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무렵, Shakira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되었던 건 콜롬비아 친구를 통해서였다. 당시 라틴 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했던 나는 그 친구를 통해 라틴 팝의 제왕이라는 그녀를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노래는 카사노바의 신, 주앙 질베르토만큼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 친구한텐 미안하지만 나는 샤키라보다 샤크라를 더 잘 아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풉 할 만한 기억이 있던 샤키라를 다시 조우한 건 영화 <주토피아>를 통해서였다. 주토피아의 ost <Try Everything>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하자면 '승패 병가상사'라고 할지어다. 요즘 내가 애정하고 있는 NCT Dream의 <Life Is Still Going On>의 가사 주제와도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뭐든 할 수 있어!" 류로 따지자만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 역시 같은 맥락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른 가수가 다르고 가사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니 뉘앙스도 다를지어다.
사실 <주토피아>는 2016년에 개봉된 영화고 지금은 2021년이다. 2022년에 주토피아 2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5년 전에 개봉한 영화를, 입에 마르도록 칭찬을 받은 이 영화를 왜 이제야 봤냐고? 이유는 Try Everything이라는 ost에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턱대고 꿈과 희망을 파는 영화가 싫었다. 모순적이게도 해피엔딩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지만 디즈니의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약간의 시니컬함이 없었다. 시니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 류의 영화에서는 핍진성이 느껴지고 약간의 냉소에서 현실 풍자가 느껴진달까. 그런데 막상 영화 뚜껑을 열어보니 마냥 꿈과 희망을 파는 영화가 아니더라. 이렇게 좋은 영화였으면 진즉에 볼 걸, 내 편협함에 통탄을 금치 못했다.
영화의 매력은 인물들의 입체성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에 있었다. 다소 냉소적으로 보이는 닉은 한때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던 이상주의자였고 꿈만 먹고사는 것 같아 보이는 주디도 점점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모두를 겸비한 이상주의자로 거듭났다. 영화 <토이 스토리 4>를 보면서 이상주의자 샌님에 버금가는 우디보다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보핍한테 매력을 느꼈던 나로서는 "누구도 내 꿈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어."라고 외치는 주디보다는 "자책하지 마. 너무 빨리 달릴 필요는 없어. 마지막으로 들어왔더라도 최선을 다한 거야"라고 말하는 닉에게서 무한 매력을 느꼈다. 현실주의자 냄새랄까. 극 중 대사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대한 꿈이 있었던 닉이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는 친구들 때문에 극변 하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그 장면을 회상하며 닉은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첫째, 절대 남한테 얕잡아 보이지 말자. 둘째, 세상이 여우를 믿지 못할 교활한 짐승으로 본다면 ,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자존감 관련 서적에서 즐비하게 등장했던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는 구절과 일맥상통 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교활하다고 생각하는 여우인 닉은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고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문 연 자가 있었으니.. 바로 귀여운 토끼 주디다. 사기꾼과 경찰로 만난 두 사람이 사건을 함께 해결해가면서 동지애를 느끼다가 실언을 한 주디로 인해 닉은 다시 상처 받지만 닉을 끈질기게 찾아다닌 주디는 닉에게 '난 정말 멍청한 토끼야.'라고 사과한다. 둘은 결국 사건의 배후의 배후를 파헤치는 데까지 성공한다. 아웅다웅하다가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로맨스 서사와도 유사했지만 권력의 배후를 파헤치며 그 배후의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가 짜임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정작 뒤통수치는 건 교활해 보이는 여우가 아니라 곰의 탈을 쓴 여우란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아니한가.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사는 게 인간의 인생사이거늘, 그러한 진리를 인물들의 캐릭터 하나하나를 통해서 너무 잘 드러냈다. 도둑 잡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소인국에 들어갔을 때도 생쥐들이 다칠까 봐 세심하게 신경 썼던 주디의 행동은 나중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 무시무시한 미스터 빅이 악당일 줄 알았는데 악당이 아니었던 점 또한 좋았고 양의 탈을 쓴 빌런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무. 엇. 보. 다. 도. 마지막 주디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전 어렸을 때 주토피아가 완벽한 곳이라 생각했죠.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요. 그러나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영화 속의 해피엔딩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요. 삶은 복잡한 거예요! 우리 모두 단점이 있고 우리 모두 실수를 해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봐요. 우린 공통점이 많으니까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서로의 차이를 더 포용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