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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l 11. 2021

나의 최애 인디였던, 지금은 너무 유명한 커피소년

음색도, 가사도, 멜로디도 어쩜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요

얼마 전, 커피소년의 낭만이란 노래를 듣다가 뭉클해졌다. 내 첫 휴가로 갔던 오사카의 공중정원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12월, 따끈따끈한 커피소년의 노래를 들으면서 멍울멍울해졌으니까.


인사동 미술관도, 신사도 가로수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도 말이야. 너와 함께 한 그곳 그곳이 낭만이야. 난 너 하나만 있으면 돼. 우리 집 앞 골목도 비추는 가로수도 우리 동네 그 작은 공원도 말이야



어떤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촉촉한 멜로디와 차디찬 겨울밤에 오사카 시내 전경을 바라보는데 문득 파노라마처럼 내 20대가 스쳐 지나가더라고. 커피소년 노래는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보여준다. 커피소년 느님과의 첫 만남은 '사랑이 찾아오면' 이란 곡이었다. 때마침 감정의 격변기를 겪으며 2010년 무렵 이거 진짜 사랑이야? 하던 찰나에 들었던 노래라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추억의 싸이월드 bgm이었던 이 곡과 '그대를 내 안에'라는 곡도 무한 반복했던 곡이었다. 무려 11년 전, 그때는 알고리즘에 맞게 노래를 추천해주는 시스템도 없어서 노래를 찾아가며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 인디 갬성 힙스터 쟁이들끼리 쿵짝이 잘 맞아서 낭만적 개성주의 티를 뿜 뿜 내곤 했었는데 그중 한 동기는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독립서점을 하고 있다. 정말 멋있지 아니한가?


그때도 역시 노래를 주야장천 달고 살았는데 남들이 안 듣는 노래를 찾아 듣기 왕이었다. 그때의 나는 실연을 당해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연애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정준일의 '안아줘'만 들어도 눈물이 나왔고(마치 내 일 같아서) 노 리플라이의 '끝나지 않은 노래'를 들으면 내게 끝나지 않은 존재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웃기지만 나는 공감을 너무 잘하고 감정의 깊이를 상대보다 더 깊이 느끼는 편(애니어그램이 그렇게 말해줬다)이라서 이것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감정에 잘 휘둘린단 말이니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니지만 예술가가 되기에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난 거라고 누가 위로해줬다. 그런가?


멕시코에 가서도 여전히 인디 앓이를 했는데 그때 내 옆에는 쏜애플과 솔루션스 타령을 하는 동생이 있었고 그 동생은 인디락에 열광하는 타입이었다. 공연 킬러라 불릴 정도로 공연을 자주 다녔고 내가 그 동생한테 9와 숫자들을 소개해줘서 9숫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멕시코에서 한때 꽂혔던 노래는 바닐라 어쿠스틱의 '내 남자의 자격'과 심규선의 'savior'였다. 우리는 교환학생 가서 스페인어를 쓰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도 주야장천 한국어로 된 한국 힙스터 놀이를 하면서 한국어만 주야장천 써서 내 스페인어는 여전히 그대로인 거겠지? 그래도 mi amor과 comunicacion 할 수 있으니 나는 quapo 한 novio를 기다립니다. 나르코스의 페드로 파스칼 제 스타일임을 공언합니다.(나르코스에서도 멋있지만 트루 디텍티브에서도 멋있어요. 형사물 안 좋아하는 제가 다 봤으니까요.) 멕시코에서 많이 들었던 커피소년 노래는 That's nothing이었다.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야.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그런 일이야 훌훌 털고서 이제 일어나렴 이건 아무것도 아냐 참 바보같이 울고만 있지 마 뭐든 맘먹으면 할 수 있는 거야 시간 지나면 웃을 수 있는 걸 너도 너무 잘 알잖아 일어나


그때는 저 가사대로 훌훌 털고 싶어서 주야장천 들었는데 진짜 세월이 약이더라. 20대 이른 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굴삭기로 심해까지 파헤치고 그 심해 끝에서 절망감과 허무함을 다 느껴봐서인지 누군가에겐 밥 먹듯이 쉬운 사랑이 내겐 쉽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마음의 문이 쉬이 열리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호감은 쉬우나 이성에 대한 호감이 좋아함을 넘어서 사랑으로 닿기 위해서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한다. 내가 면접관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라면 내 입장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결국 나 행복하자고 하는 사랑에서 내가 상처 받고 피폐해져야 할 이유는 일도 없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지옥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소년의 노래들은 따뜻한 천국이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이란 노래를 아는가. 이 노래를 안다면 당신은 진정한 커피소년 팬. 정말 힘들 때 커피소년의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를 주야장천 들었는데 그보다 더 힘들 때 엄청난 위로가 된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만 시종일관 나오는 노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따뜻하다. 멜로디는 마치 난로 불 타닥타닥하는 느낌이 든다. 이전 커피소년 인터뷰를 보면 한동안 짝사랑을 오래 했고 그 짝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런 이야기들을 가사에 녹여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커피소년도 유부남이다. 잠깐의 열애설도 있었고 어쨌든 지금은 가수 부부다. 정준일의 오랜 팬으로서 아티스트의 사생활과 음악은 별개라고 생각하기에 커피소년의 연애사가 어찌 되었든 그의 음악만 몽글몽글하면 듣는 나는 행복하고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다음 소개할 곡은 사랑의 비겁자. 제일 오래 만난 누군가와 처음 헤어졌을 때였나, 그때 이 노래를 들었다.


