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는, 지금 그곳 서울은
홍대입구는 블랙홀이다. 홍대입구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때도 홍대는 내게 한 번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었다. 어렸을 때 내게 홍대입구는 미술 잘 하는 사람들이 가는 대학이 있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술 입시 준비생들의 로망은 홍익대에 가는 것이었고 개중에 홍대 디자인과에 합격한 아이는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홍대입구가 미술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상경 후 난생 처음 홍대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맛보고 나서다. 상경후, 얼마 되지 않아 홍대입구 9번 출구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젊음의 열기를 맛봤다. 다른 지하철 역 출구라면 단숨에 빠져나갔을 텐데 금요일 밤 홍대입구 9번 출구는 한증막이었다. 여차여차해서 빠져나오자 현란한 불빛이 젊은이들의 열기를 대변해 주었고 나도 그 열기에 합류했다. 홍대거리의 사람들의 옷차림은 천차만별이었다. 보라색 타이즈를 신고 빨간 구두를 신고 리본 머리띠를 해도 웨딩피치라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짧은 청색 남방 블라우스를 입고 반짝이는 검정 구두를 신은 내 모습에 놀라는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거리의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봄인데도 반팔에 핫팬츠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어그 부츠를 신은 사람도 있었다.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클럽에 자주 간다는 내 친구를 따라 난 난생처음 클럽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클럽에 직접 가게 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했다. 11시 이전에 들어가면 신입생은 입장이 무료라는 코쿤 앞에 도착했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약간 설레기도 하고 약간 떨리기도 하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 수만큼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과연 11시 이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바글 했고 우리 앞의 줄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우리는 민증 검사를 거치고 나서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고 리듬을 타고 있는 남녀 무리가 우리를 반겼다.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몸이 가벼워진 우리는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부비 부비 댄스가 유행하고 있던 터라, 모두가 부비 부비의 대열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추근덕대는 남자도 있었고 같이 사람을 물색하는 남녀도 곳곳에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전화 번호 주고받기는 계속 되었고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광경을, 듣기만 하던 광경을 직접 보니 놀라웠다. 이곳은 굳이 금요일 밤이 아니더라도 밤이면 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모르는 남녀가 만나서 술을 마시며 놀기도 하고 서로 마음에 들면 연인이 되거나 말거나. 물론 클럽에 춤추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는 사람도 있지만 클럽에 간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에 맞춰 춤추며 즐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도 한다. 음악에 미쳐 한두 시간 춤추다 보니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서 잠시 쉬다가 다시 춤을 추고 잠깐 리듬만 타다가 격렬하게 다시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새벽 다섯 시가 되었다. 우리는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클럽 밖으로 나왔고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편의점에는 컵라면을 먹는 남자 무리가 있었고 버거킹에는 허기를 달래는 여자 무리가 있었다. 친구와 나는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샀고 벌컥 들이켰다. 우리는 한 마리의 오징어가 되어 있었다. 땀은 바람에 실려 날아갔고, 목의 갈증은 물로 채웠지만 팔과 다리는 계속 흐느적거렸다. 마스카라는 이미 번진지 오래고 짙게 했던 화장도 거의 지워졌다.
우리는 쓰레기장이 된 홍대거리를 마주했다.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찼던 그 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젊음의 열기는 먹던 음식을 아무데나 버리고 맥주병과 소주병을 산산조각 내서 도로에 흩뿌렸으며 가로수에 토악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클럽 음악에 맞춰 신나게 흔들어대던 여자 넷은 돌아가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며 우정을 과시하고 있었고 쉼 없이 술을 들이키던 남자 셋은 거리 한복판에서 대자로 뻗어 술주정을 하고 있었다. 뒹구는 소주병과 맥주병은 안중에도 없고 목이 터져라 술주정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아까의 타오르던 열정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스테이지에서만큼은 최고였던 그들은 거리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타이트한 핫팬츠와 탑을 입은 노란머리의 언니는 생수병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 생수병을 아무 곳에나 투척했으며 뒹굴던 맥주병의 유리조각 파편은 거리의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술 취해서 맨발로 홍대 거리를 활보하던 반삭의 사나이는 파편에 찔려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쓰레기들은 홍대 거리 곳곳에서 뒹굴며 새벽의 바람을 타고 이 곳 저 곳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비위가 약한 아가씨는 주황색 범벅이 된 토에 코를 막기도 했고 다른 곳에 다시 토악질을 하며 곳곳에 열정의 그을음을 새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한둘 빠져나오다가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오면서 홍대 거리에 널브러진 맥주병과 생수병은 늘어만 갔고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둔갑해 가고 있었다.
