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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n 24. 2020

뻔한 시간여행을 뛰어넘는 갓 명작 <카페 벨 에포크>

웰메이드 시간 재현 영화, 로맨틱 코미디 그 이상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언제고 왜 돌아가고 싶으며 가서 뭘 하고 싶은가."


대략 이런 뉘앙스의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이 꿈꾸는 시절은 언제인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만 앞자리가 3이 되고나서부터는 부쩍 생각이 많아졌으며(아니다 원래 나는 생각이 많은 인간이었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생겼다. '라테 이즈 홀스'를 연발하는 이들이 20대인 내게 했던 말들이 어느 순간 이해가 가는 순간이 생겼으며 어찌 보면 나도 지금의 20대가 보기에는 꼰대 기질이 있는 'Z세대' 끝물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시중의 유행하는 꼰대 테스트를 해 보면 나는 다행히도 꼰대 1단계라서 꼰대는 아니며 사회생활 짬밥이 꽤 찬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여전히 나는 탈꼰대를 부르짖는 젊은이다. 나이 앞자리에 숫자 3이 생기고 나서는 진지하고 차분하게 살겠다는 나의 선언에 친구 가라사대, 할머니가 되어도 너는 여전히 발랄 깨방정을 떨 것이며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늘어놓을 것이란다. 가끔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절이 언젠지는 비밀이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꿔보고 싶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깨달음이 온 순간,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나와 같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가진 이에게 영화 <카페 벨 에포크>는 힐링 영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포스터가 너무 예뻐서 시놉 하나 보지 않고 극장으로 홀리듯 들어가서 봤다. 프랑스 영화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퐁네프의 연인들' '아멜리에'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어떤 만남 ' 등의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 나는 왠지 달콤한 영화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서 극장에 들어섰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고 있는 타임슬립 영화가 아니다. 한때 우리나라 콘텐츠 업계에서도 타임슬립 열풍이 불어서 타임슬립 물이 즐비했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타임슬립을 기깔나게 잘 다룬 한국 드라마는 '나인'이라고 생각하며 미드 시리즈물 중에 '타임리스'가 짜임새 있는 유익한 교양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극 중 주인공 빅토르에게 시간여행 초대장이 주어졌을 때 '뜨아 또 타임슬립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극이 현실의 과거 재현 세트장으로 옮겨져서 위트 있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었으며 피식하고 웃기도 했다. 잘 나가는 신문 삽화를 그렸던 주인공 빅토르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는 10년째 돈 못 버는 남편으로 전전하다가 VR 기기를 사용하며 지금으로 따지자면 마블 영화에 열광하는 아내로부터 구식이라는 소리를 듣다가 마침내 쫓겨나는 인생 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때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로부터 시간여행 초대장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74년 첫사랑을 처음 만났던 어느 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가 이쯤 진행되었을 무렵, '또 첫사랑 이야기야?'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전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내로부터 타박을 받으며 쫓겨났던 그는 자신의 첫사랑인 아내와 가장 찬란하게 사랑했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빅토르가 그려놓았던 그림들을 토대로 세트장은 1974년과 흡사한 모습으로 그려지며 아내 역을 맡은 마고는 그때 빅토르가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재현하게 된다. 물론 100% 똑같지 않으며(그래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착한 빅토르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대사를 알려 준다.)  성깔 있는 마고는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총괄감독이자 옛 애인인 앙투안의 지적질에 급기야는 인이어를 빼 버리고는 짓밟아 버린다. 그녀가 막판에 화나서 앙투안의 차 유리창을 깨버리는 것을 보며 대단한 성깔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추태를 부려도 그녀와 키스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앙투안을 보며 애증의 감정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성을 뛰어넘는 감성을 주체할 수 없어 행동으로 옮기는 그들의 사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앙투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앙투안을 해고한 편집장과 바람난 아내 마리안느는 바람난 그와 동거하다가 그의 코골이 등 사소한 습관에 다시 싫증이 나게 되며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고는 과거를 재현한 세트장에서 남편과의 첫 만남을 재현하게 된다. 해피엔딩이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이유는 그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데 이 영화는 그 궁금증을 120% 만족시키는 영화다. 아내 마리안느가 바람났다가도 남편 빅토르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정도로 빅토르라는 남자는 선량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순박함을 잃지 않은 이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앙투안이 왜 애증의 여자 친구 마고에게 '너 빅토르랑 잤지?'를 의심하며 추궁하는지 그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빅토르 할아버지가 매력적이란 말이다. 재현 배우로 일해온 마고 역시 빅토르 할아버지가 매력적이어서 재현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부분에서 열과 성을 다해 연기를 하다가 아기 엄마 역을 못하겠다고 하다가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마음씨 착하고 따뜻한 할아버지가 현실을 깨닫고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설렘'이라는 감정은 하루가 지옥 같았던 할아버지의 표정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심폐소생술 급으로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만들며 이 모습이 영화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독특한 시간 재현 세트에서 거금을 들여가며 보낸 시간 덕분에 아내와 자신의 관계,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빅토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는 젊은 재현 배우 마고한테 설렘을 느꼈지만 그 설렘을 통해 권태에 빠졌던 관계를 고찰하고 그 관계가 기적적으로 좋아졌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마고와 사랑에 빠졌으면 영화는 막장드라마가 되었을 것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사연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런 서비스가 보급된다면 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시간여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 '을 보면서  '암흑 속 블라인드 소개팅'  이 서비스로 구현된다면 고객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서비스화되었듯이 머지않아 시간여행서비스도 개발될는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예찬론자는 물론이거니와 로맨스 이야기나 사랑타령이 싫은 이들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은 영화다. 각자에게 돌아가고 싶은 화양연화, 벨 에포크가 있을 수도 있고 권태에 빠진 이들도 있을 것이며 바람났다가 영화를 보고 각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관계' 이야기라고 보는 게 더 나을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은 앙투안이 인이어를 통해 빅토르에게 '나는 당신 덕분에 꿈을 꾸게 되었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키워왔어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잘 컸으니 아버님도 계속 창작하세요.'라고 했던 부분이었다. 종이보다 신문물이 각광받고 연필로 그린 그림보다 디지털화된 것들이 각광받자 일자리를 잃고 백수로 살아가던 이가 자신이 베푼 선의로 어려움을 극복한 이로부터 다시 선의를 전달받고 멋지게 재기하는 이야기라니 정말 따스하지 아니한가. 연륜이 있는 이가 일방적으로 멘토가 되는 관계가 아닌 쌍방향이 인생 멘토가 되는 이런 이야기가 정말 좋지 아니한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다웠던 지난날, 벨 에포크를 되새김질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먼 훗날 벨 에포크로 기억할 수 있는 나날을 경신해 나가길 바란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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