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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Aug 04. 2021

3시간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작가 미상>

작품을 가만히 응시해보면 설핏 흔들리지 아니한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너는 예술 해'라고 말해주었다. 빈 말일 수 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사실 예술은 꼭 범인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봉준호 감독님을 보면 예술은 범인이 하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타고난 재능이 팔 할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여지는 있어야 평범한 우리가 가능성을 품고 살아갈 수 있지 아니할까.) 훌륭한 소설가(특히 나는 하루키를 맹렬히 사랑했다. 하루키를 시작으로 아멜리 노통브에서 레이먼드 카버를 거쳐 안톤 체호프에 이르렀다. 체홉 만세)들의 책을 읽으며 유년시절을 보냈을 때에는 예술은 예술을 밥벌이로 하는 이들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예술가들 역시 원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가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 <작가 미상>에 등장하는 요셉 보이스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의 경우는 '자유분방함' '자기 개성'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포르투갈의 예술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가 직조해 놓은 글에서는 포르투의 짠내가 나기도 하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낄 법한 고독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뚜렷하지 않은 감정의 물성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예술가의 일 아닐까. 늘어진 테이프 마냥 축 늘어진 모양이 아닌, 툭하면 터질 것 같은 젤리의 식감에 준하는 감정을 하얀 종이에 수놓는 일, 그것이 작가의 일이리라.



작가의 범주는 넓다. 시나리오 작가, 소설 작가, 드라마 작가, 수필 작가. 더 나아가서는 미술 작품에도 작가가 있다. 자신의 세계관을 캔버스에 수놓는 사람이야말로 미술의 작가 아닌가. 미술 작품이란 것이 대개 그러하지 아니한가. 요즘에야 오디오 클립과 도슨트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작품을 해설을 통해 감상할 수 있지만 그저 관조하고 혼자 되새김질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관람 아닐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도 맞는 말이지만 그 어떠한 정보 없이 그저 작품만 마주했을 때 울음이 터지거나 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서럽게 울었다고 했으며 에바 알머슨은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만큼 그의 그림만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호수 같던 마음이 일순간 흐릿해지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한다. 영화 <작가 미상>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피카소만큼 유명하지는 않을지라도 <skull with candle> 그림은 교과서에서 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름이 리히텐슈타인과 유사하지만 그의 작품과는 달리,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포토 페인팅을 주 무기로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영화는 무지 길다. 202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영화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운디네> 나 <트랜싯> 등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독일 감독의 영화 테마에는 히틀러의 잔인했던 만행, 그로 인해 입었던 참상들이 많이 담긴다. 물론 미카엘 하네케 감독처럼 <해피 엔드>나 <하얀 리본>처럼 실험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독일 감독도 있다.  <작가 미상> 이전에 <타인의 삶> 이란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답게 히틀러의 만행과 친히틀러(우리나라로 따지면 친일파) 가문이 죄책감 없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과감 없이 보여준다. 실제로 주인공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유년시절에 히틀러 만세 교육을 받다가 청소년기에는 사회주의 사상 최고에 입각한 회화를 그리다가 드레스덴에 가서 현대 미술을 접하게 된다. 어찌 보면 그의 미술 재능을 눈여겨보던 공장의 보스가 그를 미술 학교에 넣어준 것이 신의 한 수 아닌가. 물론 그의 도움이 없었을지라도 위대한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탄생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보스의 안목과 도움이 그를 위대한 화가로 만든 단초 아니었을까.



30대인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스물여섯이라고 적어내고선 포트폴리오 없이 드레스덴 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간다. 그때부터 그의 사춘기는 시작된다. 현대미술의 갖가지 방법들을 흉내 내보이지만 모방에 불과할 뿐, 자신의 것이 없는 작품만을 만들어내던 그는, 교수로부터 네 것이 아니니 네 것을 찾으라는 말을 듣고 진짜 자신만의 예술을 그리기 시작한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영화의 전환점이다. 아무 의미 없는 여섯 개의 숫자가 로또 당첨 숫자가 되면 의미가 생기듯이 어떤 것을 그리더라도 진실된 마음으로 그리면 의미가 있다는 명언을 남기면서 그는 드레스덴 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주목을 받는 대스타로 거듭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제프 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 다음으로 작품 값이 비싼 미술가로 주목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는 한 여자만을 바라본 순정파처럼 그려지지만 실은 세 번이나 결혼했다고 한다. 아무렴 어떠한가 그의 사생활일 뿐, 그의 그림은 예술가로서 진실되지 아니한가.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분명히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으나, 그의 영화에서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보이고 <타인의 삶>이 보인다. 특히 수미상관으로 보여주는 자동차 경적 시퀀스는 압권이다.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작품 <베티>를 마지막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다룬 <작가 미상> 리뷰는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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