토 하나를 사들고 유니언 스퀘어까지 걸어와서는 기숙사 방에 놓여있는 독서실용 책상 앞에 노트북을 켜놓고 "How I met Your Mother"와 "Big Bang Theory"를 보며 식사를 했다.
나의 최애 시트콤 중 하나! 뉴욕이 배경이다.
주인공 테드나 레너드와 같은 캐릭터들 또한 나처럼 외로웠다. 테드는 가장 친한 두 친구는 결혼을 하는데 그 중간에 끼어서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도 못하는 싱글이고, 레너드 또한 심하게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여자와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그 인물들은 다소 난감하고 좌절할 수 있는 상황에 자주 놓이지만, 결국 시트콤 한 회의 끝에서는 어떻게든 그 사건들이 마무리가 되고, 심지어 그 과정은 꽤나 웃기고 유쾌하다. 또다시 인생을 살아가고 한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인물들은 조금씩 성장을 했다.
나는 시트콤의 그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걸 시트콤처럼 보면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은 없었다.
하지만 꿈에 한 발짝 내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워낙 겁이 많고, 실패가 두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꿈에 도전하는 첫걸음인 영화과 전과를 하는 inciting incident(계기가 되는 사건)이 생겼는데, 그 사건은 나로 하여금 꿈을 좇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괴롭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나마 유학반의 교과 외 활동 (유학을 하려면 성적뿐 아니라 교과 외 활동도 활발해야 했다)으로 참여했던 모의 유엔 회의에서는 나름 "인싸"의 위치에 있었다. 나는 토론대회에서 두각을 발휘했고 고2-고3 때 즈음, 모의 유엔 회의의 의장으로 활약했다.
그때 알게 된 나와는 다른 특목고 출신의 남자 사람 친구 A는 고등학교 친구 B가 있었는데, 그 B라는 인물은 정말 너무나 모의 유엔 대회에 소질이 없던 나머지 결의안 같은걸 써서 냈지만 기어이 안건으로 통과가 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나마 말을 직설적으로 잘했던 내가 그 B라는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이 결의안은 회의 안건으로 선정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의장들 대표로 전달했었다.
이런 역사를 지닌 A와 B는 1학년 때 나와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던 남자 사람 친구 C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렇게 A, B, 그리고 C는 나와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가게 된다. 우리가 기숙사 로비에서 다 같이 만난 그 상황에서 기숙사에서 나눠주는 무료 콘돔을 스윽 하나 챙기던 B의 모습이 복선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날 밤 어떻게 기숙사에 들어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은근히 A와 B가 나의 승부욕을 도발시키며 술을 마시게 했다는 점이다.
이후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난생처음 남자와 둘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B는 내 옷을 벗기고 있었으며 내 입술에 게걸스럽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것이 나의 첫 키스였다. 저항할 틈도 없이 그 잠깐 이후로 나는 또다시 기억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멘붕을 겪을 틈도 없이 정신을 차리고 학교에 있는 병원에 가서 "강간 검사"라는 것을 받았다. 한마디로 강간이 일어났는지 안 났는지 체크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삽입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내 1학년 기숙사 방에는 내 룸메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버려서 나 혼자 살고 있었고, 기숙사의 정책상 (자살 등을 방지하기 위해) "Open-door Policy" (방문 열어 놓기 운동) 였어서 그 B라는 새끼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살던 Goddard 기숙사 방 구조
강간 미수 사건 며칠 후는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1학년 때 올 A를 맞아서 아이비리그로전학하고자 했던 내 야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나는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의 이별과, 1학년 때 겪은 사고의 여파 때문인지 나는 우울감에 빠져 휴학을 결심했다.
그때는 그것이 우울 인지도 몰랐다. 다만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타지에서 버티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귀국을 했지만 사실 한국에서도 내가 원하던 정서적 지원은 받지 못했다. 동생의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가족 모두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지탱해준 것은 영화, 시트콤 그리고 무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예술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고, 예술을 통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
"영화감독, 작가, 배우가 되자!"라고 마음먹고 나니 두려울 것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드라마틱한 일들을 겪으면 겪을수록 나는 더 멋진 자양분을 가진 예술가가 될 테니까. 그렇게 나는 TV and Film Production 과로 진학을 결심했고, 전과에 성공했다.
엄마의 말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시간 낭비라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모험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말: 현재 두가지 버전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 중심의 글은 [EP.#]로, 에세이 형식은 [X막X장] 이렇게 연재 중인데, 어떤 버전을 더 선호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글 쓰는데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