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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맹한 바닷가재 Nov 16. 2019

수능 감독을 하면 좋은 점 6가지

수능 감독 업무에 대해 관점을 바꿔 보았다

  1년에 한 번 대학 수학능력시험 날에 시험 감독관 업무를 수행했다. 올해까지 9년 간 수능 감독관 업무를 해오면서 좋은 점 6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수능 감독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 새벽부터 배정된 학교에 가서 최소 5시간 이상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하고, 감독 업무를 하다가 큰 실수를 하면 소송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긴장된 상태로 감독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래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즐길 수는 없어도 올해는 불평, 불만을 하지 않고 좋은 점을 찾으려고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예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감독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아래에 해당되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습니다.

수능 감독을 너무 하기 싫은 선생님
수학능력시험 감독을 하는 선생님의 하루가 궁금하신 분
일상에서 '감사'의 보물을 찾고 싶으신 분


1. 뭐라도 배운다.

  수능 전 날 배정된 학교에 가서 예비소집을 하는데 수능 감독 업무에 대해 전반적인 연수를 1시간가량 받는다. 지진 상황일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부터 매교시 감독 요령, 휴대 불가능 물품, 사탐 과목 문제지 배부 요령 등 교무부장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는데 매년 다른 학교를 가기 때문에 교무부장 선생님에 따라 연수 방법이 다르다. 핵심만 요약해서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시는 분부터 하셨던 말씀을 몇 번이나 반복하시는 분까지 경험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훈화나 수업을 할 때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인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학교마다 수능 당일 선생님들을 위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 주는데 아침식사를 못한 선생님들을 위해 죽이나 샌드위치, 라면, 떡 등을 준비해 주신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학교는 봉지에 다양한 과자와 과일, 음료수를 넣어 준 학교가 있었는데, 센스 만점이라고 생각했다. 행사 주최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만족과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오랜 시간 고도의 집중과 몰입을 하면서 문제 푸는 모습을 보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이 된다.


2. 나라가 하는 일에 기여하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관해서 진행한다. 1년에 한 번은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공적인 일에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왕 하는 거 자부심을 느끼면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3. 소소한 기쁨  

  전 날 예비소집을 가면 해당 학교가 5교시를 보는 곳인지 여부를 알게 된다. 5교시를 보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같이 온 선생님끼리 기쁨을 나누게 된다. 올해는 5교시를 보는 학교였는데 감독을 하지 않았다. 유튜브 더끄채널에 <수능 당일 감독관 브이로그> 편의 5분 16초~34초를 보면서 격하게 공감했다.(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신 분은 꼭 보시길^^)

  수능 당일 날에는 1교시 감독 여부에 촌각이 곤두서게 되는데 1교시 감독은 다른 교시보다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1교시 감독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긴장이 풀리면서 괜히 기쁘고 고사 본부 측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2, 3, 4교시를 연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2교시 전까지 2시간 넘게 쉴 수 있고 중간에 점심시간도 있기 때문에 괜찮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대학교 때 예상하지 못한 휴강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4교시는 세 명의 감독이 들어가는데 제1감독은 주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한다. 그래서 기대감 없이 제1감독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제2감독을 하게 되면 제1감독에 비해 부담이 덜 하기 때문에 속으로 ‘야호’를 외치게 된다.

 매교시가 끝나면 고사본부에서는 전 교시 답안지에 대해 학생들이 필적 확인은 제대로 썼는지, 수험번호는 제대로 마킹했는지, 감독관이 도장을 잘 찍었는지 확인을 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해당 학생과 선생님들을 본부로 소환하는 방송을 하는데 그때 내가 감독했던 고사장과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과 "음, 감독을 잘했군"하는 마음이 든다.   


4.  강제 명상 시간

  새벽부터 일어나 배정된 학교에 도착하면 대략 7시 정도다.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을 수거해 가는데 고사장을 나오기 전까지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대략 9시간 정도 된다. 어찌 보면 1년 중 유일하게 전자기기를 최장 시간 사용하지 않는 날이기도 하다. 쉬는 시간에 동료 선생님이 모두 감독하러 가시면 심지어 말도 거의 안 하게 된다. 그야말로 강제 묵언, 생각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수능날에는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임해봤다. 고사실은 극단적으로 조용하기 때문에 마치 깊은 숲 속의 절에 온듯한 분위기가 감돈다. 답안지와 문제지를 배부하고 시작종이 울리면 부동자세로 종료령이 울릴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한다. 시선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감독업무에 충실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생각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예상하지 못한 좋은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눈 밑이 가려우면 일부러 긁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고 가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봤다. 가려움이 사라지면 이내 극도의 평온함이 밀려왔다. 어떤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인내를 했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언제 끝나지?, 힘들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10분에 한 번씩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계를 볼 때마다 시간은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았고, 마음과 몸은 더 힘들었던 반면, 올해는 명상을 한다는 마음 가짐 덕분인지 시간이 금방 갔다. 고사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가끔, 살다가 일이 잘 안 풀리고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답이나 지혜를 얻고 싶으면 조용한 곳에 가서 전자기기 없이 몇 시간 동안 생각만 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간가량 강제로 생각 수행을 해보니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마구 떠올랐다.


5. 뿌듯함

  매 교시마다 종료령이 울리면 답안지와 문제지를 수거 후 수량을 확인하고 고사장을 나온다. 고사장에 들어갈 때는 긴장이 가득이지만, 고사장을 빠져나올 때는 별문제 없이 무사히 마쳤다는 마음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뿌듯함을 느낀다. 마지막 교시 감독을 마치고 본부에 답안지와 문제지를 인계한 후 도장을 찍고 "이상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학창 시절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끼리 오락실 갈 때의 해방감이 든다. "아 이제 끝났다"라는 말과 함께 맡겼던 휴대폰을 돌려받으면 왠지 기분이 좋다.


6. 일체유심조를 경험하다

  2019학년도 수학능력 시험 감독관 업무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수능 감독관을 하면 좋은 점 6가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기 싫은 감독이지만, 그 안에서 좋은 점들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즉, 관점을 바꾼 것이다. 집에 도착하고 대학원 수업에서 배운 인지, 정서, 행동 치료를 최초로 주창한 앨리스가 떠올랐다. 그의 치료법은 에픽테투스의 철학에 기인한다고 한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건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우리의 생각 혹은 신념체계를 바탕으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세상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도 생각을 강조한 내용이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성격심리학, 노안영, 강영신, 학지사, p.436>

    교과서로 배워 머리로만 알고 있던 개념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본 것이다. 관점을 바꾸고 임한 수능 감독을 계기로 앞으로 원치 않는 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때마다 수능 감독 때처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2019년 11월 14일(목)이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든 수험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어떤 일에 기여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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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매거진을 구독하면 좋은 점

평범한 일상을 낯설고 특별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경험한 모든 일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 보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어제 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얻습니다
감사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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