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편의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싼 아메리카노 두 잔을 또 마셨다. 왜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셨냐고? 이유는 없다. 그냥 커피가 당겨서 마셨다. 나는 그렇게 고급 입맛이 아니라서 에티오피아산을 마셔도 산미를 못 느끼고 콜롬비아산을 마셔도 별다른 맛을 못 느낀다. 그냥 같은 커피지 그렇지 않나. 아님 말고.
시큰둥한 내가 가끔 격렬하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좋은 노래를 발견하거나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영화를 보거나. 영화 안 본 지 진짜 오래되었다. 4명이서 하는 넷플릭스여서 망정이지 그거 아니었다면 매달 만원 넘게 돈을 내는 호갱이 되었을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내 취미이자 특기가 넷플릭스였는데 지금은 더 산만해져서 조금만 재미없으면 자꾸 스킵 버튼을 누르게 된다. 텔레비전 안 본 지는 오조오억 년 전인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주로 신문을 통해 접하는 편인데 신문을 봐도 세상은 요지경이란 생각밖에 안 든다. 나름 정외과 복전생인 나는 원래 사회문제의식이 엄청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특정 주간지 두 개나 구독하고 투표권 행사에 있어서도 투철한 내 의견에 부합한 정당을 찍곤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저 그런 소시민이지 뭐. 누가 나보고 너는 시민단체에 들어가서 운동했어야 했다고 하던데 글쎄, 나 그렇게 전투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소심한 면도 많아서 운동이 나랑 맞았을까. 의외로 이과형 인간이어서 답이 뚜렷한 걸 좋아하는 걸 선호해서 답이 보이지 않는 운동은 나랑 맞지 않는 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사회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는 편이라 누가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면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요즘 나는 성향 바꾸기 운동을 하고 있다.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편향된 취향을 조금 더 넓게 바꿔보고자 하는 나 혼자만의 운동이랄까. 픽션 위주의 것들 말고 다큐멘터리 같은 거. 이를 테면 '나의 문어 선생님'이나 '러브 온 스펙트럼' 같은 말랑말랑한 다큐를 하나 둘 보려고 한다. 쓸데없는 갬성만 가득한 뇌만 발달한 것 같아서 이성적인 뇌근육을 기르고자 노력한달까.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일은 죽어도 안 하는데 그래도 내 의지로 나는 지금 스스로를 바꿔보고자 한다. 불과 6개월 전, 트럼프형 인간을 모티프로 어떤 소설을 쓸 때 정치부 기자 언니가 트럼프 다큐멘터리 추천해줬는데 나는 결국 그것도 5분 보다가 못 보겠다 꾀꼬리 하며 포기했다. 정치 성향이 나랑 다른 그 언니는 트럼프 인생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며 넓은 시야를 가지라고 했는데 결국 그 관점을 가지지도 못 하다가 소설까지 망했다. 나는 내가 아는 것만 알아서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생기고 호감이 생긴다. 여기서 말하는 호감은 이성적 호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호감을 말한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 얕게 아는 거 말고 조곤조곤 깊이 있게 아는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는 이번 생엔 글렀다. 그래도 5% 정도는 내 노력으로 5년 안이면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커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분신과도 같은 내 친구가 내가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바보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고 응수했다. 맞아. 난 그렇게 똑똑하진 않아. 똑똑하고 똑 부러지게 살아가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하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너처럼 살지 않는 것이라고 디스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결혼 중매를 서 주겠다고 했다. 푸하하하하. 너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남편이라는 상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포복절도했다. 그 얘길 요새 한두 명한테 들은 게 아니거든. 왜 이렇게 다들 나를 결혼 못 시켜서 안달일까. 결혼 생각은 제로인 나를 주변에서 결혼시켜주겠다고 하니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나 빼고 다들 똑 부러진 것 같다. 나만 애매하고 허술한 것 같다. 절대로 자기 비하는 아니다. 사실이니깐.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가끔씩, 아니 지금도 편의점 커피를 당겨하는지. 꼭 내가 편의점 커피 같다. 프랜차이즈 커피만큼 프리미엄은 아니지만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보다는 품격 있는, 빨대를 꽂기 전에는 밀봉되어있지만 빨대를 꽂아버리면 그때부터는 유통기한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하루살이 같은 그런 커피. 그래도 뭐 괜찮다. 나는 나니까. 애매한 나도 나라서 나는 내가 좋다. 다만 결혼 장려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1인 가구 인간으로서 조금 더 똑 부러지게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 스벅 커피 같은 인생까진 바라지는 않고 사람들이 제일 많이 채가는 편의점 1등 커피는 되어야지 않겠어? 그래서 내가 오늘 두 개나 마신 꽂힌 그 커피 이름이 뭐냐고? 카페베네 커피지. 현실에서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에 밀려서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편의점에서는 서울우유를 베이스로 한 커피보다 더 맛있더라고. 카페베네도 종류가 많지만 난 남색이랑 아이보리색 커피를 좋아해. 그 커피를 보면서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이 내 생각을 해 주면 좋겠어. 아, 카페베네 피피엘 아닙니다.
덧, 그래서 요 근래 꽂힌 노래가 뭐냐면 Geoffroy - 21 Days. 감각적이어서 미치겠습니다. 앞부분에 섹시한 스페인어가 좀 들리고요. 꼭 노래가 Gotye-Somebody That I Used To Know 같습니다. 멜론은 어서 이 노래를 들여오라. Rhye, Poolside의 Feel Your Weight 도 들을 때마다 둠칫 둠칫 해서 마음이 너울거립니다. 아 한국 노래도 추천! 곽진언의 바라본다면. 가사가 정말 좋고 무엇보다도 '그대 나의 손을 잡아준다면' 부분의 꺾임에 노래를 무한루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란의 있어주면. 이 노래도 과장해서 오백 번 넘게 들어서 토이의 '좋은 사람'을 능가할 곡 같단 생각이 듭니다. 노래가 얼른 떠야 합니다. 차트 1위 해야 하는데 왜 때문에 못 하는 것이야. 저의 음악 취향은 저의 감정 상태와 별개입니다. 멜로디에 주로 꽂힌 다음 가사를 보는 편이라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다 짝사랑 가사더라. 짝사랑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양방향 사랑이 제 취향이지만 올해는 글렀고 내년을 기다릴 예정입니다. 어딘가에 있을 내 편, 내 남편을 기다립니다. 결혼 생각 없는 남편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