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는, 지금 그 곳 서울은
한없이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자리를 잡고 영화 속 주인공과 눈 맞출 때의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줄리엣 비노쉬의 그윽한 눈빛과 장국영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마주 할 때면 온 몸에 전율이 관통한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심장은 쿵쾅쿵쾅 대고 목 너머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화관을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내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영화 보는 것. 나의 기똥찬 꿈을 들은 친구가 내게 영화 오래 보기 대회에 나가 보라고 권했으나 1차 추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같이 지원했던 친구 역시 떨어졌고 친구는 상심할 필요 없다며 다른 신세계가 있다고 그 곳에 가자고 했다. 그 곳은 정동 시네마였다. 정동 시네마. 그곳은 내가 상상했던 신세계가 아니었다. 경향신문사 건물에 딸려 있는 허름한 극장일 뿐이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익숙해 있던 나는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깔끔함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중간에 영화 상영이 중단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와 달리 세 편이 잇따라 상영되었다.
정동시네마에 처음 간 날 이후, 나는 정동시네마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G열 11번 자리를 고집했던 나는 딱 한 번 다급하게 극장을 찾은 날을 빼고는 늘 그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밤이면 홀로 이불을 둘러쓰고 영화를 보며 달콤한 나날을 보내던 내게 있어 정동시네마는 환상적인 신세계였다. 정동시네마가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들과 차별화된 점은 심야부터 새벽까지 최신 영화 세 편을 연달아 상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대한 싼 값으로 보면 만 원에 세 편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세 편이 전부 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일 수는 없다. 그래도 세 편 중 두 편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경우가 많았다. 딱히 가리는 영화가 없어서인지 세 편 중 한 편만 마음에 들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현재 상영 중인 영화가 세 편이나 연달아 상영한다는 점이 정동 시네마가 멋진 신세계가 되는 데에 한 몫 했다. 시설은 메가 박스, CGV와 같은 멀티플렉스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허름했지만 영화에 몰입하는 러닝타임 90분~120분 동안 만큼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첫 영화가 끝난 후 쉬는 시간에 다른 광고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 광고가 나오는 것 또한 내가 정동시네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통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정각에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다. 대개 10~15분 이후에 영화가 상영되는데 그 시간동안 맥주, 카메라를 비롯한 상업광고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정동 시네마는 정각 12시에 영화가 상영되었고 세 영화 중간 쉬는 시간에는 개봉 예정인 영화 예고편을 틀어주었다.
나는 꿀 같은 15분 쉬는 시간동안 허기를 달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첫 영화가 끝난 후 쉬는 시간 15분동안 뱃속의 울림은 영화관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정동시네마 근처에는 24시간 맥도날드가 있었다. 첫 쉬는 시간은 상영시간 12시에 늦을까봐 사지 못한 햄버거 세트를 사서 한 입 베어 먹는 데에 썼다.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 버거 한 입과 콜라 한 모금은 농활 이후 뿌듯함과 함께 맛보는 막걸리 맛과도 흡사했다. 영화 ‘아비정전’ 의 아비가 수리 진에게 콜라를 처음 샀던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1분 전을 기억하듯이 나 역시 정동 시네마에서 콜라를 처음 맛보았던 2010년 4월 새벽 2시 1분 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첫 영화 상영 시간 동안 홀쭉해져 있던 내 배는 금세 부풀어 올랐고 친구와 빗발치는 수다를 나누다 보면 두 번째 영화의 오프닝이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두 번째 영화가 중반을 지날 때쯤이면 졸음이 스르르 몰려온다. 새벽 세시가 늘 고비인 나는 감기는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영화를 보거나 수면 상태에 빠져 들었다. 한 번은 코를 심하게 곯아서 옆의 친구가 팔로 툭 쳐서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도 한 번 졸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졸다가 영화가 끝날 무렵 깨기 일쑤였다. 두 번째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잠에서 깬 나는 기지개를 펴고 다음 세 번째 영화를 기다렸다. 