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텀 Jul 14. 2023

애플 1

위대한 기업의 옹졸한 행보

애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입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지휘 아래 혁신이라는 단어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으로써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으며 이제는 현명한 리더인 팀 쿡이 이끄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자랑하는 위대한 기업입니다. 아이폰은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서 하나의 시대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애플이 구축한 생태계는 브랜드 가치의 단순함을 정교화하는데 성공해냈습니다. 애플은 말 그대로 위대한 기업의 정의 그 자체이며 국내외를 따지지 않고 수 많은 투자자들이 사랑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 기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인 워렌 버핏의 공개기업 포트폴리오의 40%가 애플이라는 점 역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에 대하여 부정적인 글을 쓰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이라는 위대한 기업이 현재 펼치고 있는 옹졸한 정책, 자사주 매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자사주 매입


자사주 매입은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요소입니다. 자사주 매입을 통해 유동 주식수를 줄임으로써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끌어올려주는 효과가 가장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애플은 지난 수 년간 엄청나게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애플은 2019년부터 매년 시가총액의 4% 수준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는데, 이는 애플이 2019년 1조 달러, 현재 2조 달러가 넘는 규모의 기업임을 생각하면 말그대로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돈입니다. 위대한 상품을 파는 위대한 기업이 자사주 매입 정책을 펼치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기업의 또 다른 위대한 행보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자사주 매입이 회사의 미래, 즉 주주들의 미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내재가치 보다 높은 주가에서의 자사주 매입의 위험성


자사주 매입은 경영진이 기업의 주가가 실제 내재가치보다 낮다고 판단할 때 진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를 들어 경영진이 판단한 내재가치를 기준으로한 주가가 $10인 시점에서 실제 주가는 $8에 거래가 된다면 자사주 매입을 진행함으로써 $10을 $8에 사는것과 같은, 즉 자금을 20% 할인된 가격에 사는 행위가 가능합니다. 이는 기업이 매입한 자사주의 가치가 내재가치로 회귀하면서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의 상승을 뒷받침해줄 수 있습니다. 이 전제에는 경영진이 판단한 기업의 내재가치가 비교적 정확해야한다는 필수적인 가정이 들어가는데, 그 누구보다 경영진들이 기업의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합니다.


애플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자사주 매입 역시 팀 쿡과 경영진들이 판단했을 때 현재 애플의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애플의 자사주 매입은 매우 훌륭한 자산 배분 정책일 것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현재 지난 10년 기준 밸류에이션 최상단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애플의 실제 내재가치를 계산하지는 않겠지만 통상적인 밸류에이션 지표를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애플은 통상적인 관점에서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애플은 지금까지 꾸준히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이런 밸류에이션 지표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그러한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애플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기업이니까요. 하지만 애플의 CEO 팀 쿡은 공식적으로 애플의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내재가치와는 상관 없다고 밝혔습니다. 팀 쿡은 애플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떤 가격에서든 우리의 주식을 살 것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팀 쿡의 자신감으로 보이지만, 사실만 따져본다면 애플의 자사주 매입 정책은 본질적으로 내재 가치와 전혀 상관 없이 이루어진다고 시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무분별한 자사주 매입의 가장 큰 문제는 실패한 자산 배분입니다. 애플은 결국 본인들의 위대한 경영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현금을 미래 이익 창출을 위해 사용할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현금을 미래 이익 창출에 사용할 수 없으니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에게 보상을 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주주 환원의 일환이지만 애플이라는 기업이 현금을 유의미한 미래 창출에 사용하지 못하며 오히려 내재가치대비 높을수도 있는 주가에 자사주 매입을 진행한다는 것은 결국 미래 기업가치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10의 주 당 내재가치의 주식을 $8에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는 이전 예시와 반대로 $12(예시입니다)에 자사주 매입을 진행한다면 말 그대로 현금 가치가 파괴되게 됩니다.


2. 자사주 매입으로 왜곡되는 ROE와 EPS


자사주 매입의 또 다른 위험성은 ROE와 EPS라는, 투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표들을 왜곡한다는 점입니다. ROE는 자기자본이익률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본에 비교해서 얼마나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며 EPS는 주당 순이익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두 지표 모두 한 기업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이야기되며 실제로 기업의 주가와 유의미한 상관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을 통해 이러한 지표들이 왜곡되고 있다면 어떨까요?


ROE


2022년 회계연도 기준 애플의 ROE는 무려 197%로 보유 자본 대비 두 배 수준의 어마어마한 이익을 창출합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자사주 매입을 통해 왜곡된 수치입니다. 자사주 매입은 매년 자기자본을 의도적으로 줄일 수 있는 행위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2022년에 9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함으로써 자기 자본을 900억 달러 낮췄습니다. 애플의 2022년 재무제표 상 자기자본은 507억 달러였는데, 이는 자사주 매입을 통해 반 이상 낮아진 숫자입니다. 만일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애플의 실제 자본은 1407억 달러였을 것입니다. 이 숫자를 기준으로 ROE를 재계산 할 경우 71%로 기존 197%에 비해 1/3이 조금 넘는 수치입니다. 또한 애플이 지난 수 년간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을 해온 것 또한 고려해야합니다. 만일 이러한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현금은 자기자본에 반영됐을 것입니다. 2년 간의 자사주 매입을 고려하면 ROE는 44%, 3년 기준 ROE는 33%까지 떨어집니다.