지하철 첫 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다섯 시 반 무렵, 지하철역에는 사람들이 첫 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밤 문화가 시작되는 열한 시 열두 시만큼 사람이 북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오징어가 된 사람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고 지하철 안은 고요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잠을 청하기도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단잠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팔과 다리는 늘어졌고 눈동자의 초점은 흐릿했으며, 넋이 나간 사람도 있었다.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클럽에 있을 때는 우리 모두가 슈퍼스타가 되고 열정을 춤으로 발산하지만 클럽이 끝나고 난 후의 사람들의 모습은 피곤에 찌들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홍대 밤의 거리에서는 열정이 넘치지만 밤이 지나고 난 새벽의 홍대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젊음이 발산되는 클럽문화가 오명을 쓴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홍대 클럽 중에는 춤추는 클럽 외에도 인디밴드가 라이브를 하는 클럽 빵이나 클럽 타도 있는데 사람들은 클럽 하면 춤추는 클럽을 떠올린다. 다양한 인디밴드의 공연이 열리는 클럽 빵에서는 20대의 젊음과 열정,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클럽 근처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도 많아서 좋아하는 인디밴드 공연이 열리는 날은 친구와 홍대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예쁜 홍대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실제 촬영지인 카페 ‘커피프린스’에서 주인공들이 나누던 대화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친구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공연은 그 날 마지막 피날레였다. 좋아하는 후렴구를 흥얼거리며 보내는 그날의 밤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였던 낭만적인 나날을 남자친구와 보내게 되었다. 그의 집은 홍대입구역 4번 출구 근처였고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이었으며 기타를 잘 쳤다. 그는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지니면서 어른스러움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4번 출구 앞에서 약속을 잡았고 8번 출구 근처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았고 홍대 거리 근처의 감자탕 집에 가기도 하고 보쌈을 먹기도 했다. 망고 스무디와 홍시 스무디를 들고 홍대거리를 거닐면서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영원히 달콤할 줄만 알았던 연애는 삐거덕거렸다. 정말 죽이 잘 맞을 것 같았던 그와 나는 자주 싸웠고 서로 상처를 주는 일도 많았다. 버스 270에서 시작된 그와 나의 사랑은 오히려 연애 직전 서로를 간볼 때 더 불타올랐다. 그의 겉모습과 목소리, 분위기, 취향은 내가 꿈꾸던 것과 비슷했지만 그의 내면과 나의 내면은 극과 극이었다. 연애를 하기 전, 이 사람의 내면을 겪어보기 전에는 이 사람 집이 홍대 근처라는 것도 좋았고 내 생일을 홍대입구에서 함께 보낸 것도 좋았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도 좋았다. 연애를 하면서는 사소한 장난이 싸움으로 번졌고 놀림도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나는 그가 처음이었지만 그는 내가 처음이 아니어서 이런 싸움에도 개의치 않았지만 나는 싸우는 것도 처음이고 풀어가는 것도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다. 찰떡궁합일 줄 알았던 그와 나의 마찰 횟수가 잦아질수록 그에 대한 내 마음은 가파른 하강곡선을 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아련하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첫 연애를 하게 되고 난생 처음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홍대 클럽에서 춤을 추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쓰레기장에 버금가는 홍대거리를 비틀비틀 걸어보기도 하고. 나의 처음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그 중 제일 늦은 처음은 연애였다. 연애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던 난 완벽한 남자를 꿈꿨다. 얼굴은 잘생기지 않아도 되지만 내 마음에는 들어야 하고 키는 크지 않아도 되지만 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어른스럽지만 애어른이어서는 안 되고 나와 대화가 잘 통해야 되고 취향이 비슷했으면 좋겠고 등등.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다가도 상대의 단점이 보이면 상대가 싫어지거나 마음이 식기 일쑤였다. 다들 현실을 보아야 한다고 했지만 처음에 의미를 많이 두었던 나는 ‘아무나’ 와 쉽사리 연애를 시작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나가 아닌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해야 한다.’ 는 생각이 든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 연애의 수명은 짧았다. 오래 갈 것만 같았던 그와의 연애가 빨리 끝난 것은 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와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와의 연애는 중단되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쇠귀에 경 읽기인 나는 첫 연애를 하면서 내 인생의 2차 혁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가치관의 대 격변을 겪었다. 친구들이 말했던 ‘그런 남자는 없어.’ 와 ‘연애는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환상도 많이 깨졌고 다소 감정적인 성향이 냉소적으로 바뀌었고 이상적이었던 내가 현실적으로 변했다. 그와의 연애가 끝난 후,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수다를 떨던 홍대입구는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만 지나가도 그의 생각이 나고 그와 함께 갔던 밥집에 가면 그가 생각날 것 같아서였다. 한편으로는 환상을 모조리 깨준 그에게 감사하기도 했다. 홍대거리에서 그와 싸운 나쁜 기억들은 아수라장이 된 홍대거리의 새벽녘의 쓰레기장과도 흡사했고 그 기억들은 낭만적인 기억들을 삼켜 버렸다. 마냥 나빴던 것만은 아니지만 끝이 좋지 않은 이상,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내 첫 연애는 그렇게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되었고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끝났다. 같은 홍대입구역 출구지만 두 출구는 내게 의미가 다르다. 4번 출구가 블랙홀의 입구라면 9번 출구는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의 출구였다. 4번 출구로 들어설 때는 블랙홀 속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블랙홀의 끝자락에 다다랐고 9번 출구에서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홍대입구 9번 출구는 내가 처음 한증막의 열기를 느끼고 젊음의 열기를 대변하는 클럽문화를 경험하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클럽 다니기 좋아하는 내 친구는 오늘도 불금을 보내기 위해 그 곳에 갔고 젊음의 열기 속에서 리듬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춘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 즈음 지친 몸을 이끌고 클럽을 나설 것이다. 그녀는 지저분한 쓰레기장 속을 걷게 될까 아니면 정리 정돈된 대로를 걷게 될까. 홍대입구 문화가 오물 구덩이에서 허우적댈지 신선한 새벽 공기 속에서 안정을 찾게 될지는 열정을 발산하는 우리에게 달렸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고 낯설다. 그러나 처음이 있기에 그 다음이 있지 않나 싶다.