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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소개팅을 파스타집에서 할까?

연애를 위한 소개팅? 너와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을까?

by 아보카도


어색한 두 남녀가, 친해 보이지 않는 두 남녀가 머뭇거리며 메뉴판을 보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까르보나라와 봉골레를 시킨다. 남녀가 만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 파스타다. 이들에게 있어 오늘 먹는 파스타는 세상의 수만 가지 음식 중 선택받은 특별한 음식이 된다. 학교 앞에 즐비한 고기 냄새 진동하는 고깃집도 아니고 탄내 나는 철판볶음 집도 아니고 느끼한 파스타집이다.


“오늘 예쁘게 입고 오셨네요.”


머리에 왁스를 듬뿍 바르고 한껏 멋 부린 남자의 느끼한 멘트에 여자는 멋쩍어하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다. 두 사람의 통성명이 끝나고 서로의 관심사, 취향에 대해 말할 무렵이면 까르보나라와 시푸드 핫소스 파스타가 나온다. 조신하게 파스타 면을 포크로 들어 올리는 여자와 점잖게 파스타를 먹는 남자의 대화는 계속된다. 하필 왜 파스타집일까. 왜 남녀는 처음 만나서 파스타를 먹으며 서로를 탐색하는가.


물론 예외도 있다.


“야 글쎄 그 남자가 나를 부대찌개 집에 데리고 가지 뭐야.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나.”


소개팅에서 폭탄 남을 만났다며 투덜대는 내 친구는 첫 만남에서 코를 훌쩍이는 진상을 보였다며 추했던 소개팅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늘어놓았다. 내 친구 말대로라면 파스타가 추함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파스타 집에서 소개팅을 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또 다른 친구의 소개팅 남은 파스타를 먹으면서도 코를 훌쩍 댔고 스마트폰 처음 개통한 사람처럼 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한다. 이 경우를 보면 파스타가 앞에 있어도 부대찌개를 먹을 때와 같았기에 파스타라는 음식이 소개팅에 꼭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부대찌개라는 예외는 있지만 나도 그랬고 내 주변도 대개 소개팅은 파스타 집에서 한다.


“언니. 언니, 어제 소개팅 잘했어?”


“응. 어제 강남역 노리타에서 했는데 거기 있는 사람 전부 다 소개팅해서 정말 웃겼어.”


낯선 남녀 열 쌍 이상이 한 공간에서 통성명을 하고 파스타를 먹으며 서로를 탐색한다는 생각에 배를 잡고 웃었다. 언니는 여섯 살 많은 소개팅 남으로부터 몇 시간에 걸쳐 취직 잘하는 비법을 전수받았단다. 언니는 16000원짜리 멘토링을 세 시간에 걸쳐 받은 셈이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파스타를 먹었고 그녀가 어떤 파스타를 먹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내 친구가 폭탄 남과 함께 먹었던 부대찌개 집에서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언니도 부대찌개 집에서의 첫 만남에서 코를 훌쩍였다고 툴툴거릴까. 이 사람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이 사람과의 대화, 외모로 결정되는 것이지 음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툴툴거렸던 내 친구도 그의 외모 혹은 그의 화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지 원인은 부대찌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파스타 집은 외모 혹은 화법을 커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개의 파스타 집은 일반 음식점과 달리 고급스러운 혹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파스타 집은 두 남녀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준다. 소개팅 장소로 애용되는 유명한 파스타 집도 있다. 강남역 00 파스타 집처럼 테이블마다 소개팅을 하는 경우도 많고 열 테이블 중 한두 테이블 정도가 여성들 혹은 연인인 경우도 허다하다. 통성명을 하고 머뭇거리는 두 테이블 사이에서 친구와 파스타를 먹은 적이 있는데 우리도 왠지 소개팅을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열 쌍의 남녀 중 몇 쌍은 파스타 집에서의 만남 이후 서너 번의 만남을 거듭하고 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연애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해피엔딩을 맞게 되면 파스타는 15000원 그 이상의 가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남녀에게는 파스타가 15000원 그 이상의 가치가 없을까.