다음 영화에서는 졸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거듭 하고 나면 세 번째 영화에서는 졸지 않았다. 세 시 고비를 잘 넘긴 날은 세 번째 영화를 보면서 졸기도 했다. 많게는 세 편, 적게는 두 편을 보는 한밤중의 영화 관람은 계속 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동시네마가 폐관된다는 소문이 났다. 친구는 옛날부터 소문만 있어왔지 정동시네마가 문을 닫은 적은 없다며 이번에도 소문일 뿐일 거라고 말했다. 적자가 날 법도 했다. 정동시네마에는 늘 사람이 북적이지는 않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심야영화 상영관보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오전, 오후 시간대만큼 사람이 많이 온 적은 거의 없었다.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정동시네마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 사람과 난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내가 G열 11번에 앉을 때, E열 7번에 앉아서 홀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과 무언의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F열 9,10번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커플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영화관에 나 같은 단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영화를 본다는 즐거움과 함께 단골들과 마주친다는 것에서 즐거움이 배로 더 커졌다. 친구와 동행하지 않거 나 혼자서 영화관을 찾았을 때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단골이 이렇게 있는데 설마 문을 닫을까 하는 생각에 폐관 소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문이 기정사실화된 것은 정동시네마 측의 폐관 공고문을 통해서였다. 곧 폐관하오니 쌓인 마일리지는 폐관 전에 꼭 써 주시길 바란다는 멘트와 함께, 정동시네마는 문을 닫게 되었다는 공고였다.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내게 밤에 놀 공간이 없어졌다. 술과 안주로 밤새는 술집, 커피 향 가득한 24시간 카페 아니면 더 이상 내가 밤에 갈 곳은 없었다. 외롭고 심심한 밤이면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술집, 카페, 정동시네마였다. 정동시네마는 앞의 두 곳이 가져다 줄 수 없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대안 공간이었다. 내가 정동시네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곳에서 영화 보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어두컴컴했다.
내 아지트를 돌려달라고 정동시네마 폐관반대 1인 시위라도 해야 할까. 서울이 집이 아닌 나에게 있어 정동시네마는 때로는 가족 같이 포근했고 친구처럼 다정했다. 때로는 유년 시절 뛰놀던 놀이터 같았고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던 교실 같기도 했다. 내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정동시네마가 없어지는 것은 추억이 깃든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년시절에는 땅따먹기를 하거나 옥상탈출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가 있었다. 급식을 후딱 먹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타는 정글짐은 오전 4교시 수업의 지루함을 달래는 데에 적격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물함 뒤 공간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삼십 여명의 사물함 뒤 공간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수업시간에 잠 오는 아이들은 그 곳에 서서 졸음을 쫓기도 했고 야자 시간에 돗자리에서 두 발 뻗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지금의 내게는 제대로 쉬거나 놀 나만의 아지트가 없다. 겨우 숨 쉴 공간을 찾았나 싶었는데 곧 없어진다니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
정동시네마가 내 아지트였다면, 내 친구 A의 아지트는 하이퍼텍나다였다. 하이퍼텍나다는 대학로의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친구는 공강 때마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숭아트홀의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고 A는 이제 공강 때의 허전함을 학교 도서관 DVD룸에서 달랜다. 명동 근처에 직장이 있는 언니 B는 중앙시네마 마니아였다. 내가 단기간 정동시네마의 단골손님이었다면 그녀는 발들인지 2년차에 접어드는 단골이었다. 중앙시네마는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곳이었는데 그 곳 역시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명동 한 구석에서 조용히 영화를 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좋아했던 언니는 이제 퇴근길에 그 곳에 갈 수가 없다. 옛 중앙시네마 자리에 들어선 건물을 지날 때마다 언니는 마지막 상영했던 영화 ‘시’ 가 떠오른다고 했다. 언니는 정동시네마 폐관 소식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마지막 상영하는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러 가라고 했다.
내 카드에는 딱 10000 마일리지가 있었다. 10000마일리지에는 친구와의 추억, 영화광들과의 데면데면한 인사, 맥도날드 햄버거 그 모든 것들이 축적되어 있었다. 10000 마일리지가 소멸되는 순간, 나는 이곳에 더 이상 발 디딜 일이 없었다.
