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발칙한 <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작가님, 다음 글이 더 기대됩니다.
국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공동 3위에 오른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어보았다.
별점 5점 만점에 미리 5점을 드리고 싶다. 소설들이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이었고 생각들이 발칙했다. 단편소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고 따뜻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제일 좋았던 단편소설은 마지막에 수록된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이었다. 급하게 죽어버린 한 사람이 이승을 떠돌게 되는 이야기로 아이돌 지망생 유령을 만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는 이야기다.
내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지고 있었고, 누군가를 미워했으며, 때때로 죽고 싶어 했다. 그런 마음들은 어째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이어지는 걸까.
그런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끝까지 버티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는 마음은.
무언가를 오랫동안 소망해 본 적이 있던 나로서는 아이돌 지망생 유령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끝까지 버티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은 것은 꿈과 희망이다. 버티는 한 꿈과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소망하는 인물은 단편 ‘빛이 나지 않아요’ 에도 밴드 지망생으로 등장한다.
관심받지 못한 무대가 어떻게 수치로 변하는지, 아무도 듣지 않는 곡들이 어떻게 사그라지는지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버티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이 깊고 어두워져서,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지선 씨가 봤을 빛에 대해 생각했다. 지선 씨가 본 빛은 어디에서 나타난 빛이었을까. 그 빛은 지선 씨가 오래전 바닷가에서 본 것처럼 환하고 아름다웠을까.
<빛이 나지 않아요>는 두 번째로 좋았던 단편이었다. 해파리로 변하고자 하는 지선 씨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도 따뜻했고 구와 나의 의견 다툼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해파리 변종이 등장해서 벌어지는 미래 이야기를 이해 가기 쉽게 그려서 좋았다. 한 편의 SF를 읽은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옛 친구 금옥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불임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받다가 금옥과 음식을 해 먹는 시간이 해방구인 희애의 이야기를 그린 <낯선 밤에 우리는>은 단막극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맨스 버디무비로는 딱일 것 같다. <집에 가서 자야지>를 보면서는 홍상수 영화가 떠올랐고 영화 <스물>도 떠올랐다.
더디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모난 곳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그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표제작인 <유령의 마음으로>는 식물인간인 남자친구 정수에 대한 복잡다단한 시선을 그리는 내용이다. 어느 날, 유령이 나타나서는 나의 주변을 맴돌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야기다. 이런 유령이라면 내게도 유령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꿈처럼 아름답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물고기처럼 유연하고 흐르는 물처럼 반짝는 유령의 마음이었다.
아름답다고 표현해야 할까. 영롱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주옥같은 소설들을 한편 한편씩 읽으면서 내 마음마저 몽글몽글해졌다. 임선우 작가의 따스하면서도 발칙한 상상력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