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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텀 Jul 05. 2023

해자에 대한 생각 1

해자의 판단기준

시작하며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로써 해자에 대한 생각은 저의 투자 역사와 늘 함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해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고 싶고 한 번의 글로 모든 이야기를 다 하고 싶지도, 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연속적으로 쓰지는 않더라도 해자에 대한 생각은 여러 글에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해자에 대한 수 많은 생각들 중 가장 첫 번째 생각, 해자를 판단하는 근본적인 기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해자


해자라는 개념은 가치투자를 넘어서 투자 그 자체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습니다. 1995년에 워렌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총회에서 처음 얘기한 해자라는 개념은 순식간에 투자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워렌 버핏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넓고 지속 가능한 해자를 가진 기업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회사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경쟁 우위'를 가진 회사를 찾아내어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경쟁 우위의 개념을 워렌 버핏이 도입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투자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음을 밝히며 전 세계인의 투자 방식에 막대한 파급력을 행사한 그 시점이 지금부터 무려 30년 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워렌 버핏의 성공적인 투자 역사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해자라는 개념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전파된 것은 그 개념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회사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경쟁 우위를 가진 회사에 투자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할 투자자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위대한 기업에는 늘 넓고 지속 가능한 해자가 존재하며 이런 기업들을 찾는 노력은 이제 가치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기업에 집중하는 다양한 투자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속하는 노력이 됐습니다.


하지만 해자라는 것은 개념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면서도 정작 해자를 가진 회사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처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회사가 넓고 지속가능한 해자를 가졌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저 역시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해왔고 제가 내린 결론은 진정한 해자는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 조차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특정 회사의 사업을 봤을 때 넓고 지속가능한 해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즉시 이해되고 공감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적어도 저에게는, 해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해자에 대한 판단


해자의 부재에 대한 판단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이 회사에는 해자가 없다.  

    이 회사에는 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의 해당 산업/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해자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첫 번째 원인에 대한 결과는 명쾌합니다. 이 회사에 해자가 없다면 - 적어도 해자를 투자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 투자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원인은 조금은 불쾌합니다. 이 회사에 해자가 없다고 느낀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면 결국은 그 부족함으로 인해 해자를 지닌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놓치는게 아닐까요? 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네, 당신은 당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이 훌륭한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두 번째 원인 역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이 회사에 해자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결과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내가 그 유무를 판단할 수 없는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 이해하지 못하는 해자에 투자를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투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워렌 버핏은 투자는 스트라이크가 없는 야구와 같다고 했습니다. 내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해자가 있는 훌륭한 기업들은 치기 좋은 공일 수는 있지만 저라는 타자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공일 수 있습니다. 가장 치기 좋아하는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해도 아웃 당하지 않고 계속 피치 위에 서 있을 수 있는데 적당히 좋은 공에 배트를 휘둘러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훌륭한 투자 기회는 생각보다 많고 투자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기회는 더욱 더 많아집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할 수 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계속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는 수 많은 과정들의 확률론적 결과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단순한 결과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해자에 집중한다는 그 훌륭한 과정들을 쌓아가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은 첫 번째 원인이나 두 번째 원인이나 투자를 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자가 없는 기업에도 투자할 이유가 없고 해자가 있을수도 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도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업 분석에 있어서 명료하게 그 해자가 와닿는 기업이 아니라면 모두가 훌륭한 해자가 있는 훌륭한 기업이라고 말하더라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저는 애플의 해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합니다. 이런 발언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실망하여 떠나게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애플의 '브랜드'와 '기술력'이라는 해자는 대다수의 투자자가 인정하고 워렌 버핏 역시 그의 포트폴리오의 40%를 애플에 할애할 정도로 인정하지만 저라는 개인투자자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저는 애플의 브랜드에 전혀 혹하지 않으며 애플의 기술력이 삼성의 기술력에 비해 어떤점에서 그리 뛰어난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해자는 저에게는 해자가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저의 주변에는 모든 제품을 애플에서만 구매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애플의 해자는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분명히 말하고 싶지만 애플의 해자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경쟁사들에 비해 높은 마진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해자에 제가 공감하지 못한기 때문에 저는 애플에 투자하지 않음에 있어서 전혀 아쉬움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해자에 대한 판단은 흑과 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명백하게 해자가 있다 혹은 없다라고 느끼는 기업이 있는 반면에 애매모호한 기업들 역시 있습니다. 그런 기업들은 '대기명단'에 들어갑니다. 급하게 이 기업들에 대해 더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한 이해는 잘못된 확신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대기명단'에 들어간 기업들은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 다시금 바라보게 됩니다. 다시 바라보았을 때 저의 관점이나 시대적인 부분에 변화가 있어 해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면 그 기업에 대해 더 깊게 공부할 수 있고, 그 때도 역시 잘 모르겠다면 다시 '대기명단'으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방식의 반복을 통해 내가 자신있게 이 기업의 해자에 대해서 어린 아이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기업들만 고르고자 노력합니다.


마치며


결국 저에게 해자라는 것은 이 회사에 해자가 있는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해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우위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기업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해자를 가진 기업이 그렇게 쉽게 찾아진다면 투자가 어려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이 기준이 너무 빡빡함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가치투자자들이 다수 공감할 내용이지만 너무 좋은 주식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찾게된다면 나의 방법론이 어딘가 잘못돼있는게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게 됩니다.


해자라는 것은 명료하면서도 어렵지만 명쾌해야만 하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해자로 느껴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해자로 느껴지지 않으며, 이러한 점에서 투자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훌륭한 해자가 있다고 느낀 다면 그 기업의 주가는 늘 높게 형성돼있을 것이며 신규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부분의 해자를 기준으로 한 성공적인 투자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해자라고 느끼지 못하는 해자를 개인의 통찰력으로 먼저 파악하고, 추후에 모두가 그 해자를 인정하게 됨으로써 완성된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합니다(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던 해자가 실제로 해자였다면,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해자가 진정한 해자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을 통한 해자에 대한 판단이 저에게는 가장 실용적이며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4/17/2023

Value Investor's Sanc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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