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는, 지금 그 곳 서울은.
시골 촌뜨기인 내가 대학로에 착륙하면서 대면했던 식당은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 손님이 딱히 붐비지도, 아예 없지도 않은 일식집이었다. 혜화역 4번 출구가 어딘지 몰라서 헤매던 난 혜화동 로터리를 겨우 찾아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난 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새로 만난 친구들과 난생처음 대학로로 나섰다. 새로 보는 음식점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비까 번쩍한 불빛들 사이에서 정신이 어지럽던 우리는 어디론가 들어가야 했다. 어디론가 들어갔던 그곳을 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된 지금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서 먹었던 치즈 돈가스는 내가 대학로에서 여태까지 먹어 본 235가지의 음식 중 235등으로 기록될 만큼 최악이었다. 상점들이 사라졌다가 새로 생기는 일이 판을 치는 대학로에서 여전히 맛없는 돈가스를 팔고 있는 식당을 볼 때면 거리의 점쟁이에게 식당 사주를 의뢰하고 싶을 정도다. 식당의 생년월일과 식당의 이름을 풀이해서 식당이 장수하게 된 비결과 앞으로 얼마나 버틸지를 알아내고 싶다. 비결을 안다면 부적이라도 지어 엄마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점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셈 치고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 때문이다.
이상한 음식점에 된통 당한 이후, 난 낯익은 체인점을 찾아가곤 했다. 체인점이 즐비한 대학로에서 내가 즐겨 갔던 코스는 혜화역 1번 출구 근처 닭갈비집-스타벅스였다.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닭갈비 전문점에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마시는 연한 아메리카노를 빅 7 체인점(커피빈, 스타벅스, 탐앤탐스, 커핀그루나루, 카페베네, 할리스, 파스꾸찌) 중 한 곳인 스타벅스에서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때로는 닭갈비 기본 메뉴에 치즈 토핑을 추가하거나 때로는 거품이 가득한 카푸치노를 마시기도 하면서.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에 전전하는 생활이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로 세로 반듯하게 열에 맞춰 새겨진 알록달록한 간판이 싫증이 날 무렵, 맛집 탐방 소모임의 구성원을 모집하는 친구의 꼬드김으로 인해 대학로 맛집 탐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대학로 맛집은 학교 정문 근처 콩불이다. 점심때 가면 사람들이 음식점 앞 벤치에 앉아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그곳은 콩나물과 불고기를 볶아 먹는 음식점이었다. 얼마나 맛있기에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일까 궁금했던 난 콩불에 가게 되었고 콩불을 먹게 되었다. 처음 콩불을 먹었을 때는 둘이 죽다가도 못 먹을 맛봤지만, 일 년 동안 질리도록 콩불에 갔던 난 더 이상 콩불 주변을 서성거리지 않는다. 콩불의 맛은 내가 줄 서서 기다린 끝에 먹었던 그 달콤한 맛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애석하게도 콩불은 프랜차이즈화 되었고 대학로가 아니더라도 서울시내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체인점으로 자리 잡았다. 명동에 가도 콩불이 있고 신촌에 가도 콩불이 있고 맛은 별반 차이가 없다. 나만 알고 있던 홍대 인디밴드가 지상파 방송을 타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 그 밴드가 싫어지고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콩불에 대한 나의 애정은 확 식어버렸다. 콩불의 맞은편에 자리 잡은 지 일 년이 채 안 된 죠스 떡볶이는 일명 HOT 떡볶이(HOT가 와서 먹고 사인을 하고 간 집)라 불리는 오래된 떡볶이집을 너끈히 물리치고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인다. 콩불의 본점이 대학로 라면 죠스 떡볶이의 본점은 홍대다. 입소문을 타게 된 죠스 떡볶이와 콩불은 저마다 분점을 내었고 ‘체인점’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 들어서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60년 전통을 자랑하던 할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맛집은 하나 둘 사라져 갔고 캠벨 수프 통조림 캔류의 판박이 음식점들이 1호점을 중심으로 가계도를 확장해 나갔다. 2호와 3호 음식점들의 메뉴는 1호와 동일했고 기본 반찬 가짓수도 똑같았으며 젓가락과 숟가락 통이 놓여 있는 위치도 판박이였다. 식당만의 독자적인 메뉴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고 밥 한 주걱을 더 퍼달라는 애교 섞인 부탁은 꺼낼 수조차 없다. 치즈 토핑을 덤으로 얹어주는 인심은 천 원이라는 지폐로 둔갑한 지 오래고 밀크커피 한 잔의 인심은 식당 구석 안에 자리 잡은 자판기가 백 원을 삼켜야만 하는 숙명을 띠게 되었다.
