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내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중학생 때, 우연히 서재에 있던 빨간색 책과 파란색 책을 집어 들어 탐독한 나는 14살 무렵, 15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비디오로 보게 되었다. 사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책이 먼저였는지 영화가 먼저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가 내게 어느 날, 별똥별처럼 뚝하고 찾아온 것만은 분명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는 신문을 매우 열심히 읽었는데 그때 흑백의 <냉정과 열정 사이> 포스터가 신문 한편에 실려 있었던 것을 보며 이 영화는 꼭 봐야지 했던 기억이 있다. 운명처럼 내게 다가 온 <냉정과 열정 사이>는 '사랑'의 '사' 자도 몰랐던 내게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서로를 정말 사랑한 나머지 잊지 못해 재회하게 되는 그런, 아련한 사랑을 꿈꾸었고 그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였다. 그렇게 간절히 가길 원했던 이탈리아를 왜 서른 하고도 넷이라는 나이에 가게 되었을까.
말을 하자면 길다. 그전에 이탈이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두어 번 있었다. 한 번은 교환학생을 이탈리아로 갈까 고민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취업준비생 때, 가족여행을 이탈리아로 가려고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놨을 때였다. 교환학생은 고민하다가 남들이 더 안 가는 나라인 '멕시코'로 가게 되었고 티켓대행사의 실수로 티켓이 잘못 결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행이 취소가 되고 만 것이다. 그 이후로 몇 년이 흘렀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가상승, 코로나 특수 등등으로 인해 비행기 값이 너무나도 오른 이제야 이탈리아를 가게 되었다. 나 홀로가 아닌 엄마, 아빠와 함께. 엄마, 아빠는 명퇴를 하셨기에 시간 부자이지만 나는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가야 하는 헬조선의 직장인이었다. 비행기값을 싸게 하려면 평일에 출발해서 평일에 돌아오면 되었지만 최대한 휴가를 누리기 위해서는 토요일에 출국하고 토요일에 돌아오는 방향으로 비행기 표를 알아봐야만 했다. 비행기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 여행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출국 2개월 전에야 티켓팅하고 말았다. 4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침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내가 9-6 안의 프로그램을 하게 될 지도 미지수였고 2017년 입사 이래로 10일이라는 장기 휴가는 써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이 되었다. 주말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도합 16일 치의 큐시트를 만들어놓고 가야 했고 내가 휴가 가 있을 동안 내 프로그램을 해 줄 사람에게 부탁도 해야 했던 터였다. 오후 4시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야 한시름 놓고 국장님께 10일 정도 휴가를 쓰겠노라고 말씀드렸고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처음에는 7일 정도만 쓸 예정이었으나 이왕 가는 거 10일은 쓰라는 엔지니어 선배의 말에 혹 한 나머지 10일을 질렀다.
그리하여 4월 10일, 6월 10일 로마 IN, 6월 24일 로마 OUT 비행기를 인당 1617200원에 끊게 되었다. 갈 때는 아시아나 직항, 올 때는 이스탄불 경유 후 아시아나였다. 동선을 고려했다면 로마 IN 베니스 OUT이 합리적이었으나 로마 IN 베니스 OUT의 경우, 직항이 없고 1번씩 경유를 하는데 가격은 180만 원대라서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가 이구동성으로 베니스 OUT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푸념을 하시기도 하셨다. 엄마의 논리에 의하면 돌로미티 구경 후, 베니스 하루 숙박비와 베니스에서 로마 가는 기차값, 로마 하루 숙박비를 다 더했을 경우 더 비싼 비행기를 타고 베니스 OUT을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내가 여행 막바지에 코로나에 걸리는 극악의 상황에 놓일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베니스 OUT을 택했으리라. 하지만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를 초반에 이틀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마지막 여정에 로마로 다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한 곳을 관광하면 좋으리라 생각했던 터였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날, 친절한 가이드님과 함께 로마 야경 투어도 하고 지올리띠에서 수박맛 젤라토를 먹으면서 행복했지만 코로나가 걸린 줄도 모르고 무리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마 말씀이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걸릴 때 안 걸리던 코로나를 외국에서 걸릴 줄이야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고 마지막 여정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이 아닌 대자연, 돌로미티에서 보냈는데 어디서 어떻게 코로나가 걸렸을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코로나가 걸린 줄도 모르고 엄마 옆에서 기침을 했는데 엄마, 아빠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것도 신기한 일이다. 한국에 도착한 24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봤던 자가진단 키트 결과 선이 아주 진한 양성이 나왔고 5일 동안 골골거리며 자가격리를 해야만 했다. 여행 초반부에는 하도 걸어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서 로마 약국에 가서 파스를 사기도 했으며 렌터카 반납 시간을 착각해서 고속도로를 질주하기도 했고 에어비앤비 숙소를 바꾸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다이내믹한 여행이었다. MBTI로 따지면 P인 나는 보통 여행을 할 때, 숙소만 대충 정해놓고 동선은 여행지에 가서 짜기 일쑤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은 철두철미하게 준비해 갔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고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변수는 거의 없었고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지만 웃픈 일들이 가끔 생겼다.
아, 그리고 이탈리아가 소매치기가 많다는 소리에 겁먹고 난생처음으로 휴대폰 고리줄을 이어 가방에 연결하고 옆으로 메는 가방을 착용했으나 소매치기는 1도 보지 못했다. 에어비앤비에서도 털렸다는 후기를 보며 내게도 저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는데 좋은 호스트들을 만나서 그럴 일이 없었다. 머물렀던 호텔들도 한결같이 좋았으며 인종차별이 있다는 후기도 있어 걱정했는데 인종차별은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다. 2011년 유럽여행을 하면서 독일, 프랑스에서 겪었던 인종차별과 목졸림과 같은 폭력은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버스나 바포레토, 거리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이 길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먼저 도와주겠다는 손길을 내미는 그들을 보며 각종 악성 후기들에 지레 겁먹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우리 가족이 운이 좋았을 수 있다. 실제로 소매치기가 많은 나라라고 하니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으나 나처럼 여행에 대한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겁먹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서두가 길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 당신이 그토록 기대했던 이탈리아가 좋았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입니다.'가 내 적절한 답이 될 것 같다. 환상으로 가득 찼던 이탈리아는 여느 유럽과 큰 차이가 없었고 20대와 달리 30대에 여행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듦을 많이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100일간의 남미 여행 이후 여행을 이렇게 길게 간 것은 처음이어서 더 힘들었을는지도 모르겠다. 50대 후반의 엄마와 60대 초반의 아빠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기만일 수 있겠으나 하루에 2만 보에서 3만보를 걷는 게 다반사였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새삼 엄마, 아빠의 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빡빡한 나의 일정에도 군소리 없이 따라와 준 엄마, 아빠께 감사함을 표하며 나의 로망이었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이제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