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오! 사랑!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이다. 너무 좋다거나, 너무 별로라거나. 20대의 나는 전자에 가까웠지만 후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평 중 '자기 복제가 심하다'라는 말에 일정 부분 공감한 터도 있었다. 그의 필모 중 두어 편 빼고는 다 본 팬의 입장에서 홍상수 영화는 이렇다. 어떻게 해서든 여자를 꼬셔보려는 남자와 백치미가 넘치는 여자의 모습이 줌인, 줌아웃으로 드러나는 영화. 일상의 술자리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만큼 사실성이 넘치는 영화.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 사이에서 날카로운 관점이 드러나고 그 관점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에는 그 질문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는 영화. 부자연스러운 연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인간 군상을 끄집어내는 영화. 찌질한 인간의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유머러스함과 시니컬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영화.
영화가 개봉되고 나면 쏟아지는 여러 평들 중, 이번에는 홍상수의 영화가 달라졌다, 혹은 사랑에 대한 인트로덕션을 시작으로 비슷한 결의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다.라는 평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이번 영화는 그가 만들어온 기존 영화의 느낌과는 다르다. 인간에 대한 시니컬함은 여전한데 따뜻함이 더해졌달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는 결이 다르지만 '포옹'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달까. 홍상수는 여태껏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구하고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 그런데 이번 인트로덕션에서는 '인류애'를 '포옹'으로 드러내고 있다. 1막에서는 그리 친하지 않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하는 포옹과 토닥거림, 2막에서는 젊은 청춘남녀의 포옹, 3막에서는 젊은 남자 둘의 포옹을 통해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둥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등의 여러 말들보다 '사랑이 별건가 다 사랑이야' 하며 툭 내던진 그의 사랑관은 곱씹어볼 만하다. 금사빠의 사랑도, 늦사빠의 사랑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행인과의 눈인사도 사랑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연결된 거야. 하는 느낌이랄까.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안김을 받으면서 '사랑스러운 존재'로 태어나고 '사랑'을 먹고 자랐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충동'은 자제하고 '이성'적이어야만 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보니 '충동'을 발현할 기회를 애써 모르는 척하고 지나쳐왔을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인트로덕션>을 처음 보고 나서의 나는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철없던 20대의 내 모습이 극 중 주인공 '영호'의 모습에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거창한 계획 없이 다소 충동적으로 멕시코 교환학생을 택하고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맞지도 않는 길을 걷겠다는 충동 하나만으로 달려왔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막의 주원(박미소)의 엄마는 딸의 신변이 걱정되어 독일 친구네에 묵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서슴지 않는 엄마의 모습과 1막의 모든 전 재산을 기부하려 하면서도 아들의 충동적인 독일행 비행기 티켓값을 대주는 아빠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부모란 무엇이고 충동적인 요즘 애들이란 무엇인가. '영호'는 옛날의 나보다 더 철이 없는 인물이란 생각마저 들어서 짠해졌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보고 싶어서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배우로서 연기를 하다가 여자 친구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는 급기야 배우라는 꿈을 포기한다. 다소 충동적이고 무모한 인물이다. 나처럼 찔리는 사람 여럿 있지 아니할까. 손 들어보아요.
극 중 2에서 김민희의 명대사는 죄스러운 마음에 위로가 되긴 했다.
"좀 충동이 있어야 살아 있는 거지, 사람이. "
서영희가 비꼬는 요즘 애들을 두둔하는 대사를 남긴다. 반면, 극 중 3에서 기주봉은 영호의 '사랑관'을 짓뭉개면서 가짜로 사랑하든, 진짜로 사랑하든 남자가 여자를 안는 건 모두 다 제각기의 사랑이라는 말을 한다. 이 대목에서 홍상수의 주특기가 발휘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이지? 싶지만 '사랑'의 의미를 어떤 관계에 한정 짓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보자, 우리 모두 사랑하자 라는 말을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극 중 인물을 빌려 호통까지 쳐 가면서 말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볼 때면 해석의 여지가 많은 단편소설 여러 편을 읽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 그의 영화를 그가 쓴 단편 소설로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는 표현되지 않는 인물들의 심리가 감독의 입장에서 그려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수많은 평론들과는 다른 감독이 생각하는 인물들의 감정이 여과 없이 문장으로 표현되면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인트로덕션>을 시작으로 홍상수 월드는 '사랑 사랑 사랑'의 지평을 열게 되었다.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이야말로 감독이 부르짖는 그 '사랑'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웃고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철부지 어렸을 땐 사랑을 몰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랑을 알지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그 흔한 사랑 한번 못해본 사람 그 흔한 사랑 너무 많이 한 사람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