식사 후에 찾는 커피집은 더하다. 1호 근방 오십 미터만 가면 2호가 있고 백 미터 근방에는 3호가 있다. 커피집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계도 늘리기는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하다. 대학로에만 해도 스타벅스는 다섯 개나 되고 커피빈은 세 개나 되며 이 외에도 자녀를 거느린 동명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서너 개는 훌쩍 넘는다. 커피집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정설은 어느덧 성경의 한 구절처럼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커피집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만 망했다는 체인점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A체인점이 B체인점으로 이름을 바꿔 새로 영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십 센티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혜화동 로터리를 힘겹게 거닐던 신입생 시절 자주 갔던 파리바게뜨 위의 스타벅스는 몇 개월 전에 투썸플레이스로 둔갑했다. 기숙사에서 오분 거리인 그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던 내 신입생 시절의 추억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물론 몇 발짝만 더 걸어가면 똑같은 모양의 스타벅스가 있고 그곳에서 똑같은 맛의 녹차 프라푸치노를 먹을 수 있을 테지만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서 내 추억의 자취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내 추억의 자취가 남아 있던 곳은 카페 153마저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의 잠식에 소규모의 동네 카페가 하나둘 죽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다가 카페 153도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사라진 153과 조우한 날은 유난히도 발뒤꿈치가 아팠다. 칠 센티 힐을 신은 채 가파른 학교 언덕을 거쳐 정문 길을 따라 뒤뚱뒤뚱 내려오던 나와 친구는 이미 발 뒤꿈치가 까질 대로 까진 상태였다. 우리가 멈춰 선 곳은 한판에 천 원짜리 만두집 앞이었고 그 위층에는 카페 153이 있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 한 판과 찐빵 한 판을 시킨 우리는 이천 원에 한 끼를 해결했다. 입가심이 필요했던 우리는 아픈 발을 이끌고 몇 걸음 떨어진 스타벅스를 찾아가는 건 무리였다. 독특한 간판을 자랑하는 카페 153을 가기 위해선 낮은 천장을 뚫고 좁디좁은 계단을 밟아야 했다. 계단을 하나 둘 밟고 올라가자,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카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의자와 테이블 구석구석은 커피 향과 와플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푸근한 미소의 아저씨는 우릴 반겨주었고 우리는 책이 널브러져 있는 발코니 옆에 자리 잡고 힐을 벗어던졌다. 빛바랜 종이에 적힌 메뉴는 바나나 월넛 브레드, 버터 브레드, 사과맛이 나는 아메리카노, 모카향이 듬뿍 담긴 카페라테 등등 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보았던 허니브레드, 아메리카노와는 다른 자기 고유의 이름을 지닌 음식들이었다. 곰돌이가 둥둥 떠 다니는 카페라테 향을 음미하며 창가를 응시했다. 맞은편에는 뚜레쥬르가 있었고 그 옆에는 피자스쿨이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스타벅스 커피 로고가 박힌 종이컵을 들고 가는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또 다른 여자는 빵을 봉지 한 가득 사서 뚜레쥬르에서 나오고 있었고 안경 제비 남자는 피자스쿨에 들러 피자 두 판을 사서 어디론가 분주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10분 후, 힐을 신은 뽀글 머리 여자는 커피빈 로고가 그려진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걸어갔고 20분 후, 베이비 파마를 한 앳된 남자는 미스터피자 한 판을 들고 어디론가 분주하게 걸어갔다. 30분 후, 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긴 생머리의 여자는 왼 손에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 한 상자를 들고 어설프게 걸어갔다.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로부터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다. 카페 153에 발을 디디기 전의 내 모습이었지만 너무나도 낯설었다. 나 역시 가끔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뚜레쥬르 빵을 사 먹고 피자스쿨의 피자를 사 먹는다. 다만 낯섦의 순간을 맞이하기 이전에는 의구심 하나 없이 프랜차이즈를 애용했다면 지금은 왜 나는 매일 파리바게뜨에서 토르티야를 집어 들고 매일 미스터피자의 포테이토 골드 피자를 먹을 수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에 잠긴다는 것이다. 견과류가 토핑으로 얹어진 파리바게뜨의 피칸파이가 아닌 견과류가 듬뿍 든 갓 구운 피칸파이를 파는 곳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말이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친숙한 파리바게뜨가 있기에 난 내 미각의 즐거움을 20분 더 일찍 누리기 위해 20분 거리에 떨어진 1번 출구 근처의 카페 수수봉을 찾아가는 고생을 사서 하지 않는다. 그곳의 단호박 크림파이와 블루베리 치즈파이와 피칸파이의 달콤함은 나의 편의를 충족시키는 프랜차이즈를 능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20분의 편의를 참고 20분의 수고로움을 행하는 경우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편의성 때문에 의구심을 제기하면서도 난 프랜차이즈 이용자가 될 수밖에 없다.
