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기에서 보는 희망
오늘 로지텍은 2023년 4분기 및 1년 누적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매출이 전년 대비 17% 하락했습니다.
GAAP 기준 영업 이익이 전년 대비 41% 하락했습니다.
GAAP 기준 EPS가 전년 대비 41% 하락했습니다.
로지텍은 다음 반기에 매출이 다시 18-22%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크게 어려울 것 없이 최악의 결과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전년 대비 매출이 17% 하락한 것으로 부족해서 다음 반기에 또 다시 매출이 18-22% 하락한다면 1년 반만에 매출이 40% 이상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 숫자를 봤을 때는 도저히 투자할 수 없는 기업으로 보입니다.
현재 로지텍은 제 투자 포트폴리오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장하는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저의 투자 기준과는 어딜봐도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합리적인 가격은 둘째치더라도 매출이 40% 이상 하락할 수 있는 기업은 성장과는 거리가 멀고 이런 성적을 보여주는 기업이 어떻게 훌륭한 기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지난 1년 간의 성적표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로지텍을 매도할 예정이 없으며 오히려 지속적으로 매수할 예정입니다. 이 글에서 그 이유를 전부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점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최악의 시기와 최고의 재무상태
로지텍이라는 기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위에서 서술한 최악의 결과는 사실과 과장이 어느정도 섞여있습니다. 수치적으로 최악의 결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결과는 어느정도 예상이 된 결과였고 실제로 로지텍의 매출 하락은 운영진의 예상치 범주 내에 있었고 오히려 월가의 예측보다 매출과 EPS모두 높았습니다. 로지텍의 산업인 컴퓨터 주변기기 산업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판데믹을 거치며 대표적인 수혜주로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지만 판데믹이 끝나고 오히려 재고의 증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재료 가격의 상승은 기업의 운영에 큰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로지텍 역시 이 큰 흐름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작년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올해 그 매출은 상당 부분 유지되지 못했으며 최근까지 재고와 비용관리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어려움을 같은 산업에 있는 모든 기업들이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경기 침체의 기로에 놓인 지금 최악의 시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상하기도 쉽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이러한 거시경제적인 예측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로지텍이 이런 시기를 견뎌낼 힘이 있는가 입니다. 로지텍의 현금 자산은 1년 전에 비하여 소폭 감소했지만 부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금리가 오르며 부채를 운용하는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로지텍은 갚아야할 돈이 전혀 없는 건강한 재무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건강한 재무상태를 바탕으로 지난 1년 간 $557M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며 떨어진 주가에 대해 일정 부분 주주 환원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현재가 컴퓨터 주변기기 산업에 있어서 최악에 근접한 시기임은 명확해 보입니다. 이러한 시기를 견뎌내는 기업은 오히려 이전보다 강점을 지닐 수 있습니다. 살아남기에만 집중해야하는 많은 기업들과 다르게 로지텍은 장기적인 목표를 바탕으로 여전히 훌륭한 사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최악의 시기는 언젠간 지나갈 것이 분명하고 다른 기업은 몰라도 로지텍이 살아남을 것 역시 분명합니다. 즉, 로지텍은 예측 가능한 '성장하는 기업'입니다.
견고한 해자의 증명
해자의 수치화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방법론이 있겠지만 가장 직관적인 것은 매출 총이익 마진(Gross Profit Margin)일 것입니다. 이 수치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닌 상대적인 수치로 봤을 때 가장 의미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로지텍의 매출 총이익 마진과 퀄컴의 매출 총이익 마진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당연하게도 퀄컴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퀄컴이 로지텍보다 깊은 해자를 보유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로지텍이 같은 산업에 있는 기업들에 비해 높은 마진을 기록할 수 있다면, 다른 기업들에 비해 깊은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제품의 차이가 나지 않는 컴퓨터 주변기기 산업에서 경쟁 기업보다 높은 마진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이 기업에 더 많은 돈을 쓰고자한다는 것의 방증입니다. 애플의 핸드셋 산업에서의 압도적인 마진율이 좋은 예입니다.
*Dell과 HP는 주변기기 이외의 매출이 있기 때문에 주변기기 부분 매출과 원가를 바탕으로 재계산했습니다. 반면에 R&D 비율은 주변기기에 한정된 R&D 지출을 따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총 매출을 사용하여 재계산 했습니다.
위 표를 보면 로지텍은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인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20% 초반의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로지텍은 경쟁사에 비해 무려 75%가 높은 마진율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경쟁사인 터틀비치가 전년도에 31%의 마진율을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터틀 비치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과정에서 마진율이 1/3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높은 로지텍과 커세어 역시 마진율이 하락했지만 로지텍의 상대적 해자가 깊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로지텍은 마진을 가장 많이 남기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보다 많은 비용을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커세어, 델, HP가 매출의 5%가 안되는 비용을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여 로지텍은 무려 매출의 10% 이상을 미래를 위해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격적인 재투자는 로지텍이 다른 회사보다 마진율이 높다는 점에서 가능해집니다. 즉, 로지텍은 이 산업에서 유일하게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이미 만들어냈습니다. 높은 마진율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회사의 미래에 재투자하고, 이 재투자를 바탕으로 높은 마진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회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높은 마진율을 이루어내더라도 기업의 외부적인 수치를 위해 재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은 기업이 많습니다. 재투자는 전적으로 기업의 선택임을 고려하면, 로지텍은 훌륭한 사업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로지텍의 매출이 대폭 감소하더라도 이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시점에서 저에겐 충분히 '훌륭한 기업' 입니다.
'성장하는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수한다'
이 투자 기준에서 생략된 부분은 이 문장 앞에 '장기적으로' 라는 단어가 내포돼있다는 점입니다. 끝없는 성장을 무한하게 이뤄낼 수 있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성장하는 회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성장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저의 기업 분석에 의하면 로지텍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훌륭한 기업'이라는 기준에 부합한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기준의 두 번째 부분인 '합리적인 가격'이 갖춰지기만 한다면 제가 로지텍을 매수하는 것은 처참한 오늘의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가격'의 조건을 현재 로지텍은 별로 어렵지 않게 충족합니다. 최악의 시장과 최악의 성적표는 자연스럽게 주가의 하락을 초래합니다. 이는 다른 투자자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보유 기간을 고려하는 투자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최악의 시기가 언제 끝날지는 저 역시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는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로지텍에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형성된 주가는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서 '매력적'인 단계에 가까웠습니다. 오히려 최악의 성적표를 발표한 오늘 주가가 거의 4% 올라버려서 이번 주만 주가가 12% 오르며 '합리적'인 쪽으로 조금 더 추가 움직이긴 했습니다. 최악의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상승한 것은 로지텍의 매출이 거의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예측 때문일까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투자자들의 생각이 바뀐다면 주가는 하락할 것입니다.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정말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입니다.
제가 현재 보유 중인 8개의 기업 중 6개의 기업은 '성장하는 훌륭한 기업'의 카테고리에 들어가고 나머지 2개의 기업은 '자산 대비 저평가된 합리적인 가능성을 가진 기업'의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아직 다루지 않았지만 곧 다룰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로지텍은 '성장하는 훌륭한 기업' 카테고리의 6개 기업 중 하나의 기업이 될 자격이 충분한 기업으로 판단합니다.
Disclaimer: 이 글은 매수/매도 추천이 아니며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5/2/2023
Value Investor's Sanc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