파스타는 파스타 집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면을 삶고 추가하고 싶은 야채 거리를 추가하면 핸드메이드 파스타는 완성된다. 내 친구 A는 자신이 만든 파스타만큼 맛있는 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고 B는 매번 새로운 파스타를 시도해서 엠티를 가면 카레 파스타, 두유 파스타 등 독특한 파스타를 선보이곤 했다. 올리브 파스타, 치즈를 듬뿍 얹은 파스타, 카레 파스타까지. 편의점에는 전자레인지 3분만 돌리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파스타, 스파게티 제품도 판다. 인스턴트 음식보다는 파스타집의 음식이 더 맛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첫 만남에서 먹는 파스타 집의 파스타는 두 사람에게 있어 15000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드라마 <파스타>에서는 주방에서 일하던 남녀가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파스타는 만남을 주선하는 매개체다. 그가 파스타를 어떻게 먹는지, 흘리지는 않고 먹는지, 음식을 천천히 먹는지 그의 식습관을 통해 그를 파악하기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화법을 통해 그를 읽을 수도 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라는 사람을 기역부터 히읗까지 읽어낼 수도 있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동안 파스타를 먹으면서 그 혹은 그녀와 함께 있다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온다. 물론 감은 감일뿐이지 겨우 몇 시간의 대화로 그 혹은 그녀를 확실히 읽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은 우연히 가짜 소개팅녀가 된 여자와 남자의 유쾌한 데이트 소동을 다룬 영화다.



무엇을 좋아하세요부터 시작해서 하하하 멋쩍은 웃음으로 끝나는 질문 주고받기, 중간중간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면 무슨 질문을 할지 머릿속으로 고민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소개팅은 여간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 만나는 남녀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춘다. 취향이 비슷하면 평소보다 오버액션으로 반응을 하기도 하고 취향이 달라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상대방에게 호응을 해 준다. 어쩌면 파스타는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예의를 갖추며 먹기에 최적인 음식일지도 모른다. 부대찌개를 먹을 때처럼 코를 훌쩍이지 않아도 되고 삼계탕을 먹을 때처럼 땀을 찔찔 흘리지 않아도 되고 치킨이나 피자를 먹을 때처럼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기나 찌개류의 한식을 먹을 때처럼 음식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접시에 담긴 파스타면을 조심스럽게 포크로 들어 올리면서 품위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결혼을 전제로 하는 선자리가 흔히 벌어지는 호텔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한층 낮은 버전이 파스타 집에서 이루어지는 소개팅의 현주소다.


