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텀 Jul 15. 2023

로지텍 2

유능한 CEO와의 결별

2023년 6월 13일, 로지텍은 지금까지 11년간 기업을 이끌었던 CEO 브래큰 대럴의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이사진 중 하나인 가이 객트가 임시 CEO 자리를 맡게될 것이며 대럴은 떠나기 전 다음 한 달 동안 경영권 위임을 위해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은 꽤 놀라운 소식이였습니다. 로지텍이 코로나 이후에 경영실적 악화됐으며 주가 역시 고점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맞지만 대럴이 지난 10년의 성장을 함께해온 인물인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로지텍은 대럴이 '다음 기회'를 찾아서 떠난다고 밝혔지만 여러모로 물음표가 남는 발표였습니다.


대럴은 팀 쿡, 일론 머스크나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스타 CEO는 아니지만 분명히 유능한 인물이였습니다. 대럴이 2012년에 로지텍에 합류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루어낸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2년 부임 시점 대비:  

    매출 최대 150% 상승, 현재 기준 약 100% 상승  

    영업이익 최대 1310%상승, 현재 기준 약 410% 상승  

    순이익 최대 2100% 상승, 현재 기준 약 660% 상승  

    주가 최대 11배 상승, 현재 기준 4.5배 상승  


대럴이 로지텍에 합류한 시점은 로지텍이 낮은 수준의 이익을 기록하던 시절으로 기준점이 낮은 부분은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제 막 이익을 내기 시작하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 현재 수준의 매출과 이익을 기록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요 인물이기도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매출 증가를 위해 마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게 대럴은 매출을 늘림과 동시에 이익률을 증가시키는데 성공했고 실제로 2012년 대비 영업이익 마진율과 순이익 마진율이 모두 4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대럴은 분명히 유능한 CEO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와의 결별은 투자자로써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한 기업이 CEO와의 결별을 발표할 때 투자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들을 크게 세 가지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상할 수 있던 정해진 수순의 결별이였는가  

    CEO가 '더 나은 기회'를 위해 떠났는가  

    CEO의 대체자를 찾기가 쉬운가  

이번 글에서는 위 세 가지 고려사항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함께 로지텍에 대한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예상할 수 없었던 결별


코로나 이후 실적 약화를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CEO와의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코로나 때 수혜를 본 많은 기업들이 그 성장세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더욱 더 상황이 어려워진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코로나로 인해 실적이 크게 악화되어 경영난이 심해진 이후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에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로지텍은 전자에 해당하는 기업이지만 대럴과의 결별은 결코 예상된 선택은 아니였습니다. 위애서 말한 것과 같이 로지텍과 대럴은 기업 성장의 대부분을 함께해왔습니다. 단순한 제품군을 가지고 있던 로지텍을 다양한 제품군으로의 확장으로 이끌었으며 로지텍이라는 브랜드의 입지 역시 더욱 단단하게 일궜습니다. 이러한 성과와는 별개로 현재 로지텍의 실적 악화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코로나 특수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기업의 실적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로지텍은 코로나 이전인 2020년에 비하여 여전히 유의미하게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럴의 사임은 예상되지 않은, 갑작스런 발표였으며 이는 부정적인 소식입니다.


VF Corp에 합류한 대럴


사임 발표 약 일주일 후 대럴은 의류 기업인 VF Corp에 합류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로지텍이 대럴의 사임을 발표했을 때 과연 이것이 로지텍 임원진의 선택인지 대럴의 선택인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 발표로 인해 로지텍과의 결별은 대럴의 선택이였음이 확인됐습니다. 이는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식입니다. CEO가 본인의 선택으로 기업을 떠날때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다른 기업에서 더 나은 기회를 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결국 로지텍은 대럴에게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다지 좋지는 않은 기회'의 위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떠나서 합류한 기업이 VF Corp라는 점 역시 아쉽습니다. VF Corp는 유명 스니커 브랜드 반스를 대표로 하는 의류 기업인데 이 기업은 로지텍보다 작은 규모의 기업이며 최근 경영난으로 인해 배당을 삭감하며 배당 귀족주의 위치에서 내려오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의류 기업의 특성상 경쟁이 심하고 마진이 낮으며 성장 가능성도 상당히 제한돼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럴은 로지텍보다는 VF Corp를 선택했습니다. 의류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대럴이 오랜 기간 몸 담으며 익숙해진 로지텍을 떠나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기업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크게 세 가지 중 하나의 생각에 기반한 결정으로 생각됩니다. 첫째, 로지텍보다 VF Corp가 더 나은 기업이라고 생각했거나, 둘째, 로지텍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있는 기업을 이끄는 것을 새로운 도전으로 판단했거나, 셋째, 단순히 돈을 따라 갔을수도 있습니다.


