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그레이엄, 워렌 버핏 그리고 그 다음
*현재 다른 곳에서 작성했던 글들을 브런치로 옮기는 중에 있습니다. 작성한 글들이 많지는 않지만 하루에 하나씩 옮기려고 합니다. 아래 글은 이전에 작성한 글이며 작성일자는 글의 맺음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치투자는 흔히 이미 정립된 투자 방식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가치투자 역시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해왔습니다. 아담 시슬은 그의 책 'Where the Money Is'에서 가치투자의 변화를 세 가지 단계로 서술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치투자의 변화와 각각의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투자 구루들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다음은 어디인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벤자민 그레이엄
가치투자는 벤자민 그레이엄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가치투자를 대표하는 수 많은 인물들 중 하나임을 넘어서 벤자민 그레이엄은 가치 투자 그 자체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는 쉽게 요약하면 기업이 가진 자산의 가치보다 주가가 낮은 기업을 찾아서 투자하는, 소위 담배꽁초 투자로 알려진 투자입니다. 그의 투자의 위대함은 가치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도입함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주식 시장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사실상 도박장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벤자민 그레이엄은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기업의 '실제 가치'에 대한 정량적 분석을 통해 성공적인 투자를 이뤄내고자 했습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은 너무나도 그 영향이 컸기에 많은 사람들이 가치 투자에 대해 흔히 가지는 생각들 역시 그의 방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가치투자는 밸류에이션 지표가 낮은, 소위 저 PER주, 저 PBR주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과 일치합니다. 투자는 기업의 일부분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개념 역시 벤자민 그레이엄에게서 비롯됐습니다. 물론 벤자민 그레이엄이 말하는 '소유'와 현재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소유'는 그 접근법이 상당히 다르지만(아래에서 더 서술하고자 합니다) 이 개념 자체가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은 현재에도 통할까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는 그의 방식은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다는데 동의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는 개인투자자가 모방하기에는 너무 그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의 밸류에이션을 통한 투자는 물론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의 자산 가치 대비 주가가 낮은 기업을 찾는 것은 그 어느때보다 쉬워졌습니다. 당장 주식 리서치 웹사이트를 통해 PBR이 1보다 낮은 주식을 검색하면 시장에 상장된 주식 중 그 기준에 맞는 주식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식들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합니다. PBR이 1보다 낮은 주식은 대부분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의 미래가 너무나도 어둡다거나 여러가지 외부적인 요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개인투자자들은 이런 어려운 요소들을 전부 연구를 통해 알아내고, 사실은 이 요소들이 잘못 반영됐으며, 해당 주식들이 저평가 된 것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합니다. 이 과정은 당연하게도 결코 쉽지 않으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쏟아서 연구하고도 주가가 낮을 이유가 있다라는 결론에 수 없이 도달하는 것을 감수해야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정말 열심히 연구하여 실제로는 저평가 된 기업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의 주가가 도대체 언제 자산 가치에 다시 수렴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바로 여기서 벤자민 그레이엄과 개인 투자자의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본인의 투자 지분을 통해서 말그대로 기업을 '소유'하는 것과 같이 그 소유권을 행사했습니다. 변호사들과 함께 주주총회에 참석하였고 기업운영진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주가를 자산 가치에 맞게 끌어올리기 위해 자산 매각, 기업 구조 개편 등을 적극적으로 실행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도 결국은 이런 힘을 행사하기는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결국 개인 투자자들은 기약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저평가된 기업이 있는데 아무도 사지 않는다고 억울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어쨌든 이런 기다림을 어떻게든 감내하였고 그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 보상이 충분한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PBR이 0.8인 주식이 실제 자산 가치와 같게 PBR이 1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투자하고, 또 실제로 PBR이 1이 될때까지 성공적으로 기다렸다면 기대 수익률은 25%입니다. 정말 일이 잘 풀려서 1년 동안 25%의 수익을 얻었다면 좋습니다. 꽤나 성공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2년을 기다렸다면 어떨까요? 연 수익률은 11.8%입니다. 여전히 S&P 500의 평균 수익률보다는 높지만 노력 대비 만족할만한 투자인지는 애매합니다. 3년을 기다렸다면 어떨까요? 연 수익률은 7.7%로 S&P 500의 평균 수익률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개인투자자의 분석이 옳았다는 가정하의 수익률이라는 것 역시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실수가 있었다면 오히려 손실을 기록하게 되며, 현재 단순한 저 PER, 저 PBR주에 대한 투자는 S&P 500대비 연수익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 역시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벤자민 그레이엄이 가장 큰 돈을 번 투자는 보험회사 가이코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그리고 가이코는 그가 생각하는 담배꽁초 투자 방식의 정량적 기준에서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한 회사였습니다.