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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Apr 03. 2021

운명을 찾고 있는 당신이 봐야 할 드라마 <더 원>

운명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의지


저는 운명을 믿지 않습니다. 운명보다 인간의 의지를 믿습니다. 물론 10년 전의 저는 운명 예찬론자였습니다. 저는 그리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특별한 근거가 있진 않았고요. 느낌과 끌림을 중시했던 저는 느낌으로 운명을 판단하곤 했어요. 10대 때 <냉정과 열정 사이>에 반해서는 그 영화를 보고 심장이 떨려서 잠을 못 이루기도 했었고 20대 때 <중경삼림>과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서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없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운명은 의미 부여하기 나름인 것에 불과한 미사여구 같아요.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어요. 운명은 별 게 아니다.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에는 제가 좋아하는 말이 나와요.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곧 운명이다.' 한쪽이 한쪽을 맞춰주든, 서로가 맞춰가든 어찌 되었든 퍼즐의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면 운명이겠죠. 운명을 찾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흐릿해져 가는 요즘, 눈을 번뜩이게 하는 8부작 드라마 <더 원>이 나왔길래 단숨에 정주행을 했습니다.



**********스포 주의***********


영국 드라마 <더 원>의 대표, 레베카 웨브는 이성적인 여자로 야망으로 똘똘 뭉친 무서운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 것만 같아요. 야망을 위해서라면 뭐든 서슴지 않고 불도저처럼 저돌적인 사람.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인물은 대개 남자 주인공에게 갔는데 요즘은 pc주의 열풍 덕인지 여자 주인공으로 설정을 했더군요. 이런 무서운 여자를 대적할 만한 캐릭터, 경찰 케이트도 여자랍니다. 이 드라마는 캐릭터 설정이 정말 흥미로워요. 레베카 웨브는 DNA로 완벽한 짝을 찾아주는 매칭 시스템 회사인 <더원>의 CEO에요. 박사과정까지 밟은 과학도로 친구인 제임스의 논문에서 착안해서 개미의 페로몬처럼 인간도 유전적으로 완벽한 궁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문제는 베타 테스트를 해 볼만한 DNA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이 8부작 드라마의 화근이 될 만한 행동을 레베카가 저지르고 맙니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훔쳐서는 자신의 유전자와 딱 맞아떨어지는 남자와 만나서 사랑에 빠집니다. 연애나 사랑에 부정적이며 결혼에도 냉소적인 레베카가 단숨에 사랑에 빠집니다.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정말 고전적인 반응을 보이며 단숨에 사랑에 빠집니다. 다른 커플들도 마찬가지예요. 매칭으로 DNA가 딱 맞아떨어졌던 커플들은 서로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냐는 말들을 던지더라고요. 그런 대화들이 오고 갈 때마다 저는 키득키득 웃었어요. 저도 제 유전자와 100%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런 말을 하게 될까요. 글쎄요. 저라면 신기하네요.라고 할 것 같은데요? 신기하잖아요. 인간이 그래도 고차원적인 동물인데 DNA 조합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단순한 존재라니 나는 결국 아메바였어 하며 내적으로는 중얼거릴 것 같기도 하고요.


베타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레베카 언니는 투자를 받는 데에 성공하고 <더 원>은 테슬라만큼이나 핫한 기업이 됩니다. 하지만 그녀가 유전정보를 몰래 빼내서 권고사직을 받은 동료 벤의 죽음에 레베카가 연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레베카 언니는 궁지에 빠지게 되죠. 실제로는 레베카 언니가 홧김에 벤을 옥상에서 밀어버린 거였거든요. 그걸 자살로 덮으려고 하면서도 벤의 가족에게 물질적으로 지원을 다해주며 가식적이고도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요.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해서 놀랐어요. 배우의 이름은 해나 웨어예요. 필모가 그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페넬로페 크루즈 언니만큼 매력적이진 않지만 카리스마도 있고 카멜레온 같이 연기를 잘하니 승승장구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이렇게 뒤가 구린 대표에게서 냄새를 맡고 치밀하게 수사를 하는 경찰 케이트, 이 언니도 더 원을 통해서 양성애자 여자 친구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천방지축에 결혼까지 한 적이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숨긴 감당 안 되는 여자지만 바쁜 와중에도 혼수상태에 빠진 애인을 간호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정말 찐 사랑이죠?



