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언어의 세계
어제 저녁 퐁퐁으로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세제 이름이 어떻게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말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방식과 조직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최근 조직 내 신조어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조직문화를 헤치는 것을 우려해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을 의뢰받았다. 그 중 나온 단어가 바로 ‘퐁퐁남’, ‘퐁퐁녀’와 같은 신조어였다.
말이 곧 사고이고, 사고가 곧 문명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말이 곧 사고이고, 사고가 곧 문명이다." 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 예속되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절대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가? 그 이유는 놀랍게도 그들의 언어에 '말 더듬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중요한 발표 직전 "말 더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음... 그러니까..." 같은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경험 있지 않은가? 머릿속에 떠올린 단어가 현실이 되는 이 기묘한 현상이야말로 언어가 우리의 현실을 만든다는 증거가 아닐까?
또 시카고의 한 대학교에서는 실패나 낙제 대신 '아직(Not Yet)'이라는 이름의 학점을 부여한다고 한다. 우리 대학 시절에도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나는 "졸업을 '아직' 못 했다"는 표현으로 부모님께 4년 넘게 대학을 다닌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단어 하나의 변화가 학생들의 마인드셋 자체를 바꿀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형성한다. 만약 '야근'이라는 단어가 없는 회사가 있다면, 그곳의 직원들은 매일 저녁 정시에 퇴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퐁퐁남', '퐁퐁녀'라는 표현은 우리 직장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내가 참관한 한 회의 장면이 떠오른다. 신규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에서 새로 영입된 박 주임이 회의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커피를 권하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의 직원이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새로 온 주임 완전 퐁퐁녀네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졌다. 박주임은 그저 자신의 성실함과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었을 뿐인데, 그 행동이 '호감을 사기 위한 과도한 행동'으로 해석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친절함과 성실함이 '퐁퐁'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로 표현되어야 할까? 이런 표현이 반복되면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까?
이런 상황이 바로 '마이크로어그레션'의 예다.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란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특정 그룹(성별, 인종, 나이 등)에 상처를 주는 경우를 말한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이런 작은 상처들이 쌓이면 꽤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줬다. 마치 모기 한 마리는 별거 아니지만, 매일 밤 수십 마리에게 물린다면 결국 잠을 못 이루는 것과 같다. 직장에서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점점 "내가 이 팀에 정말 속해 있는 걸까?", "내 진짜 능력을 인정받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고, 결국 업무 성과까지 떨어진다.
'퐁퐁남', '퐁퐁녀'라는 표현은 얼핏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 문제점이 중첩되어 있다. 우선 동일한 행동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이중 잣대가 작용한다. 여성이 커피를 타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남성이 같은 행동을 하면 '퐁퐁남'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표현은 친절함과 배려 같은 긍정적 가치를 '목적성 있는 행동'으로 해석하게 만들어 행동의 진정성까지 폄하한다. 게다가 사람을 '세제'에 비유함으로써 인간의 가치를 도구적으로 평가하는 측면도 있다. 마지막으로 '남'과 '녀'로 구분 짓는 방식은 성별에 따른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굳히게 된다.
언어는 이런 포용적 문화의 기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면,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뀌고, 결국 조직 문화가 변화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형성된 언어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일까?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작은 변화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더 포용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성중립적 언어로의 전환이다. '여사원' 대신 '직원', '여대생' 대신 '대학생', '여의사' 대신 '의사', '남자답게/여자답게' 대신 '자신답게', '맨투맨 회의' 대신 '일대일 회의'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성별에 따른 구분과 편견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조직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언어 습관을 점검하는 것이다.
하루 동안 자신이 사용하는 성별화된 표현들을 기록해보면 의외로 많은 표현들이 무의식중에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은 자주 사용하는 성별화된 표현에 대한 대안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언어적 '근육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과 같아서, 반복을 통해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팀 차원에서는 '언어 모니터링' 세션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정기적인 팀 미팅에서 5-10분 정도 언어 사용에 대해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함으로써,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신조어의 사용도 좋지만 미세한 차별을 만들어 내는 단어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이 과정에서 팀원들이 함께 포용적 언어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긍정적 경험을 공유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는 리더십 모델링이 핵심이다.
조직 문화는 리더의 언어와 행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리더들이 먼저 포용적 언어를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가 변하면 조직이 변한다는 것은 많은 연구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문화를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언어의 힘을 간과하고 있을까? 아마도 언어가 너무 일상적이어서 그 영향력을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속의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도 언어라는 매체 속에 너무 깊이 잠겨 있어 그 영향력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이 곧 사고이고, 사고가 곧 문명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이 말은 우리에게 언어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임을 일깨워준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통해 어떤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매일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