“10000 마일리지 있으시네요. 이제 이 카드는 사용 못하시니까 버려도 되죠?” “네. 버려주세요.”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드를 버려 달라고 했다. ‘에이 그냥 버리지 말고 그냥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더 이상 이곳에서 영화를 보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카드는 필요 없겠지만 점원이 뚝딱 하고 카드를 가위로 자를 때의 기분은 정말 이상했다. 춘향과 몽룡이 헤어질 때 만남을 기약하며 반쪽 거울을 나눠 가졌듯이, 내게 그 카드는 언젠가 다시 성사될 정동시네마와의 조우를 기약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들어간 반쪽 카드를 다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극장에 들어섰다. 그날따라 극장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거의 사람이 꽉 차 있었고 나는 늘 앉던 자리인 G열 11번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나의 10000 마일리지가 소멸된 그 날은 온 사방에 사람이 꽉 차 있었고 나는 겨우 맨 끝 열의 구석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봐야 했다. 영화를 보면서 비장한 느낌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첫 번째 영화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잡지에서 보았던 줄리아 로버츠의 인터뷰가 머릿속에 교차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한 여자가 나오는 영화는 시작되었다. 맛집 세계탐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이 영화 곳곳에서 나왔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 영화 때문인지 첫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배는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줄리아 로버츠가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종류별로 먹을 때마다 맥도날드의 햄버거가 종류별로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꼬르륵거리는 배 때문에 139분의 긴 러닝타임 중간 중간에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아트라베시아모 – 함께 건너보자. 때론 삶의 균형을 잃을 수 있지만 삶의 균형은 되돌아온다.
영화의 엔딩에 등장했던 마지막 구절만은 뇌리에 박혀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줄리아 로버츠는 여행을 통해 상실했던 균형을 되찾았고 나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홀쭉해진 뱃가죽의 균형을 찾기 위해 맥도날드로 뛰쳐나갔다.
영화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다니던 각종 햄버거의 종류들 앞에서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 버거를 골랐고 우걱우걱 먹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현란한 포크놀림으로 파스타를 먹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햄버거를 먹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웃길지 모르겠으나 이 시간,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햄버거라는 생각에 눈 한 쪽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동시네마가 폐관된 이후로는 그 시간에 그 곳에 갈 일이 없어서 그 날 먹은 햄버거는 다른 매장에서 맛볼 수 없는 눈물의 햄버거였다.
눈물의 햄버거를 먹고 나니 내 뱃가죽은 부풀어 올랐고 난 다음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섰다. 영화관 곳곳에서는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배고플 것을 대비해 미리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김밥, 커피, 음료수를 사온 사람들이 꽤 있었고 각종 음식 냄새들은 섞여서 영화관이 식당 같았다. 사람들 대화의 화제 거리는 정동시네마 폐관이었다. 다들 아쉬움을 표하며 그 다음 영화를 기다렸다. 레터스 투 줄리엣의 오프닝이 시작될 무렵의 극장 내 사람들의 태도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아이들이 두 눈을 반짝이고 수업을 듣는 것에 견줄 만 했다. 시끌벅적거리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영화의 막은 올랐다. 내 두 눈동자도 처음에는 반짝였지만 곧 수면 상태에 접어들고 말았다. 눈물 젖은 햄버거의 여파인지 내 두 눈은 영화 중간 중간에 감고 뜨고를 반복했다. 중간 중간 졸기는 했어도 스토리는 알 수 있었다.레터는 결국 주인공을 잇게 해 주었고 두 주인공은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
이제 마지막 영화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영화는 보다가 졸았으니 세 번째는 졸지 않으리라 연신 다짐했다. 게다가 오늘은 내가 정동에서 영화를 볼 마지막 날 아닌가. 난 지금 왜 졸고 있는가. 불과 몇 시간 전에 10000 마일리지를 소진하고 카드를 떠나 보냈던 내가 태연하게 졸고 있다니 말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난 마지막 영화를 보면서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정동시네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던 나의 거창하고도 소박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장르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액션만 아니었더라도 졸지 않았을 텐데,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였다면 졸지 않았을 텐데 등등 갖가지 핑계를 대가며 내가 잔 이유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이럴 거였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지 않고 10000마일리지 담긴 카드를 정동시네마가 다시 개관할 그 날을 위해 남겨 두는 게 나을 뻔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동시네마는 다시 개관할 생각을 않는다. 아트홀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섰단다. 멀티플렉스 문화공간이 대세인가 보다. 또 다른 멀티플렉스 공간은 생겨나고 또 다른 아지트는 사라져만 간다. A와 B, 그리고 내 아지트가 사라졌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