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 벤자민 그레이엄은 그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의 마지막 개정판에서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준에서 벗어난 투자 하나만으로 지난 20년간 수 많은 파트너들과 끝 없는 연구를 통해 얻은 수익을 다 합친 것보다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이 이야기에 어떤 교훈이 있을까? 분명한 건 월 스트리트에서 돈을 벌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그렇게 명백하지 않은 교훈은 운 혹은 엄청나게 기만한 결정 - 우리가 이걸 구분할 수 있을까? - 이 평생의 노력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워렌 버핏
이러한 한계를 그 유명한 워렌 버핏은 가치투자를 변화시킴으로써 뛰어넘습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의 열렬한 팬임과 동시에 그의 애제자였던 워렌 버핏은 초창기에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와 비슷한 개념의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워렌 버핏은 이러한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고 그가 투자 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 역시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을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워렌 버핏의 투자 방식은 찰리 멍거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합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이 '위대한 가격'에 집중했다면 워렌 버핏은 '위대한 기업'으로 가치의 중심을 옮겼습니다.
워렌 버핏의 가장 상징적인 투자로 평가받는 시즈 캔디나 코카 콜라에 대한 투자는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시장에 비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였습니다(다른건 차처하더라도 벤자민 그레이엄이 결코 이 투자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기업'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워렌 버핏은 그 유명한 '해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해자'라는 것은 결국 쉽게 말해 '경쟁적 우위,' 더욱 더 쉽게 말하면 '비법 소스'같은 것으로 워렌 버핏이 그 개념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기업 분석에 있어서 '해자'를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써 고려하게 만든 것은 워렌 버핏입니다. 시즈 캔디나 코카 콜라의 브랜드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범용성 - 워렌 버핏이 투자한 '위대한 기업'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해자가 존재합니다.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는 '가치'의 중점을 가격에서 기업으로 조금 옮겼을 뿐, 가격에 대한 고려 역시 여전히 잊지 않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의 투자는 이제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결국 '위대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아무리 위대한 기업이라고 한들 그 기업의 주가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주장입니다. 워렌 버핏이 어떤 기준으로 '합리적인 가격'을 판단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버크셔 주주총회에서 DCF 모델이 기업의 실제 가치를 계산하기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한 때 말하다가도, 또 다른 주주총회에서는 DCF를 실제로 기업 가치 판단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워렌 버핏의 가격에 대한 판단은 벤자민 그레이엄의 방식처럼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정량적인 주가 판단 기준이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가 개인투자자에게는 맞지 않는 것과 다르게 한 단계 발전한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는 개인투자자에게도 효과적인 투자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저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워렌 버핏의 '위대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투자하는 방식'에는 백번 동의하며 옳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제 투자의 뿌리는 워렌 버핏의 이 방식을 모방함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워렌 버핏과 같이 투자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어야합니다. '위대한 기업'을 찾고 '합리적인 가격'을 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기업'을 찾는 것은 그렇게까지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위대한 기업'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을 논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그 리스트가 달라질 순 있겠지만, 대다수가 동의할만한 '위대한 기업'은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결국 '합리적인 가격'에 대한 판단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기업'이라도 말도 안되는 주가에 살 순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위대한 기업'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마이크로소프트는 2000년대 닷컴 버블 이후 고점 회복에 무려 15년이 걸렸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대한 판단은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DCF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이 모델은 결국 어느정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그 바탕이 됩니다. 실제로 워렌 버핏이 투자한 기업들은 대부분 현금 흐름이 안정적인, 현재 기준에서는 '전통 산업'에 있는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벤자민 그레이엄에게서 본 아이러니를 또 다시 보게 됩니다.