드라마에는 또 다른 커플이 나와요. 남편 마크의 매칭 상대를 알아낸 해나가 매칭녀인 메건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요가 클래스를 등록하고 친해지게 되는데요. 남편은 해나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메건을 해나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게 되는데 그때 처음 서로 마주한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게 됩니다. 어김없이 또 그 대사가 등장해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익숙함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걸까요. 글쎄요. 저는 이 커플의 말로가 제일 궁금했어요. 실제로 남편 마크는 흔들려요. 그렇지만 이성을 다잡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는 유전적으로 완벽한 파트너인 메건 대신 해나를 선택합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일시적인 감정에 흔들려서 그간 신뢰를 쌓아온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불상사를 겪어선 안 되잖아요. 물론 모르겠습니다. 진짜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게 되어서 제 DNA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저도 고전적인 대사를 던지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라는 오류를 범하게 될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기술도 없습니다. 더 원은 실제로 온니 원이 아니었어요. 가족은 유전자가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케이트 형사 언니가 사랑에 빠진 여자 친구의 오빠가 케이트 형사를 운명이라고 착각하거든요. 그래서 의문이 생긴 케이트가 레베카 언니의 공동 개발자 제임스에게 물어요. 오직 한 명일 수밖에 없냐고요. 제임스는 거짓말을 하게 되죠. 한 명일 수밖에 없다고요. 누군가가 오류를 간파했다는 사실을 개발자가 알게 되는 것으로 이렇게 드라마는 끝납니다.



과잘못(과학 잘 못하고 모름)인 저는 SF 소재를 좋아하는 편이라 블랙 미러 덕후임을 자처하고 다니는 편인데요. 이 드라마는 뭐랄까. 소재 자체는 신박하지만 야욕이 득실거렸던 드라마 하얀 거탑이 떠오른달까요. 성공을 위해 사람을 짓밟는 것 마저 서슴지 않던 냉철한 여자는 결국 유전적으로 완벽한 남자의 의심을 받다가 자신을 위해 대신 죽은 남자가 자신의 대화를 녹음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되는 말로를 맞게 되어요. 물론 이 여자는 무시무시하니 그리 상처를 받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 부분이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냉철한 레베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냉철한 여자가 무너져버렸다면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을 텐데요

 잔잔한 여운이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터인데 레베카의 잔인함만 부각된 드라마에 그치고 말았어요. 시즌2가 나오게 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요. 유전적으로 맞아떨어지는 파트너가 '더 원' 이 아니라 '썸 원' 일 수 있으니 또 다른 파트너를 찾아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 대한 반응들이 시원치 않은 걸 보니 시즌2가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덧 1.

여러분은 이런 기술이 있다면 기술을 구독, 혹은 가입하실 건가요. 호기심 많은 저는 가입해 볼 것 같아요. 신기하잖아요. 나와 DNA가 딱 맞아떨어진다면 이해의 폭도 넓을 것이고 싸울 일도 없을 것이고 바라만 봐도 꿀이 떨어진다면야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이런 기술은 살아 있는 한 개발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온니 원, 더원이 아니라 썸원이라면 자만추 혹은 인만추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역시 이 드라마를 강추까지 하지 않는 이유는 '더원'이라는 제목에서 제가 원했던 그림은 순정, 운명 같은 사랑의 그림이었는데 와 닿는 지점이 없어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순정에 허덕이는 건 인간의 본능 같다.' 순정, 지고지순한 감정, 진실성의 강한 벡터는 결국 상대에게 전달되는 법이라서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말도 나오게 되는 거라고 심리학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열 번 잘못 찍으면 스토커 누명을 쓸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다 보니 조심해야겠죠. 이상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순정은 믿는 복잡한 한 사람의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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