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보고서에 갇힌 DEI

점수는 나왔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걸까

by 밸류비스 박혜형

한 통의 메일이 왔다.


DEIB 교육을 마친 A기관 담당자였다. 지난 교육시 진행했던 다양성과 포용성 지수 진단 결과 수치를 성과보고서에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부탁을 덧붙였다.


"타기관 평균보다 저희 기관 점수가 높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비교 데이터가 있으신가요?"


나는 잠시 멈췄다.


요청 자체는 너무나 합리적이다. 예산을 써서 교육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조직에 설명해야 하는 담당자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다. 하지만 이 짧은 메일 안에 한국 DEIB 교육이 가진 구조적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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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교육을 시작하기 전 가능한 교육 전 교육생을 대상으로 사전설문을 하고 교육생들이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춘 교육을 하는 편이다.

이유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영역은 너무나도 방대한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 조직에서 처해 있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수준 또한 매우 상이하기 때문이다. 조직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성의 특성이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전 설문이 진행되지 않을 시 보편적으로 한국 조직 내의 다양성은 주로 성별다양성과 세대다양성에 대한 것이 조금 포커스 맞춰 진다.


이런 사전 설문을 하면서 고객사의 선택에 따라 다양성과 포용성 수준을 알기 위한 진단을 실시한다.

그런데 이 진단 결과 수치를 가지고 담당자가 대하는 태도는 매우 다양하다.


이번의 문의를 준 A기관 담당자의 경우는 진행한 DEIB 교육 진행을 성과에 넣고 싶었던 것이다.




진단 도구는 원래 무엇을 위한 것인가?


현재 조직이 어느 수준인지를 파악해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방향을 찾기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진단은 처방의 시작점이지, 성과의 종착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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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많은 조직에서 이 수치는 곧바로 성과의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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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클에서 3.8점은 "우리가 DEIB를 잘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건강검진에 비유하자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보다 낮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완전히 건강합니다"라고 보고서에 쓰는 것과 같다.

현재 상태의 스냅샷을 도착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한국의 조직은 측정 가능한 성과 보고에 극도로 민감하다. 예산이 투입된 모든 활동은 수치로 환원되어야 하고, 그 수치는 비교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이것은 HR담당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그런데 DEIB는 본질적으로 수치화에 저항하는 영역이다.


구성원이 진짜로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는지, 다양한 배경의 목소리가 의사결정 과정에 실제로 반영되는지, 리더가 자신의 편견을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고 있는지. 이것들은 3.8라는 숫자로 온전히 포착 되지 않는다.


결국 진단 도구는 조직이 원하는 수치를 생산해주는 도구가 되고, DEIB 교육은 그 수치를 정당화하는 연례 이벤트로 축소된다.


※ 사실 나는 이 담당자에게 교육에 실시했던 다양성과 포용성 수준 진단 수치에 대해 "좋다. 나쁘다", "다른 조직에 비해 높다, 낮다"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전화 통화로 긴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메일을 받고 나서 나는 한동안 스스로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 구조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교 데이터를 요청받았을 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으로 응답을 마무리한다면, 컨설턴트 역시 그 사이클의 공모자가 된다. 조직이 원하는 숫자를 건네주고, 보고서를 완성하게 돕고, 다음 해에 또 같은 교육을 제안하는 것. 이것이 과연 변화를 만드는 일인가.


진짜 솔루션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3.9점이 "우리가 잘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4.5 이상의 내재화 단계로 가기 위한 현재 좌표"라고 이야기하는 것.

타기업과의 비교가 아닌, 작년 대비 우리 조직의 변화 궤적을 추적하는 것.

그리고 숫자 뒤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

리더들이 어떤 언어를 쓰기 시작했는가.

어떤 회의 방식이 달라졌는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구성원은 누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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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적 변화의 이야기가 수치와 함께 제시될 때, DEIB 보고서는 단순한 숫자 나열이 아닌 조직 변화의 기록이 된다.




3.9점은 좋은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 점수가 보고서의 마지막 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용적 조직문화는 한 번의 교육과 한 줄의 수치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질문의 축적이다.

우리는 정말 달라지고 있는가?


라는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 질문을 함께 붙들어줄 파트너가 있는가.

이것이 DEIB가 이벤트가 아닌 문화로 자리 잡는 유일한 경로라 생각한다.


문의 준 담당자에게 감사하다.

이런 메일을 받지 않았다면, 밸류비스가 진행하고 있는 한국형 DEIB 교육과정에 대해, 교육 과정 후 담당자들에게 포용적 문화 확산을 위해 어떻게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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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IB 교육 효과 측정이나 포용적 리더십 교육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이나 메시지로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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