워렌 버핏은 2000년대 닷컴 버블때 기술주들의 주가가 하늘을 모르고 오를 때조차 기술주를 전혀 매수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금은 그의 혜안으로 여겨지지만 당시 투자자들은 워렌 버핏에게 제발 기술주를 좀 사라고 애원할 정도였습니다. 이 때 워렌 버핏은 그 유명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불리한 게임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기술주를 멀리하는 워렌 버핏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다름아닌 애플에 대한 투자입니다. 물론 워렌 버핏은 애플을 기술주로써 보지 않는다고 말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이에 공감을 표하기도 하지만 워렌 버핏이 애플을 기술주로 보지 않는다고 애플이 기술주가 아닌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애플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대표적인 기술주이며 세계의 수 많은 기업들 중에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 중 하나라는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워렌 버핏이 이 기술력을 실제로 이해하고 그가 말하는 '유리한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가 그가 지향하는 투자 방식과는 맞지 않았던 가이코였던 것과 같이 워렌 버핏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 역시 그가 지향하는 투자 방식과는 현저히 다른 애플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바로 여기가 가치투자의 또 다른 변화를 목도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아담 시슬이 가치투자 3.0이라고 칭하는 투자 방식은 기술주에 대한 가치투자입니다. 저는 이 방식을 제 나름대로 이해하여 '성장하는 위대한 기업'에 대한 가치투자로 재해석 하고있습니다. 이 단계의 가치투자는 벤자민 그레이엄이나 워렌 버핏과 같이 상징적인 인물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아담 시슬이 될 수도, 테리 스미스가 될 수도, 가이 스피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치투자 3.0이라는 말은 아담 시슬이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하지만 이와 비슷한 개념의 투자를 하는 유명한 투자자들은 꽤나 여럿이 있고, 누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아담 시슬이 말하는 가치투자 3.0이 새로운 가치투자의 길이 된다면 가치투자에서의 가치는 또 다시 가격보다 기업으로 한 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이 기업보다는 가격에서 가치를 찾고, 워렌 버핏이 그 무게추를 기업 쪽에 더 가깝게 옮겼다면, 변화하는 가치투자는 그 무게추를 더욱 더 기업 쪽으로 옮깁니다. '적정 가격'에 대한 정량적인 기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기업의 내재 가치를 현금흐름 또는 다양한 모델링을 통해 계산하는 방식과 다르게 '최소한으로 기대하는' 최저 이율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변화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큰 변화의 흐름인지 혹은 지금까지 시장에 존재했던 수 많은 일시적인 변화들 중 하나일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치투자에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가치투자가 그 어떤 투자방식보다 논리적이라 점이고, 이 변화하는 가치투자는 제가 가장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는 방식이기에 워렌 버핏 그 다음의 가치투자를 저 역시 투자의 중심으로 삼고있습니다.
변화된 가치투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부터 글이 조금 모호해지고 읽기 어려워졌다고 느끼신다면 틀리시지 않았습니다. 벤자민 그레이엄과 워렌 버핏의 가치 투자는 이 투자 구루들이 집적 증명하였으며 수 많은 훌륭한 예시들이 있지만 그 다음의 가치투자는 아직 검증해나가는 영역이기에 명확한 논지와 예시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국 이 글은 가치투자의 시작과 변화, 그리고 그 다음 변화의 가능성, 그리고 제 지극히 개인적인 접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치투자는 흔히 생각하는 오래된, 그리고 이미 정립됐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여전히 변화해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늘 그 때까지의 가치투자를 대표하는 구루들의 투자에서 아이러니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이코에서 본 아이러니를 워렌 버핏의 애플에 투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변화의 시발점일까요? 가치투자자로써 긴 호흡으로 이 길을 함께해보고자 합니다.
4/10/2023
Value Investor's Sanc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