카페 153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나서 나는 간편하게 요기를 해결해야 할 경우, 혜화역 2번 출구 근처 커핀그루나루에서 패킹 그린베이 글 세트를 먹었다. 다른 카페를 갈 수도 있었지만 난 샐러드와 베이글이 먹고 싶었고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다.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것이 패킹 그린베이 글 세트였기에 난 주저하지 않고 이곳에 정착했고 오늘 또 프랜차이즈 카페를 이용했음을 머리에 각인시킨다. 내 자리로부터 10미터 북쪽에는 10대 커플이 있고 20미터 동쪽에는 20대 커플이 있다. 프랜차이즈의 알뜰 메뉴 전략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프랜차이즈 카페를 이용하는 나지만 나 나름대로 정한 예외조항이 있다. 신입생 필수품이라는 힐을 신으며 발 뒤꿈치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친구와 난 카페 153에서 우리 둘만의 예외조항을 만들었다. 미래의 남자 친구와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카페 153과 같은 소규모 카페에 오겠다고 말이다. 누가 먼저 카페 153에 오는지 내기를 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무 살 우리에게는 핑크빛 사랑에 대한 큰 로망이 있었고 남자 친구와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카페 153에 오는 것이 우리 둘의 바람이었다.
우린 공강 때면 이곳에 와서 한바탕 수다를 떨고 서재에 꽂힌 새로운 책과 눈 맞춤하고 새 메뉴와 입맞춤을 한다. 카페는 여전히 아기자기하지만 카페와의 조우를 성사시켜주었던 인심 좋던 천 원짜리 만두집은 카페 153보다 먼저 다른 간판을 내건 떡집으로 바뀌었다. 235등 자리에서 밀려나 687등 꼴찌를 유지하며 치즈 돈가스를 파는 그 일식집은 대학로 영화관 CGV 근처에서 아직까지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천 원어치의 만두 두 판을 못 먹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 들어선 나는 널브러진 책 더미 근처의 발코니에 앉아 아포가토의 바닐라향을 음미하며 또다시 창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맞은편에는 뚜레쥬르가 있었고 그 옆에는 피자스쿨이 있었다. 때마침 맥도널드 딜리버리 서비스를 하는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맞은편의 오토바이에는 미스터피자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오토바이의 뒤에는 뜨끈뜨끈한 피자 세 판이 실려 있었다. 커피를 음미하는 시간에도 프랜차이즈를 눈으로 맛볼 수밖에 없었던 난 카페 153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와 옛날 만두집을 마주 한 나는 온몸에 스며든 프랜차이즈 냄새들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옛날의 만두집의 만두 냄새를 떠올리며 카페 153 앞에 다시 서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넌 나의 영원한 넘버원이라고.
원산지 홍대인 죠스 떡볶이도 카페 153처럼 누군가의 넘버원이었을 것이고 원산지 대학로인 콩불도 누군가의 넘버원이었을 것이다. 넘버원은 넘버원일 때에만 의미가 있다. 프랜차이즈화 되는 순간 넘버원의 의미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체인점들은 넘버원을 잃고 대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영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 같은 삶을 살아 것이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 꽃이 되었다고 했던 김춘수 시인이 말한 명명 행위마저도 체인점에게는 의미가 없다.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스타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체인점이 느끼는 외로움에 견주어도 무방할 것이다. 난 카페 153이 대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외로움에 사무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카페 153 만은 프랜차이즈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프랜차이즈 공화국에서 오뚝이처럼 오뚝 버티길 바랐다. 일층의 만두집과 함께 샴쌍둥이로 공존했다면 환상적인 커플로 길이 기록되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둘 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의 넘버원이었을 그곳 만두집이 허물던 그 날 학교 동아리의 부원들은 슬픔을 금치 못했다. 공연동아리의 밤샘 작업이 이루어질 때, 컵라면 못지않게 자주 애용되던 야식으로 한판에 천 원짜리 만두집의 김치만두와 찐빵이 애용되었기 때문이다. 뜨끈뜨끈한 만두를 파는 만두집을 대신하게 된 것은 프랜차이즈계의 신인, 죠스 떡볶이. 신입생 시절, 선배들은 학교 주변 맛집이라고 HOT 떡볶이를 소개했지만 후배를 맞이한 우리는 학교 주변 맛집을 죠스 떡볶이라고 소개했다. 허물어진 만두집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HOT 떡볶이가 프랜차이즈에서 잘 나가는 죠스 떡볶이에 추월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학교 앞은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하나 둘 차지하더니 득실거리게 되었다. 학교 정문에서 내려와 끝자락인 3층짜리 던킨 도넛 건물 앞 횡단보도를 건너 대명거리에 들어서면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대명거리의 끝자락에 다다라 횡단보도를 건너면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마로니에 공원의 겉면을 뒤덮고 있다. 골목 중간중간의 소규모 음식점과 카페는 프랜차이즈 물결 속에 건재한 소수의 오뚝이들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문에서 던킨 도넛 건물 앞까지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정문 맞은편에 두 개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위엄을 과시하고 정문의 20미터 앞에는 또 다른 프랜차이즈 밥집이 아침을 달래고자 하는 학생들의 허기를 채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정문과 던킨 도넛 사이에는 네 개의 서로 다른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있고 한 개의 이름 모를 슈퍼가 있다. 그 틈 사이에서 살아 숨 쉬는 소규모 음식점들과 카페를 응원한다. 카페 153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