여전히 아픔의 시점이 나에게 있는 걸 보면 난 멀었나 보오 난 멀었나 보오 그렇소 난 사랑의 비겁자 라오. 그렇소 난 사랑의 비겁자 라오. 나는 사랑을 버렸소. 그 약속도 버렸소


어떻게 저렇게 가사가 이쁠 수 있을까 하면서 한동안 멍하니 가사만 바라봤다. 그러고 우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회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구나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할 때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것이다. 늘 달콤하지만은 않은 그 사랑 때문에 일상이 흔들리기도 하고 답답할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지만 그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지.



앞서 사랑에도 양가적인 감정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동일한 사람과 사랑하며 들었던 노래는 커피소년의 '너는 깃털처럼 가벼워서'였다.


무심한 듯 과묵해도 널 사랑해 사랑해 어떻게 널 만났을까 아직도 신기한 걸 조금 더 표현해달라는 너의 예쁜 투정에 내게 업히라고 말했어 너는 무겁다 말했어 너는 깃털처럼 가벼워서 내게 업혀도 난 네게 물어보지 업혔니 혹여나 바람 불면 날아갈까 봐 이렇게 널 꼭 안고 있는 걸


너는 무심했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별 거 아니지만 새로 나온 맛 빙그레 우유 4개를 들고 탁 나타나기도 했을 때 내가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와 너무나도 달랐기에 우린 결국 헤어지고 말았지. 그 연애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내가 누굴 만날 때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겠단 거였지. 그래서 지향점이나 사고방식이 비슷하지 않으면 시작을 하기 싫었어. 어차피 결과는 불 보듯 뻔한데 굳이 시작을 해야 할까. 20대 어린 나이에야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런 가사도 있지 아니한가.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고 실연도 해보고 아파도 해 보고 등등 애송이 같은 사랑을 해 봐야 그다음 진짜 사랑을 알아볼 수 있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된 것이고 '영원한 사랑' 이 비일비재하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을 것이라는 한 전문가의 견해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한 사랑'은 '환상'속이나 로코 룰이 정해진 '영화' 속에나 존재한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대략 2.5년이다. 2.5년 이후의 사랑은 엄밀히 말하면 '정'이다. 15살 때 '냉정과 열정 사이' 보면서 잠 못 이루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다 본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알 수 없는 인생의 가사가 떠오르는군.


25살 때만 해도 그래도 나이브했던 난 사랑에 흔들리는 운명론자였지만 35살의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상주의자였던 나는 변덕이 심한 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신뢰하는 이들의 말은 철저하게 믿는 편이라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하는 인생을 그리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뭐 별 건가. 사랑은 떨림이 아니라 의리라고 생각하는 나이에 이른 나로서는 '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만 있으면 당장이고 결혼은 못 합니다. 사계절 아니 오계절, 육계 절, 칠 계절을 넘어 팔 계절은 두고두고 보아야죠.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결혼보다 '자아 탐구'와 '자아정체성'에 온통 신경이 곤두선 저로서는 '결혼'은 45살에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같습니다. 보수적인 엄마, 아빠가 알게 된다면 정말 한숨을 내쉴 이야기겠지만 글쎄요. 비혼 주의가 늘어나다 보면 따로 또 같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1인 가구를 위한 정책들도 입안이 많이 될 것이고요. 10년 전과 달리, 요즘 세상은 메타버스 비롯 둘이 아닌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놀이들이 주는 즐거움과 지식의 향유에서 오는 깨달음은 어마 무시하고요. 물론 연애와 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과 충만감이 뭔지도 압니다. 하지만 진짜 좋아해서 하는 연애나 사랑이 아니라 그저 외로워서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면 맞춰가야 하는 피로감과 이 시간에 책 한 자 더 읽지 하는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나 스스로를 괴롭힐 겁니다. 물론 한국사회가 워낙 연애 강권 사회니 혼자인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죠. 쟤는 왜 혼자야? 너는 왜 연애 안 해?라고 묻는 건 이미 예의 없는 질문 리스트에 올라간 지 오래되었죠.



연애와 사랑은 개개인의 영역이며 사생활입니다. 그럼 반문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왜 결혼을 했는데도 행복해 보이지가 않죠? 왜 틈만 나면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죠? 그게 결혼을 한 사람의 태도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태도인가요? 배우자가 느낄 배신감은요? 인간이면 그럴 수 있다고요? 아뇨 그럴 바에야 결혼을 안 하는 게 낫습니다.라고 속으로 늘 반문합니다. 그런 질문들을 들을 때는요. 결혼을 해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행복이란 건 말입니다.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별 일 없이 살 때가 행복하기도 하고 전기장판 틀어놓고 귤 까먹을 때가 행복하기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예상치 못한 내레이션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밀리의 서재에서 본 글귀 하나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꼬마가 건네는 과자 하나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와의 눈 맞춤에 행복해지기도 하고요. 지금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21세기입니다만 다양성은 실종되고 이분법에 갇힌 사람들 투성이 세상 같습니다. 물론 저도 이분법적인 사고를 할 때가 있습니다만 탈피해야죠. 마지막으로 우리 커피소년 오빠의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의 주문 가사를 인용하며 오늘의 넋두리도 이만 마무리하죠!


따라 하면 돼요 카운터 줄게요 어렵지 않아요 단순하긴 해도 힘이 될 거예요 행복의 주문 하나 둘 셋 넷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우울한 사람도 지친 사람들도 행복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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