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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l 01. 2021

예민한 건 죄가 아닙니다.

예민한 건 위대한 재능입니다. 재능을 썩히지 마세요.

'넌 너무 예민해.'

'너 예민한 거 알지?'


요즘 서점에는 예민한 이들을 위한 책들이 즐비하며 포털에서는 '당신이 예민한 사람인 이유' 등등에 대한 글들이 랭크됩니다. 그만큼 예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까요? 저는 예민합니다. 자타공인 소머즈로 유명한 저는 남들에 비해 청력이 지나치게 좋습니다.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도 매우 예민한 편이라 변화의 차이를 쉽게 알아차립니다. 청력만큼 아니지만 후각도 매우 좋은 편입니다. 한마디로 오감이 발달했죠.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저는 천생 예술가란 소리도 들었답니다. 얼른 제가 예술가가 되게 해 주세요.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리니' 아시죠. 저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한때 소머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기획안을 쓰기도 했답니다. 봉준호 감독님께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매일 느끼며 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듯이 저는 원거리에서 들리는 소리가 집중만 하면 잘 들리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해리포터기에 소머즈의 입장을 잘 표현할 수 있거든요. 언젠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소머즈의 마음을 표현해 보고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민한 건 흠이 아닙니다. 재능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누구도 지니고 있지 않은 탤런트를 가지고 있는 거죠. 언젠가 이 재능이 좋게 쓰일 수도 있잖아요. 저의 경우는 진짜 제 사람을 가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대학교 학생회장, 과대까지 했던 사람이면 왠지 친한 사람 엄청 많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 말론 자기는 사람을 가린다고 말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조금 재수 없는 말 같지만 자기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이 명백하고 그 기준을 통과해야만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인다고요. 나머지는 그저 지인일 뿐이래요. 기준이라 함은 흔히 말하는 학벌, 경제력, 직업 등등일 것 같죠?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편견 덩어리들은 제발 그놈의 조건, 기준을 물질적인 것에 국한시키지 말길 바랍니다. 자본주의의 노예, 자낳괴라 하더라도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면 모든 것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예의, 태도입니다. '나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느냐'가 척도가 되는 것이죠. 겉으로 이해해주는 척하는 사회생활급의 이해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하죠. 저도 그런 편이에요. 아는 사람과 그냥 친구와 친한 친구와 엄청 친한 친구, 이렇게 네 단계로 구분을 합니다. 엄청 친한 친구는 제 모든 걸 알고 있는 굉장히 입이 무겁고 진지한 친구죠. 저는 맹세코 단 한 번도 그들에 대해 험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죠. 자, 이렇게 예민한 것은 옥석인 사람을 구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주 어릴 때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양희였나. 잘 살고 있니 양희야. 그 친구랑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험담을 하는 걸 우연히 들은 거죠. 물론 제가 못 듣는다고 생각하고 말했겠지만 저는 들었고 굉장히 기분이 나빴죠. 어린 나이에 어떻게 누군가의 험담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겠어요. 일종의 배신감이랄까요. 사실 누구나 그런 일은 겪잖아요. 아니면 모르고 지나치는 거죠. 저는 예민한 청력 덕분인지 사람을 잘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순적이죠. 제 사람의 말은 잘 믿지만 그게 아니면 거의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나치게 솔직해서 가식은 부릴 수 없는 하수더라고요. 진정한 고수는 포커페이스죠. 김이나 작사가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사회생활에서의 가식은 예의라고요. 가식이라함은 싫은 이에게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예의란거죠.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좋게 보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 예의는 필수 아니겠습니까. 영원한 제 편? 그런 거 없습니다. 제 편은 밖에 있어서 괜찮습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1/3 이상을 보내지만 2/3는 회사 밖에서 보내기 때문에 자아를 철저히 분리해야 해요. 안 그러면 1/3이 2/3의 자아정체성을 잠식해버릴 수도 있거든요. 너무 멋있는 말 아닌가요. 사실 제 생각이 아니고 똑순이 찐 친의 생각이에요.



사람을 진정으로 깊이 이해하고 내 일인 양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시간과 깊이를 요하는 일이죠. 우리 예민러들은 공감력이 굉장히 뛰어나잖아요. 누군가를 헤아릴 줄 아는 마음, 상대의 입장이 되어 끄덕일 수 있는 마음 말이에요. 그런 마음은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엄청난 재료라고 소설가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어요. 예민러들, 얼른 펜을 들고, 혹은 컴퓨터를 켜고 글을 써보세요. 당신이 느끼는 감정들 하나하나 켜켜이 쌓아가 봐요. 독립 출판시켜봅시다 우리. 요샌 E-Book도 넘쳐나니까 우리 모두 콘텐츠 메이커가 될 수 있어요. 당신은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에세이스트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요. 저는 입만 살아서 아직 아무것도 해낸 게 없지만 9988 내 인생이란 노래처럼 오래오래 살다 보면 무언가 하나 정도는 써내지 않을까요? 아니면 말고요. 인생 뭐 있나요. 지금도 잘 살고 있잖아요 우리. 궁금한 게 있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는 저는 제 예민함을 탐구하기 위해 책도 많이 찾아보고 유튜브도 많이 봤는데요. 그중 제일 희망적이었던 말이 뭔 줄 아세요? 예민한 건 대단한 재능이란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은 갖고 있지 못한 재능. 이제 우리는 이 재능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쓰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저의 경우 지나치게 청각이 예민해서 각종 험담을 다 들어봤습니다.  사실 멕시코 살이를 할 때는 스페인어가 딸려서 험담을 거의 못 들은 것 같아요. 킥킥. 아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네덜란드인이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도 못 잤다면서 동양인 여자애들 침대에서 들렸다고 저 여자애들 뺀데호 라고 스페인 남자애한테 중얼거리는거에요. 스페인어 배우면서 욕부터 먼저 배운 저는 '병신' 이란 그 소릴 듣고 반문했죠. "뺀데호오??" 그러자 스페인 남자애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저는 그 다음 제가 아는 스페인어욕을 장난스레 내뱉었죠. 아시아 여자애가 에스빠뇰을 알 거라고 생각 못했나봐요. 이래서 섣불리 탈한국을 못하겠어요. 지옥같은 한국이 싫지만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는 게 진리거든요. 어쨌든 저는 "께 빠드레!" 라는 멕시코에서 흔히 쓰이는 감탄사를 내뱉은 후,  "칭가" 로 시작하는 굉장히 심한 욕을 내뱉었더니 저 여자애 스페인어 좀 아네 하며 빙긋 웃어줬어요. 그러더니 제게 주먹인사를 하더라고요. 부엔 비아헤. 하며 씩 웃고 우린 아디오스 했답니다. 스페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디테일한 험담까지 알아듣는 그날이 오기를. 그리고 청각 예민러, 소머즈인 제 얘기가 괴로워하는 당신,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주세요. 예민러인 저는 고백건대 세상에서 제가 제일 좋습니다. 떼끼에로가 아니라 메끼에로. 어디선가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당신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당신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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