파스타 집은 남녀가 꿈꾸는 허영과 그 한계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세 시간 동안의 대화 이전에 우리는 상대의 간단한 신상을 파악하고 나간다. 남자의 경우, 키가 크고 학벌이 좋으면 소개팅 전에 상대방 여자와 그 주변 친구들이 심사위원인 1차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여자의 경우,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으면 상대 남자의 마음속의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파스타 집에서 이루어지는 소개팅은 기업의 블라인드 채용방식보다 더 엄격하게 조건을 요목조목 따지는 애인 채용의 과정이다.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된 사람들끼리 만나서 결혼을 도모하는 주선업체 듀오에서 학벌, 부모의 경제력, 연봉 등으로 등급을 매겨 동일한 등급의 남녀를 매칭 해서 만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10대부터 경쟁이 몸에 베인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우등한 조건을 가진 남자와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세 시간 동안의 대화가 중 이상이면 남녀는 두세 번의 만남 이후, 서로의 애인이 될 것인지 결정한다. 두세 번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소개팅으로 애인이 된 남녀는 서로에게 완벽하게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애를 하게 된다. 원래 알고 있던 사이 혹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 남녀의 관계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연애. 물론 소개팅으로도 호감인 상태에서 불타는 사랑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소개팅은 1차 관문을 통과한 남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느끼기 어렵다. 서로가 아는 것은 서로의 조건일 뿐이고 첫 만남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대의 일상적인 면을 소개팅에서 보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파스타 집에서 진행되는 엄숙한 소개팅을 하는 남녀는 많고 소개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소개팅을 해서 잘 안 되더라도 밥 한 번 먹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개 소개팅 1차 파스타 집의 파스타는 남자가 내고 2차 커피 집에서는 여자가 내거나 남자가 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보다 부담감이 덜 하다. 그래서 남자들 중에는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상대 여성의 외모 사진을 여러 장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의 외모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소개팅에 나가서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외모가 일단 자신의 마음에 들면 만나서 매너 없게 굴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연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여자 역시 남자의 조건을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물론 예외도 있을 것이며 일반화하기는 싫지만 여자와 남자 모두 상대방에게 원하는 조건이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기호일 뿐이니.) 기분이 나쁘면 소개팅을 하지 않으면 되고 파스타 집에서 파스타를 먹지 않으면 된다. 다들 소개팅의 끔찍한 현실을 다들 알고 조건에 맞는 남자, 여자가 되어 소개팅 시장에 진출한다. 사진으로 외모를 판단받고 학력, 키 등으로 상대에게 점수를 얻고 나서 만나는 남녀는 파스타 집에서 자신이 매긴 점수를 이차적으로 매기게 된다. 머릿속으로 제 점수는요 빵점입니다.부터 시작해서 백점입니다. 까지 천차만별일 것이다. 빵점이어도 상대와 이야기할 때는 방긋방긋 가식적인 웃음을 날리는 것은 소개팅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 중 하나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싫은 티를 내는 것은 소개팅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남녀는 서로의 감정을 숨긴 채 파스타를 묵묵히 먹는다. 정말 마음에 들어서 방긋방긋 웃을 때는 파스타의 면도 술술 잘 넘어가지만 영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하하 호호 웃을 때는 파스타가 맛도 없고 파스타의 면을 삼키기도 어렵다.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 나온 소개팅에서의 남녀의 행동은 기업 입사 면접관 앞에서 연신 스마일을 띠는 취업준비생들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자신의 짝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남녀는 형식적인 소개팅에서 서로의 본능을 드러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재고 또 재다가 이 점수면 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슬쩍 미끼를 던지고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상대가 마음이 들어도 상대가 먼저 연락이 와야 한다는 생각에 연락을 하지 않고 끙끙 앓다가 끝나버리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을 간파할 수가 없어서 혼자 고민하다가 끝이 나기도 한다. 먹기 편하고 깔끔한 파스타처럼 남녀의 감정이 딱딱 맞아떨어지면 좋으련만 실제로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의 마음이 일치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주변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소개팅을 하고는 하는데 정작 소개팅에서도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 마음에 쏙 들지 않더라도 여러 번 만나 보아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첫 술에 배부르랴 라는 말처럼 파스타 집에서의 첫 만남 때 보지 못했던 면을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 볼 수도 있고 두 번째 만남에서 더 깊고 진솔한 이야기가 오갈 수도 있다. 세 번의 만남 끝에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둘의 연애는 시작될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끝일 것이다. 소개팅이라는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만남의 특성상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지 않으면 세 번의 만남은 거기서 끝이 난다. 아니, 현실은 한 번 만남 이후로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연락처는 알지만 연락하지 않는 이상한 관계가 되고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피하는 어색한 사이가 된다. 1차 관문에서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로 나뉘는 소개팅의 시작은 사귄다, 사귀지 않는다.라는 두 개의 답지로 귀결된다. 소개팅에서 만난 두 남녀가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그러나 또 예외적으로 정말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수많은 인구 중에 두 사람이 소개팅으로 만난 것도 인연이고 굳이 연인이 되지 않더라도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도 있는데 아쉽게도 둘의 만남은 그대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대로 끝이 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1차 관문을 통과해서 어렵게 만난 사이인 만큼 연인이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파스타 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서로를 탐색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사이면 그저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 정도는 될 텐데 둘의 사이가 연애로 귀결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끊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컵처럼 그 혹은 그녀의 연락처는 그렇게 버려진다. 그리고 그녀와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가꾸며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 파스타 집에서 우아하게 파스타를 먹는 소개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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