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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맹한 바닷가재 May 06. 2020

인생이 바닥이라고 느껴진다면

호주 워킹홀리데이 실패 경험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마침,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후배와 연결이 됐고 그 친구의 말을 듣고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월 400이라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후배가 일하는 공장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No였다. 이유는 2주 전 발생한 산불과 홍수로 자국민 고용 안정을 위해 워홀러들을 당분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후배는 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오전에는 이력서를 돌리고 오후에는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했다. 하지만 집중은 잘 안 됐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할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세차 업체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미팅 약속을 잡고 사장을 만났다. 사장은 걸레와 왁스를 주고 차를 닦아보라고 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차를 닦았다. 물을 사용하지 않는 업체라서 왁스와 함께 폭풍 걸레질을 해야 했다. 2시간 동안 차를 닦으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사장은 수고했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아~ 이제 일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필요 없구나." 나는 좌절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했고 이력서를 돌리고 싶은 의욕도 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호주에서 외국인 실업자가 되었다. 다른 한국인들은 내가 일하고 싶은 공장에 이력서를 내고 2주를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자 포도농장, 바나나 농장으로 떠났다. 하지만, 나는 목표한 금액이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렸다.

호주의 하늘은 맑았지만, 내 마음은 어두웠다. <2009년 3월 락 햄프턴의 하늘>

 결국, 두 달 동안 내가 일하고 싶은 공장을 비롯해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결단을 해야 했다. 더 이상 월세를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주에 와서 두 달간 비행기 값과 생활비로 300이라는 돈을 썼지만, 내 손에 들어온 돈은 0원이었다.(정확히 말하면 -750,000원이었다.) 나는 철저히 실패를 경험했다. 그야말로 인생의 바닥을 쳤었다.


 호주에 온 지 60일 만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잠이 오지 않았고 계속 생각을 했다.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태평양을 내려다보면서 다짐 하나를 했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이후로 이 다짐은 나의 인생 좌우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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