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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n 10. 2021

나의 포기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꿈과 이별해도 괜찮아, 그 다음을 생각해

부끄럽지만 고백건대 브런치만 하면 우주대스타까진 아니고 한국 대스타가 될 줄 알았다. 90년생이 온다 급의 책 출판까진 아니더라도 출판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출판사의 선택을 받는 건 단막극 공모전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물론 꾸준하지 못한 내 게으름이 한몫하겠지만 세상에는 너무나도 잘난 사람이 많다. 상경 전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글 잘 쓴단 소릴 들으며 끗발을 날렸던 터라 한 때는 문창과를 가고 싶은 생각도 했던 사람이었다.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 달리 글은 생각의 회로 과정에서 정제가 되는 법이라서 글쓰기 자체를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다. 그래서 내 스타일의 글을 쓰는 사람을 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두근거리기 마련이었다. 단순 명료한데 깊이 있고 넓으며 단신 쓴 짠 이 모든 맛이 다 느껴지는 글을 읽었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꿈은 크게 가져라,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고 있던 터라 큰 꿈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연애보다 좋았다. 그래서 한때 내 자기소개에는 '연애 없이는 살아도 드라마 없인 못 사는 사람'이라는 피식거릴만한 문구가 들어가곤 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백수 시절, 잠들기 전마다 항상 꿈을 이룬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게 삶의 낙이었다. 환상으로 점철된, 현실과는 동떨어진 꿈이었겠지만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게 크나큰 행복이었음을 어느샌가 깨달았다. 그 꿈을 이뤘다면 환상이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꿈만 이루면 정지오 같은 선배가 힘들면 내 곁에서 힘내 짜샤 하며 토닥여줄 것만 같고 주준영이 되어 종횡무진 현장을 뛰어다닐 것만 같았고 삼시 세 끼를 못 먹어서 식은 피자 한 조각만 먹어도 행복할 것만 같았거든. 그런데 현실은 극한직업에 뒤치다꺼리의 연속이라는 것을 그 꿈에 도달한 지인을 통해 간접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의 나는 그야말로 순진무구 덩어리 그 자체였구나 싶었다.


그렇게 포기하라고 해도 포기가 안 되던 꿈은 자연스레 내 손아귀에서 멀어졌다. 나이가 서른을 넘기고 나서 물리적으로 포기를 할 수 없겠구나 판단했을 때는 조금 서글펐고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은 체력에 단념하게 되었달까. 이런 이유들은 굳이 이유를 대자면이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내 마음이 꿈에서 멀어진 탓 아닐까. 스물아홉 살 무렵, 뼈 때리는 말을 시전 하는 친구가 너는 꼭 꿈 못 이루면 난리 날 것 같다며 하나에 몰두하지 말고 그 이외의 것을 보라고 했는데 그때는 쇠귀에 경 읽기였던 그 말이 서른하나가 되니 가슴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하나 이외의 것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밖에 몰랐던 나여서 다른 것은 흥미롭지도 않았고 반갑지도 않았다. 서른 넘으면 한 번쯤은 생각한다는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으나 문득문득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렸다. 게다가 나는 연애 없이도 나 혼자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달콤 살벌한 연애 자체도 쉽지는 않았다. 요 몇 년간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것은 수영이었다. 물속에 들어갔을 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서 라커룸 비밀번호를 종종 까먹던 나였기에 하루 중 수영을 하는 3~40분이 제일 행복했다. 특히나 햇빛이 잠깐 들어오는 오전 11시 무렵의 수영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아쿠아로빅을 하는 분들 틈 사이에서 두 개의 레인을 번갈아 쓰며 수영을 할 때의 자유로움과 들뜸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겨우 땅에 발붙인 시든 파뿌리와도 같았던 내게 수영은 단꿈이었지.


생각해보면 나는 그 꿈을 향해 미친 듯이 헤엄치던 사람도 아니었다. 놀 거 다 놀면서 어떻게 꿈을 이루겠냐는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려가며 운 좋게 꿈의 목전에 다다랐으나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던 경험 때문에 미련을 쉬이 놓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미련을 놓아주자 내게 닥친 것은 허무함이었으나 그 허무함은 인간 개개인이 채워가기 나름일 뿐이다. 그 꿈을 이루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아주 조금 철이 들고 보니 그런 기분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 업이 주는 스트레스가 어마 무시하다는 것을 전해 듣고 나니 나는 그릇이 안 되겠구나 하는 자기 성찰에 이르게 되었달까.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고 굳게 믿어왔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인생의 방향성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보며 사람은 아주 어렵게, 조금씩은 바뀔 수 있는 생물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달까. 그저 가 바라는 바는 얇디얇은 제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마음의 성장판이 한 달에 1밀리미터씩만 자라주면 좋겠다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 하나 더. 오랜만에 쓴 이 글이 널리 널리 전파되어 꿈을 오랫동안 꾸었으나 이루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속앓이 하는 이들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으면, 당신도 그랬나요? 나도 그랬는데. 그거 하나면 도 무진장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게 제 꿈의 이유기도 했고요. 나의 포기선언이 이 세상의 수많은 당신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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