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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an 28. 2021

슬래셔 무비 못 보는 내가 끝까지 본 영화, 더 헌트

킬링타임용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꽤 괜찮은 영화

잔인하고 징그러운 건 절대 못 보는 나는 이 영화가 10분쯤에 이르렀을 때 으악 거리면서 눈을 가리다가 급기야는 중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은 킬링타임용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네이버 평점의 꽤 괜찮은 후기들 덕분이었다. 일단,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이유는 영화의 소개글 때문이었다.


부유하고 고상한 권력층 엘리트들이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납치한다. 동물을 사냥하듯 사람을 사냥하며 쾌감을 맛보기 위해.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후킹이 장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후킹 자체가 <메이즈 러너><헝거게임>을 떠올리게 했다. 개인적으로 사회문제를 미시적으로 다룬 영화나 계급 문제를 잘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촌스럽게 대놓고 계급이 어쩌고 하는 영화보다는 은유적으로 다루거나 좀 알기 쉬우면서 재미있게 풀어내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왠지 <더 헌트>가 <헝거 게임>과 유사할 것만 같았다. 작년에 봤던 <이어즈&이어즈> 같은 냄새가 나기도 했고 기대하면서 보기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피 튀기고 창살에 찔리고 으악 거리면서 허둥대다가 조디 코머 닮은 여주, 크리스털(베티 길핀)의 서늘하면서도 깊이 있는 표정 덕분에 정주행에 성공했다. 조디 코머가 떠오르다가 <유전>의 토니 콜렛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정치 성향을 떠나서 유의미한 이유는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과 악성댓글이 메인 테마지만 젠더 감수성, 이민 문제, 엘리트주의, 백인우월주의 등등에 대한 풍자를 기깔나게 해낸 영화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과 사실을 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진실이라 믿는 이들이 본다면 뜨끔할 영화다. 영화의 시작이 <서치>처럼 텍스트 메시지로 시작하고 나서 휘리릭 전개되며 초반에는 영화의 후킹 요소였던 '인간사냥' 이 시작되는 건가 싶게 만들며 내내 긴장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드론이 떠다니면서 인간 사냥감들의 위치를 추적하다가 무선을 주고받는 게 들키는 대목은 허술했으나 '블랙 미러'의 벌꿀 드론 에피소드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이 영화의 맹점이라면 여주 크리스털(베티 길핀)이 원더우먼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돋보이는 스토리나 대사에 비해 여주 캐릭터가 그리 멋져 보이지 않았다. 냉담하고 침착한 소시오패스 같달까. 결핍 하나 없이 로봇처럼 모든 걸 혼자 다 해낸다. 그래서 매력이 없다. 그리고 여주는 곤경에 처해도 특유의 감각으로 그 위기를 너무나도 잘 헤쳐나간다. 그래서 5점이 될 뻔했던 이 영화의 제 평점은 3.5 드립니다.


 ***스포 주의*****


일단, 후킹은 후킹일 뿐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엘리트들이 선량한 시민을 납치하지만 그 선량한 시민들은 아테나라는 기업의 수장에 대한 악플을 단 인간들이었다. 물론 여주 크리스털(베티 길핀)이 진짜 사이코패스 엘리트 대표 아테나에 대한 악성 댓글을 달았는지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실제로 인간사냥을 취미로 하지 않는 이들의 텍스트 메시지가 해킹당해서 사람들은 인간사냥을 믿게 되고 그 기업의 주가는 떨어지고 그 대화방에 있던 인물들은 다 사퇴를 하는 지경에 이르자 회사 대표 아테나(힐러리 스웽크)는 화가 나서 악성 댓글을 단 이들을 말살시키고자 한다. 살인청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종이의 집>처럼 자기들끼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연습을 해서 실제로 인간사냥을 해 보는 것이다. 이런 발상을 하고 게임을 해 보자는 발상 자체가 사이코패스지만 아테나(힐러리 스웽크)는 PC 한 척하는 인물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입진보'에 대한 풍자랄까. 왜 현실에도 깨어있는 척하는 사람들은 많지 아니한가. 각종 사회이슈에 대해서 깨어있는 척 하지만 현실의 수많은 사소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이들.  뉴스에만 오르내리는 사회문제만 사회문제인 것이 아니다. 물론 사회에 찌든, 혹은 물든 이들이 그 사회 안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일이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깨어있는 척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감독은 대략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간인 것일까. 평소에 깨어있는 척을 한다기보다는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며 주변의 깨어있는 이들(합리적 진보주의자,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부터 '너는 아직 멀었어. 의식이 왜곡되어 있어.' 혹은 '의식이 개선되어야해.' 라는 지적을 받는 편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계급을 대놓고 다루는 콘텐츠를 좋아하기보다는 계급적인 요소를 샤샤샥 재미있게 버무린 오락물을 좋아하는 사람인 듯?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 못하고 대략 알고 맞장구를 칠 수 있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얕은 나의 지식 혹은 의식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문물들을 접하는 소시민인듯? 정치적인 성향 역시 중도는 있을 수 없다고, 그건 너의 지식이 짧기 때문이라고 들었던 터라서 그렇다면 나는 정치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 두자. 중도라고 말했던 이유는 극좌, 극우 뭐든 지나친 게 너무 싫다. 그리고 각 진영에서 제기하는 음모론도 정말 싫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극좌와 극우가 결혼해서 이혼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가 흥미로울 것 같기도? 뭐든 과한 건 좋지 않은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중도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좌든 우든 말이다. 각자가 믿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겨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결기는 정말 어떤 면에서는 멋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세상은 변해온 거겠지. 너무 슬픈 건 어찌 되었건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싸움이 메인이며 소외된 이들은 더 소외되고 어중간한 위치의 이들만 희생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라는 거지. 그렇기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지만 흑과 백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세상은 절대 도래하지 않겠지. 지금은 공존보다는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전쟁터일 뿐이니 아쉬울 따름. 이상주의자는 흙흙 땅을 치며 웁니다.



덧, 굳이 슬래셔 물이 아니었어도 이 영화는 칭찬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트럼프 압력에 개봉 취소된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영화일 것이며 PC와 페미니스트들이 불편해할 것이라는 평과는 달리,  같은 소심러(생각만 많은)들이 이 사회에는 다수일 것이라 생각하기에 입소문을 타고 손익분기점은 가뿐히 넘겼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넷플릭스에 풀리고 나서 며칠간 뷰잉 베스트 10에 오르기도 했었죠. 대단한 걸 크러시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영화예요. 솔직히 마지막 액션이 그리 통쾌하지 않았거든요. 슈퍼히어로, 초인에 버금가는 캐릭터긴 하지만 저는 여전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마리안느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메릿 위버와 같은 외유내강형 캐릭터가 훨씬 좋답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단순한 고어물, 슬래셔 무비, 킬링타임용으로 치부되기에는 훌륭한 지점이 많은 영화니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기울어진 운동장임에도 불구하고 여혐이 난무한 우리나라에서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영화랍니다. '네가 여자라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라고 냉혈한 크리스털(베티 길핀)이 묻자, 엘리트 여성이 이렇게 말을 하죠. '아니' 그 순간, 크리스털은 그 여성을 총으로 쏴 버립니다. 이 에피소드만 보아도 이 영화가 상당히 꽈배기처럼 풍자를 곳곳에서 시전 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어쨌든 이런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감독은 천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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