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담 May 19. 2024

애쓰기보다 넘어지지 않길



8시 10분, 늦었다.



평소라면 진작 목적지까지 1/3쯤은

걸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제서야 지하철에서 내렸다.

세 번째 알람에 일어난 탓도 있지만,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한 건 내 과욕이었다.



계단에 오르자마자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절대 일터에 늦지 않겠다는 의지,

특히 발가락에 의지가 가득했다.

일종의 추진력을 얻어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하지만 꽤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아차, 뭔가 잘못됐다.

발끝에서 돌멩이의 묵직함이 느껴질 찰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다들 그렇듯 아픈 것보다는 부끄러움이 먼저다.

이게 얼마 만에 넘어진 거더라,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주 오랜만에 넘어졌다.

최근 들어 기우뚱할 때가 잦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넘어질 징조였나 보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갈 때가 많다.

눈썹 위까지 싹둑 자른 앞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언제 콧등까지 내려오나 틈만 나면 노려본다든지,

이제 막 맺힌 화분 속 봉오리의 안부를

집착한다 싶을 만큼 묻는다든지.

머리카락은 하루 평균 0.3mm 정도 자라고

꽃이 활짝 피기까지에는 정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변화를

잠자코 보고만 있자니 애만 타들어간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됐다.

고민은 또 다른 고민거리가 덮기 마련이니까.

한동안 안중에도 없던 지난 관심사의 근황이

뜬금없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뭐야, 언제 이렇게 자랐지?

5:5 가르마로 갈라놓은 앞머리를

이마 중앙으로 끌어오고,

키다리 수풀을 비집어 꼬맹이 싹을 찾아보니

못 본 사이에 많이들 자라있다.



발가락과 눈의 긴장을 풀어본다.

발에 쥐가 나고 눈이 충혈된다 한들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때가 되면 머리카락이 자라고,

새싹을 틔우듯이 어련히 흘러가도록 두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때도 있으니까.

흐늘거리지도 너무 뻣뻣하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중심으로 인생의 강약 조절을 해본다.



가끔은 애쓰기보다 넘어지지 않길,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략 개시다.

다 큰 나이에 자주 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두 번째 알람에 눈을 떠보기로 한다.   

돌멩이쯤이야 피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지!

매거진의 이전글 돌고 돌아 결국 단정함이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