명확하게 하고 싶은 점은 71%, 44%, 33% 이 세 숫자 모두 여전히 훌륭한 수준의 자기자본이익률이라는 점입니다. S&P의 평균 ROE는 20이 채 되지 않으며 애플이 3년치의 자사주 매입을 고려하고도 33%의 ROE를 보여준다는 것은 애플이 위대한 기업임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ROE에 비해 3배에서 6배까지도 이 수치를 왜곡하는 것이 현재 애플의 자사주 매입 정책입니다.


EPS


EPS의 경우 2022년 회계연도 기준 약 주당 $6.11으로 역시 훌륭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 역시 분모로 적용되는 유통주식 수를 자사주 매입을 통해 강하게 누른 상태에서 계산된 왜곡된 수치입니다. 위에서 ROE를 계산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보면 현재 $6.11의 주당 순이익은 2019년 회계연도의 유통주식 수에서 자사주 매입을 더 진행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5.37으로 내려옵니다. 여전히 훌륭한 수치로 겨우 12%정도 밖에 감소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 기간 주가의 움직임은 어땠을까요? 


애플의 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2019년 9월의 주가는 $56, 2022년 9월의 주가는 $138입니다. 실제로 이런 수치들은 회계연도가 끝나고 약 한 두달 이후에 발표되는 것은 편의를 위해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주가는 약 147%상승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EPS의 경우 자사주 매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2.97에서 $6.11으로 105% 상승했습니다.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EPS의 상승과 주가의 상승의 격차가 너무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을 고려하여 조정된 EPS인 $5.37을 계산에 적용하면 동 기간 80% 상승으로 주가 상승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집니다. 결국 정리하면 애플은 자사주 매입 없이는 주당 순이익 상승에 비해 주가의 과도한 상승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가는 EPS와 PER의 곱임을 고려하면 EPS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한 주가는 PER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결국 또 다시 상대적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에 거래가 되는 상태에서조차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ROE와 EPS의 왜곡은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줍니다. 현재 애플의 주가가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ROE와 EPS가 주가와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주가에 영향을 끼쳐왔다면, 이러한 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되는 시점에서의 기업 가치 훼손은 그 규모가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3. 회사 돈으로 자사주 매입 후 내부자는 매도


최근 애플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에서 보여지는 행태인데, 회사의 돈으로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고 내부자들은 본인들의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사주 매입이라는 호재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내부자들은 그렇게 올라간 주가에서 본인들의 보유 주식을 매각한다면 과연 자사주 매입이 투자자들을 위한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의문은 자사주 매입의 이유 그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자사주 매입이 현재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저렴하다는 판단으로 이루어졌다면, 내부자의 꾸준한 매도는 논리적으로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논리적인 결론은 기업은 주가와 내재가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런 점을 내부자들은 본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이용한다는 결론입니다.


애플 역시 이러한 기업 중 하나입니다. 애플은 나스닥이 제공한 데이터에 의하면 지난 3개월 간 내부자 매수 0건, 내부자 매도 17건을 기록했으며 지난 12개월 간으로 확장했을 경우 내부자 매수는 여전히 0건이지만 내부자 매도는 36건입니다. 이 내부자 매도 중 대부분의 계획 판매(automatic sell)이라는 점을 근거로 통상적인 내부자 매도의 부정적 시그널과는 다르다고도 주장할 수 있지만, 애플은 수 년간 자사주 매입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해나갈 것은 천명했기 때문에 계획 판매의 의사결정에도 충분히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정리하자면 애플의 현금은 매년 수백억 달러씩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기업을 이끄는 내부자들은 매년 주식을 팔고만 있다는 것이 명확한 현실입니다. Marketbeat의 자료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2분기 동안(데이터의 기간이 12분기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긴 기간일 수도 있습니다) 단 한 건의 내부자 매수도 없었습니다. 동 기간, 애플은 보유 현금의 무려 2450억 달러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습니다.


마치며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기업의 펀더멘탈에 이어집니다. 자사주 매입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펀더멘탈의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애플이 자사주 매입을 완전히 중단하든 지금의 2배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든, 애플이라는 기업의 비즈니스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판단의 지표인 ROE와 EPS는 왜곡되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금이 사용됨과 동시에 내부자들은 자사주 매입에 발 맞춰 주식을 매수하기는커녕 매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다시 말하자면 자사주 매입과는 관계없이 애플이 위대한 기업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혁신의 상징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애플은 다가오는 미래에도 그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분별한 자사주 매입을 진행한다고하여 애플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주지도 않습니다. 애플의 펀더멘털은 앞으로도 더 좋아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주가는 분명히 더욱 더 올라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자사주 매입 정책은 기업의 위대함과 맞지 않는 옹졸한 행보입니다. 경영진의 가장 큰 책임이 자산 배분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플의 자사주 매입은 끔찍한 자산 배분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Disclaimer: 이 글은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6/17/2023

Value Investor's Sanctum

작가의 이전글 퀄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