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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Aug 15. 2021

인어씨와 공 주임

인어공주 재해석. 인어씨의 짝사랑은 물거품이 될까?

 “인어씨, 더위 먹었어? 이름은 살랑살랑 인언데 행동은 굼뜨는 굼벵이야?”  

        

오늘도 공 주임의 핀잔은 계속된다. 그는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앞둔 20대 주임이다. 공 주임은 이제 갓 입사한 새내기 인어씨의 사수다. 그는 회사 사람들과 좀처럼 밥 먹는 법이 없다. 늘 어딘가 분주히 돌아다니기 바쁘지만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에 바쁘다. 오늘도 까칠하게 군다는 둥, 빽이 있어서 저렇게 마음대로 아니냐는 둥. 하지만 공 주임 앞에서는 다들 굽신 모드다. 인어씨는 뒤에서건 앞에서건 언제나 굽신 모드다.          


고백건대, 인어씨는 공 주임을 짝사랑하고 있다. 입사 첫째 날부터 그가 보여준 특유의 당당함에 반한 인어씨는 그에게 어떻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 앞에만 가면 구겨진 종잇장 마냥 소심해진다. 화끈 화끈 얼굴이 달아오른다.          


“오늘은 볼터치를 진하게 했네? 일에 눈 터치나 좀 제대로 하자?”          


사람들은 인어씨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인어씨는 그의 표현방식이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완. 전. 반. 했. 다. 인어씨 친구는 인어씨에게 고전적인 방법을 쓰라고 했다. 커피를 책상 위에 놔두라나. 어떤 반응이 올 때까지 커피를 놔두라는 친구의 코칭에 새벽 일찍 회사에 와서는 커피를 슬쩍 놓으려던 찰나, 공 주임의 향수 냄새가 스윽 하고 인어씨 목덜미를 뒤덮는다.          


“인어씨, 지금 남의 책상 앞에서 뭐하는 거야?”          


깜짝 놀란 인어씨는 커피를 뒤로 숨긴 채 얼굴이 벌게지고 말았다. 애꿎은 포스트잇 핑계를 대면서 “주임님 포오오오스트으잇 좀 비이이이일리게엤습니다아.” 하며 줄행랑을 치곤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공 주임의 출근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선 깔깔거린다.      


‘원래 사랑은 들키는 거야. 커피 들고 당당하게 가.’     


하지만 두 볼이 발그레진 인어씨는 그럴 수 없었다. 대신 다음 날 새벽 5시에 공 주임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두었다. 공 주임 책상 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인어씨 : ‘작전 실패. 물거품.’

친구 : ‘마음접어.’

인어씨 : ‘이혼하고 혼자 애 키우나보다.’

친구 : ‘넌 뒤통수 치지 말고 공 주임님께 잘해드려.’      

인어씨 : ‘만날 애 보느라 그렇게 점심 시간 비웠나보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회사에 출근했던 터라 멍했던 인어씨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심장이 칼날로 찌르는 것마냥 아팠다. 한달 째 짝사랑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인어씨는 생각에 잠기다 지친 나머지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어슴푸레 눈을 떴을 때, 그녀 앞에는 세이렌 로고가 새겨진 땡벅 커피가 떡 하니 놓여 있었다. 자주 맡았던 잔향까지 그 자리를 맴돌았다. 심장박동수는 최고치에 다다랐다. 커피향과 동시에 공 주임, 그녀의 달콤한 잔향이 코끝을 스쳤다. 고개를 돌려 공 주임의 자리를 쳐다보았더니 공 주임이 눈을 찡긋했다. 지금은 2021년 4월 16일 아침 8시 1분 전, 아직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오직 그녀와 나 뿐이다. 장국영이 주연을 했던 영화 '아비정전'의 대사를 떠올리며 한 달간의 짝사랑을 흘려보내기로 다짐했다. 하필 그녀, 공주임의 이름은 공아비다. 수리진에 빙의하여 시계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겠노라고, 당신을 잊겠다고. 되뇌일 찰나 사내 메신저가 띵동 하고 울렸다.     


‘커피 고마워. 어제도 커피 놓으려고 내 자리 온 거야? 어머 감동!'

'주임님 늘 바빠보이셔서요!^^'     


바빠보인단 말 뒤에는 '애 혼자 키우느라 바쁘시죠.' 가 생략되어 있었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느라 힘드시죠. 라고 차마 말할 순 없었다.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 언니가 싱글맘이라 내가 조카 픽업을 점심마다 도와줘.'     


뜨아. 온몸이 벌겋게 타오르는 듯했다. 내게 꼬리가 있다면 불타버렸을는지도 모를 정도로 온몸이 달아올랐다. 붉은 립스틱에 골든 섀도우, 하이힐에 딱 달라붙는 부츠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공 주임, 그녀는 미혼이었다. 귀여운 조카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미혼.      


'역시 주임님 멋지세요. 제 롤모델입니다.'

'어머, 인어씨 그럼 내가 오늘 밥 살게.'     


타오르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지금 인어씨의 마음은 그랬다. 그녀가 설령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지금 만약 공 주임과 사내 메신저가 아닌 대화를 한다면 혀가 굳어버릴는지도 모른다. 풀이 죽은 카톡방에 물을 주기 위해서 공 주임과의 약속을 알려야만 한다.     


'공 주임, 내 사랑, 미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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