로지텍과 VF Corp 중 어느 기업이 더 나은 기업이라고 판단했는지, 혹은 VF Corp를 이끄는 것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대럴 본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돈에 대한 이야기는 나름 명확합니다. 로지텍의 2022년 Proxy Statement에 따르면 대럴은 로지텍의 CEO로 2022년 종료 기준 약 100만 달러 수준의 연봉을 받았으며 이외에도 현금 보너스 185만 달러, 그리고 실적에 대한 주식 보너스로 700만 달러를 수령했습니다. 주식 보너스의 경우 3년의 충족 기간이 있기 때문에 대럴은 이 중 마지막 700만 달러에 대한 권리를 이번 사임을 통해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VF Corp의 8-K에 따르면 대럴의 연봉은 130만 달러로 로지텍에 있을 때에 비해 30% 상승했습니다. VF Corp가 명백히 로지텍보다 보상적으로 좋은 조건이였던 것은 이 30%의 인상률에 더해 다른 요소들에서도 확인됩니다. VF Corp가 제시한 타겟 보너스는 연봉의 약 175%로 로지텍의 125%보다 훨씬 높은 조건입니다. VF Corp의 실적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임을 생각하면 대럴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2024년에는 근속 보너스 900만 달러를 지급할 것이며 대럴이 위에서 포기한 700만 달러 수준의 주식 보너스를 보전해주기 위해 300만 달러의 주식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정리하면 예상되는 대럴의 연봉패키지는 로지텍에 있었을 당시 포기한 보너스를 포함하고도 985만 달러였던 수준에서 무려 1550만 달러 수준으로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VF Corp는 대럴이라는 유능한 CEO를 영입하기 위해 악화된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큰 규모의 연봉패키지를 제시했으며 이는 대럴의 선택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순히 돈을 위한 움직임이였다면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소식이지만, 만일 로지텍의 미래에 대한 대럴의 견해가 좋지 않았다면 아주 부정적인 소식입니다. 만일 VF Corp가 제시한 조건이 로지텍과 비슷했거나 좋지 않았다면 로지텍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지만 VF Corp가 명백하게 월등히 나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대럴의 견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유능했던 CEO를 대체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이 요소입니다. 유능했던 CEO를 대체할 수 있는 인재를 찾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현재 임시 CEO를 맡고있는 객트는 이전에 EFI라는 회사를 18년간 이끈 경험이 있는 인물이지만 로지텍이 다음 CEO를 찾고 있다고 공표한만큼 실제로 그가 CEO의 자리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로지텍은 분명히 매력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조건에 따라 훌륭한 CEO를 영입할 수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며 이 결별이 대럴의 선택이였던만큼, 다음 CEO를 찾는 과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성이 있습니다.


대럴은 분명히 유능했던 CEO였고 대체하기 쉽지 않겠지만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로지텍의 사업 모델이 결코 복잡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로지텍은 쉽게 말해 컴퓨터 주변기기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으로 전형적인 제조산업에 가까운 기업입니다. 이러한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이라고해서 아무나 성공적인 CEO가 될 수 있는건 아니지만, CEO 후보가 될 수 있는 인재풀이 넓은 편입니다. 제조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CEO는 복잡한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들을 운영해본 CEO보다 그 숫자가 많으며 다양한 성공 사례들 역시 있습니다. 또한 대럴이 그 동안 로지텍과 함께해오면서 쌓아올린 브랜드라는 무형자산은 CEO와 함께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대럴이 유능함에 비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CEO이기에 대럴의 결별을 로지텍 브랜드 가치와 연동하여 생각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이 질문에는 조심스럽지만 가능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자 합니다. 물론 가능하다고해서 다음 CEO가 꼭 대럴만큼 좋은 CEO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체불가능 할 것이라는 결론은 곧 투자 불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이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로지텍에 대한 관점


대럴의 사임 발표와 동시에 로지텍의 주가는 다음날 약 11% 급락했다가 1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하며 다시 약간 상승한 상태입니다. 후자는 기업의 펀더멘탈과 전혀 상관없는 요소지만 로지텍이 좋은 CEO를 찾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 자사주 매입은 현재 주가를 생각하면 현명한 자산배분 전략으로 보입니다.


현재 로지텍에 대한 저의 관점은 '매수 중지'입니다. 로지텍의 주가 급락이 다른 일시적 요소로 인한 급락이였으며 CEO의 사임이 없었다면 큰 고민없이 매수를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위에서 고려한 요소들에서 대럴이 로지텍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떠났으며 그가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투자의 아이디어 훼손으로 간주하여 전량 매도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지텍이 이미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있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기업인 점과 제조 기업의 특성상 대체자를 구하는 것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고려하여 다음 CEO가 누가 될지, 그리고 다음 CEO의 선택과 로지텍의 방향성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성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한 후에 다음 선택을 내리고자 합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CEO의 사임, 그것도 유능한 CEO의 사임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일입니다. 로지텍의 펀더멘털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분기점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Disclaimer: 이 글은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6/24/2023

Value Investor's Sanctum

작가의 이전글 애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