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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이름

by 가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23년 5월 18일, 그토록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안녕을 묻는 인사와 함께 나를 작가라 칭하는 이메일의 첫머리. 분명 혼자였다면 입을 틀어막고 기쁨의 몸부림을 쳤을 거다. 수능으로 치면 사수생. 네 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일궈낸 결과였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스스로를 '글을 꽤 쓰는 사람'이라 여겼던, 그러므로 단번에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단단하게 착각했던 바로 그때. 한마디로, 자만과 교만으로 똘똘 뭉친 암흑의 시기였다. 어쩌면 브런치의 감식관은 나의 짤막한 글 속에서 이런 시커먼 속내까지 파악했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즉,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흔히 인생의 변환점이라 일컫는 순간을 마주할 때,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네 차례의 브런치 측의 연락은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졌으며, 하루 종일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렇게 하나의 신념이 무너지고 새로운 신념이 자리 잡게 됐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구나, 하고.

배움의 끝은 없다고 했던가.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한 지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여전히 겸손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매일 글을 쓰고, 지우고, 또다시 쓰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번듯한 명함이 생긴듯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작가'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근사한 이름 하나가 생긴 거다.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는, 조금 우쭐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이들이 내 글을 읽고, 아주 운이 좋다면 빠른 시일 내에 번듯한 책 한 권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이런저런 망상에 사로잡힌 채 키보드 앞에 내리 앉아 있는 게 버릇이자 일상이 됐다. 표면이 반들반들한 사과도 속은 썩어있을 수 있는 법.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계략으로 가득 찬 글이 딱 그렇다.

스크롤 저 아래 묵혀있는 2년 전의 글을 곱씹다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왜 이런 단어를 골랐고,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금이라면 저렇게 느끼하게 쓰지 않았을 텐데. 있는 그대로를 쓰면 될 것을, 거기에 '느낌'이라는 것을 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눈에 훤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단어와 문장, 진심보단 겉치레로 포장한 글들이 끝내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딱딱하게 굳혀버렸다.

뻣뻣한 몸을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트레칭을 하는 거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팔을 앞으로 쭈욱 뻗으면서.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며 간간이 옆구리를 콕 찌르는 브런치의 알람이 부지런히 손을 풀게 한다. 힘을 잔뜩 주며 완벽이라는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유연하게 써 내린다. 그러다 문득 다른 말을 하고 싶을 땐,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듯 과감히 지우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여전히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이 좋다. 어쩌면 2년 전보다도 훨씬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작가'라는 이름 이면의 뜻을 알아가면서 이제야 비로소 '진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과 감정 속으로 깊게 파고드는 순간, 이곳에 글을 쓰며 본연의 나를 찾아간다.

끊임없이 쓰고 지우며 진심을 발행해 본다. 진심이 진심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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